이주노동 일기

지난 달부터 일본에 취직하여 살고 있습니다. 국경 문이 좁아진 코로나 시국에 국외 취업으로 출국해 보는 것도 그런대로 드문 경험인 듯하여 있었던 일을 공유하고자 몇 자 적어 봅니다. 코로나 이야기가 주가 될 것 같네요.

 

알고 계시겠지만 일본도 환자 급증 상황을 여러 번 겪어 올해에도 몇 차례 ‘긴급사태’가 선언되었고, 외국인의 입국 비자가 발급되지 않은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승객도 극히 적어서 교외의 시외버스를 탄 것인지 국제선 항공기를 탄 것인지 모르겠다 싶도록 한산한 비행기를 타고 나리타 공항에 내렸습니다.

 

나리타 공항에서의 방역 수속은 2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 자체는 철저한 방역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이해할 만한 일이었습니다만, 초행자 입장에서 다소 의아하게 생각된 것은 하나의 절차를 인위적으로 여러 번에 나누어서 진행하는 듯한 인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격리기간에 사용될 위치추적 앱을 설치하는 과정이, 앱 설치 방법을 안내하는 부스 하나, 앱 설치를 실제로 수행할 시간을 주는 부스 하나, 앱이 올바르게 설치되었는지 관리 요원이 확인하는 부스 하나 등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단계에서 꽤나 중복되는 절차가 많았습니다. 각 부스 간격이 먼 편이어서 복도를 걸으며 나리타 공항은 역시 유명한 국제공항이어서인지 몰라도 참 넓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절차로 나뉘어 있는 것이 일을 빈틈없게 하기 위해서인지, 다양한 상황에 처한 입국자들에게 맞춤 안내를 더 잘하기 위해서인지 어떤 취지였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일본의 코로나 관리는 (위의 공항에서의 경험이 상징하듯이) 한 편으로 철저한 것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 느슨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핸드폰에 위치추적 앱을 깔고 방역당국과 언제든 통신할 수 있도록 스카이프 아이디를 제출해야 하는 부분까지는 한국의 방역 관리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습니다만, 실내에서 철저히 격리 생활하도록 하고 식료품까지 지자체에서 보급해 줬던 한국과 달리 여기서는 생필품 구매를 위한 외출은 허용되었습니다. 위치추적 앱도 격리자의 위치를 상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위치추적앱은 격리 장소에서 조금만 이탈해도 실시간으로 공무원님들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되어있다더군요) 하루에 두 번, 격리자가 손수 앱의 버튼을 눌러 위치를 보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래서야 격리자가 격리지를 무단 이탈하는 것이 너무 쉽지 않나 싶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 환경에서 근무하다 보니 격리가 풀린 뒤에도 일본의 코로나 정국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저도 독자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뉴스에서 모든 상황을 접하는 상황입니다. 일단 도쿄 거리의 풍경은 서울과 비슷한 듯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만 간혹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상점과 식당은 정부 지침에 따라 일찍 문을 닫습니다.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한다거나 거리가 한산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는데 이는 코로나 이전의 이곳 풍경과 견주어보지 못해서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한 SNS에서 ‘한국은 방역 행정은 성공적이나 사회안전망이 다른 선진국보다 취약하기 때문에 결국 코로나 위기가 다른 방향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원책만 내놓고 실제 지급은 행정력 미비로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다는 비판이, 대단한 행정력이 있다면서도 정부가 지원책에 돈을 쓰지 않는 한국에서 나온다는 것이 가소로운 일이다’라는 요지의 글을 보았습니다. (인터넷 세상에서 국제 문제 담론이 항상 국가대항전 구도로 흘러가는 것이 무척 건강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은 당연하게 전제해 두고,)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안전망이 크게 미비하다는 사실과 이것이 결국 대역병 시국에 곯아 터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주권자가 마땅히 뼈아프게 반성하고 살필 일입니다. 그러나 이의 대립항으로 ‘돈 쓸 용의가 충분하지만 행정력이 부족할 뿐인 일본 정부’를 상정하는 것은 허상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일본의 행정력 부족은 결국 자민당 정권 내내 추구되었던 (돈 쓰지 않는) ‘작은 정부론’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일본은 90년대부터 전국의 보건소를 줄이기 시작해, 1994년에 852곳이었던 보건소가 20년만에 그 절반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민간의 소규모 의원(醫院)들이 보건소의 역할을 나누어 맡았으니, 공공 보건을 천천히 ‘민영화’해온 셈이네요. 이렇게 축소된 공공 보건 인력이 대역병에 충분히 대처할 힘을 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현재 일본의 코로나 사태가 여기까지 온 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시기와 방법만 달랐다 뿐 양쪽 모두 돈 쓰기 싫었던 정부가 야금야금 쌓아 둔 화약에 불이 붙어 터져 나오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국에 국경을 넘다 보니 모든 상념이 역병을 향하게 되어 두서 없는 글을 썼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해동포 여러분, 어디에 계시더라도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Written by 아무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