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안의 Blue

따뜻한 여름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나뭇잎은 생명력을 머금은 듯 생기 넘치며 하늘은 괜스레 우리를 편하게 만드는 흰 구름이 종종 눈에 띌 것입니다.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해안가는 인산인해를 이루며 밝은 모습을 보일 것이고요.

저는 그중에서 푸르다 못해 투명한 여름 하늘에 시선이 더 갈 것 같습니다. 하늘은 항상 제 자리에 있지만, 여름의 특색인 파란 하늘은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저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 색상, 파랑Blue입니다.

 

여러분은 파랑을 보면 어떤 것이 연상되시나요? 저와 같이 하늘을 연상하실 수도 있고, 또 다른 것을 생각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연상’이란 특정 색을 보았을 때 떠올리게 하는 색채가 가진 감성적 특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문화권의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범주의 의미로, 바로 떠오르는 ‘구체적 연상’과 ‘추상적 연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 파랑의 구체적 연상은 ‘바다·하늘·가스불꽃·사파이어·터키석’ 등이 존재하며, 추상적 연상으로는 ‘희망·젊음·명상·영원·이상·진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상은 개인적인 경험·기억·사상·의견 등이 색에 직접 투영된 것으로 채도가 높은 원색일수록 연관되는 언어가 많고, 고유의 색상인 빨강·초록·파랑을 통해 만들어지는 중간색이면 그 수가 떨어지게 됩니다. 이에 유추해볼 때, 파랑은 다른 색보다 많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하겠죠.

 

파랑이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수행해온 역할도 다양합니다. 어떤 때에는 세계적인 언어로, 어떨 때는 지역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국제 언어로써 이는, 특정 행위의 지시 및 사실의 고지, 장비의 수리 및 주의 신호로 사용되었고, 세계 곳곳의 문화권에서 다양한 계급을 상징하였습니다. 갈리아에서는 노예의 옷의 색, 티베트에선 천사의 색, 중세 마법사의 금요일 옷 색, 기독교에선 성모와 예수의 색, 괴테가 말한 노동자의 색 등이 이와 같은 예시입니다.

 

독일 시인이자 예술가, 정치가 괴테Guethe는 1810년 출판한 색상이론Theory of Colors를 통해 파랑에 대해 정의를 하기도 했는데, 그는 이 색이 이상하며 형용할 수 없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 색은 강력하며, 높은 채도로 인해 자극성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높은 하늘과 먼 산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파랑은 우리 눈에서 금방 사라지지만, 순조롭게 보인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우리 눈을 자극하며 수월하게 볼 수도 있는, 흥분성과 침착성을 가진 모순적인 색상이란 이야기를 하면서 말입니다.

괴테의 이런 평가에서 알 수 있듯 파랑은 잊힐 듯 잊히지 않는, 특별한 힘을 가진 색상입니다. 다른 색상처럼 명확하고 찾기에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잊히는 색상도 아니지요.

 

대표적으로 기독교 문화에선 이런 푸른색의 사용이 광범위하게 있었습니다. 이는 구약성서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구약 민수기 15장 38절에 따르면 이스라엘인들이 신의 계기를 따르는 데 방해하는 데 파랑이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성모 마리아를 묘사하는 데 이 색상이 사용된 것을 비추어본다면 완전히 다른 의미입니다. 보통 예수와 마리아는 빨강과 파랑으로 묘사되는데, 빨강은 땅의 색이고 파랑은 하늘 즉 천국의 색으로 대표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파랑색 내의와 빨강색 겉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여, 이는 예수의 신성함을 얼마나 잘 받아드리고 있는지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파랑이 연관되기 시작한 5세기 초반부터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되었고, 이는 유럽 전 대륙에서 르네상스가 진행됨에 따라 마리아의 일상 모습을 좀 더 다양하게 표현되는 것으로 발전했습니다. 즉, 파랑은 기독교 예술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성스러움·충실함·특권적 위치 등을 표현하며 구속사(구원의 역사)에서 이러한 설명이 잘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쓰임새와 다르게 인류 역사상에서 파랑을 제대로 구분하고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현대와 그리 멀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일리아드·오디세이아 저자로 널리 알려진, 고대 그리스 작가 호머Homer는 그의 저서에서 파랑Blue이라는 용어를 단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Yellow와 Green이 10차례 정도 언급된 것에 비하면 다소 놀라운 수치이죠. 그는 우리가 흔히 파랑이라고 말하는 바다를 Wine-dark라고 표현하는 등 현대인들의 관점으로는 다소 특이한 단어로 물체를 표현했습니다. 이는 그만의 차이점이 아니라, 아이슬란드·인도·중국 등 다양한 고대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연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검정, 하양,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순서로 색상이 정의된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이론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비교적 단순한데, 우리가 이 색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검정·하양은 밝고 어두움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빨강은 피와 홍조 등 신체 기관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노랑·초록은 음식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반해, 파랑은 동식물에서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파란색도 정확히 말하면 색상이라기보다, 나비와 같은 일종의 일루전illusion에 가깝다는 것이 이 이론을 뒷받침해 줍니다. 심지어 현대 유럽 언어의 파랑은 대게 그 기원이 검정과 초록에서 온 것이 많습니다.

두 번째는, 인류가 해당 색상들을 만들 때까지 자신만의 언어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6천 년 전부터 파랑색의 원료인 라파스 라줄리Lapis Lazuli(청금석)을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수입한 이집트인들을 제외하고, 몇천 년 동안 인류는 파랑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고대인들은 색상을 검정·하양·빨강으로만 구분하였습니다. 이는 지금 관점에서 다시 보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앞에서 말한 색의 발현과 연관 지어서 보면 크게 이상할 것도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언어 습관 속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한국어, 티베트어, 베트남어, 요루바어 등 다양한 언어 속에는 파랑과 초록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관련된 실험이 바로 힘바 컬러Himba Color 테스트인데, 나미비아의 힘바족에게 초록색 중 파란색을 섞은 뒤, 이 중 다른 색 하나를 찾게 하였는데, 그들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다른 색을 찾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반대로 오히려 초록색 중 다른 하나를 찾으라고 하면 우리보다 빠르게 찾아내었는데, 이는 이들의 언어와 민첩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은 초록과 관련된 다양한 단어가 존재하는 반면에, 파랑은 주로 다른 초록색과 함께 한 단어로 묶여서 표현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고 생각했던 색상도, 결국은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색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파랑을 사용하는 당사자들도, 자신들이 과연 어떤 색상을 사용한다고 생각했을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우리의 언어 말고 또 다른 세상이 바라보는 파랑이 알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파랑은 어떤 색인가요? 이에 대해 주변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시는 건 어떨는지요. 생각보다 다양한 Blue를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Written by 김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