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정색하기 –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

2015년이 을미년(乙未年)이라는 것을 모르더라도 2016년을 육십갑자로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병신”과 “년”의 조합은 여러 업체의 마케팅과 SNS 농담, 인터넷 짤,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로 널리 쓰였으니까. 결국 ‘병신년_소재_농담_NO_캠페인’이라는 해시태그로 비하성 농담을 하지 말자는 온라인 캠페인까지 생겼다.

슬프게도 생각하기를 멈춘 일부 사람들은 병신년(丙申年)을 병신년이라고 하는데 왜 못 부르게 하냐며, 무슨 호형호제를 금지당한 홍길동마냥 군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지 말라고… 2016년이 병신년(丙申年)이라 그렇게 부르는데 웬 오바냐며 장애인 비하나 여성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고 억지를 쓴다. 다시 한 번 슬프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남의 말도 못 알아들을 뿐 아니라, 자신이 말하고도 무슨 말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병신년을 소재로 한 농담을 하지 말자는 캠페인은 丙申年이라는 단어를 아예 없애거나 사용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욕설과 어감이 같은 것을 활용해 농담이나 조롱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병신년 농담이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비하가 아닌, 말장난일 뿐이라는 놀랍도록 뻔뻔한 주장도 있다. 장애인과 여성을 욕하겠다는 의도가 “(말하는) 나에게는” 없었고, 순전히 재미있어서 했기 때문에 비하성 발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신”과 “년”이 사회에서 사용되는 맥락이 있는 상태에서 “丙申年”과 발음이 같다는 것을 활용한 농담이 생긴 것인데 앞의 것을 삭제하고 진공 상태에서 농담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더구나 말은 말로 끝나지 않고, 편견을 재생산한다는 측면에서 농담은 사실 농담일 뿐인 게 아니다.

한편, 의도와 맥락이 중요하다는 식상한 주장도 있다. 이들은 대의를 위해서라면 사소한 건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는데 그 사소한 게 비장애인 남성에게만 사소하다는 것쯤은 과감하게 무시한다.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에는 사랑의 온기가 있어 연출된 포르노보다 좋다고 했던 인터넷 유명인 장주원은 이렇게 썼다. <몸이 성치 않은 이를 비하하는 용어라면 물론 지탄받아야겠지만, 몸이 성함에도 제대로 구실을 못하는 이들, 예를 들어 김무성이나 변희재를 그들이 불리워 마땅한 용어로 부르는 것은 지극히 온당한 일이고, 그렇게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맥락으로 쓰이는지가 중요한 것이지요. ‘년’은 ‘놈’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여남평등은 시대정신이니까요. 이와같은 이유로 병신년, 쓰겠습니다.> 이런, 비장애인이 문제적 행동을 할 때 그를 장애인 같다고 해도 그건 장애인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는 소리를 하는 주제에 당당하기도 하지! 비장애인의 잘못을 조롱하고자 장애인에 비유하는 것은 장애인을 비장애인보다 하등한 존재로 보는 인식에서 나온 표현이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고 맥락을 보라는 식의 주장은 그런 의미에서 설득력이 없다. 류근찬 전 의원이 SNS에 <안철수는 시집 안 간 처녀 땐 신선해 보였다. 그러나 2~3번 시집갔다가 과수가 된 걸레가 (돼)버렸는데 지금 누구와 결혼한들 무슨 관심이 있나.>라고 쓴 이 글도 비유일 뿐이라고 할 기세다. 의도가 중요하다고 주장한 이들이 대표적으로 드는 예는 현 대통령에 대한 풍자(?)인데 이 또한 참 답답한 노릇이다. 고작 대통령의 성별을 부각시켜 조롱하는 것밖에 못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면 드.립. 욕.심.은 버리는 게 맞는데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해 이런 사소한 것쯤은 넘기라는 뻔뻔함 앞에서는 짜증이 날 지경이다. 정말 “박근혜 병신년”이 정치 풍자씩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전 대통령들을 비판하거나 조롱할 때 그들이 남성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풍자했던 적은 없었다. 이들은 남성 정치인은 개별적 인간으로 인식하고, 여성 정치인은 여성이라는 특수한 종으로 한데 묶어 버리는 신공을 발휘한다. 이래도 이게 표현의 자유고, 사소한 문제인가. 김무성 대표가 아프리카계 유학생의 피부를 연탄색에 비유한 것도 자기 딴에는 재미있자고 한 말이지, 그 유학생을 기분 나쁘게 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인.간.계.에서는 이것을 인종차별로 본다. 발화자의 의도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단한 드립이랍시고 재미도 감동도 없는 비하성 농담을 내뱉는 사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응은 뭘까. 나는 한국여성민우회의 [해보면 캠페인]을 추천하고 싶다. [해보면 캠페인]은 웃기지 않으면 웃지 말고, 정색을 하라고 권한다. 소수자나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의 농담,

불쾌한 음담패설 등을 들어도 분위기를 깨거나 발화자가 무안할까 봐 참았던 경험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발화자가 창피당하거나 분위기가 깨지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비하발언을 듣는 자신과 비하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무례한 쪽은 정색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농담을 입 밖에 꺼낸 사람이기 때문에 자책할 필요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재미없는 사람, 지나치게 엄숙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불편한 농담을 그냥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차별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농담은 그저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특정 계층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켜 이들의 차별을 정당화하게 하고, 비하의 대상이 된 계층을 끊임없이 공격한다. 그 대상들은 위축되거나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기도 하고, 코르셋을 장착하기도 한다. 이거야말로 전혀 재미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리낌 없이 정색해야 한다. 모르고 한 실수든, 고의적으로 했든, 우리의 정색은 재발을 막거나 적어도 그 말이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전하기 때문이다.

 

● 개그를 다큐로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위한 Q&A

1. 2016년이 병신년인데 욕설과 발음이 같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을 수 있지 않나?

→ 욕설을 떠올리게 하는 어감 때문에 재미있다면 그 욕이 무슨 뜻인지 봐야한다. (병신은 장애인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며, 년은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2. 나는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농담한 것이 아니라 말장난 차원에서 했을 뿐이다.

→ 아프리카계 사람에게 장난으로 깜디, 깜둥이, 시커먼스, 흑형이라 부르면 인종차별이 아닌가? 지금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인가?

3. 병신년을 활용한 농담을 했다고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인가?

→ 아니다.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4. 나는 장애인과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재미있어서 드립쳤을 뿐인데?

→ 불행히도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때리고 괴롭히고, 원색적으로 욕하는 정도여야 차별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손으로 때려야만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건가? JM은 그냥 놀이인가??

5. 모르고 그랬는데?

→ 그럼 앞으로 안 하면 된다.

6. 박근혜 비판하거나 풍자하지 말라는 건가?

→ 박근혜를 비판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가능한 드립이라면 풍자가 아닌 여성 비하 발언이다.

 

 

Written by MIA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