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삼겹살 이야기

이번엔 삼겹살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삼겹살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그렇습니다. 때는 IMF 직후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가난한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후배가 생겨 신이 났습니다. 학회에 들어온(들어올) 후배들을 접대하기 위해 선배 몇몇이 돈을 걷어 시장에서 냉동 삼겹살을 샀습니다. 그리고 대낮부터 학교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웠습니다. 상추도 뭣도 없이 마른 쌈장 하나 두고 국적 불명의 그저 얇기만 한 냉동 삼겹살을 먹었지만 맛있었습니다. 사람에 비해 고기는 적고 소주는 많았습니다. 부탄가스의 열기에, 낮부터 마시는 소주에, 봄날 쨍쨍한 햇볕에 얼굴이 벌겋게 익어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다른 하나의 기억은 좀 시간이 지나서입니다. 공교롭게도 금융위기라 불리던 때였습니다. 갓 서른을 넘은 나이였지만 저는 역시나 가난하였고, 유유상종이라 친구들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가을 날 친구들은 화곡동 옥탑에 돗자리를 깔고 판을 벌였습니다. 그래도 나이를 먹은지라 상추에 깻잎에 양파절임도 갖추고 불판에 삼겹살을 구웠습니다. 고기는 냉장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노을지는 하늘엔 김포공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손을 들어 후려치면 똑 떨어질 것처럼 낮게 날았고, 친구들은 그날 멱살을 잡고 싸웠습니다. 답 안 나오는 시절에 술 먹고 답 안 나오는 이야기만 늘어놓다 보면 결론이 그렇지요, 뭐.

 

우리는 삼겹살을 먹습니다. 회식을 해도 삼겹살을 굽고, 엠티를 가도 삼겹살을 굽습니다. 캠핑을 가도 삼겹살을 굽고, 김장을 해도 수육으로 삼겹살을 삶습니다. 연초엔 신년이라 먹고, 연말엔 송년이라 먹습니다. 봄엔 봄이라, 여름엔 여름이라, 겨울엔 추워서 먹습니다. 많이도 먹습니다. 얼마나 먹을까요?

‘2014 농림수산식품 주요 통계’를 보면 한국 사람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연간 20.9kg입니다. 그중에 삼겹살 소비량은 인당 9kg정도입니다. (9kg이 어느 정도 양이냐면 본인의 복부와 둘렛살을 손으로… 아, 아닙니다.) 참고로, 닭고기 소비량은 11.5kg, 소고기 소비량은 10.3kg입니다. 비교해보면 우리가 삼겹살을 얼마나 많이 먹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삼겹살에 애착을 가졌는지 살펴볼까요. 역시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를 찾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70년대의 한국인의 연간 고기 소비량은 5.2kg에 불과했습니다. 명절이나 잔칫날, 제삿날에나 좀 먹은 정도입니다. 가난했으니까요. 이것이 80년대에 11.3kg, 90년대에 19.9kg로 두 배씩 늘어납니다. 이쯤에 이르러서야 “고기반찬”이 보편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참고로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2000년대에는 31.9kg, 2014년에는 45.5kg에 도달합니다. 바야흐로 육식의 시대입니다.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80년대 이전까지는 삼겹살은커녕 그냥 고기를 먹는 일 자체가 드문 일이었습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삼겹살”을 키워드로 집어넣어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70년대 이전까지 삼겹살에 관해 검색되는 기사는 단 한 건입니다. 그러다 79년에 가서야 의미있는 기사가 발견됩니다. “축우畜牛로 유명하던 우리나라는 고기구이 요리가 발달했지마는 돼지고기 구이만은 발전을 못한 것 같다. 지금도 ‘여름철 돼지고기는 잘먹어서 본전’이 상식일 만큼 돼지고기요리에는 서툴다. 그간 우후죽순처럼 주점가에 늘어가던 삼겹살 집에도 여름이 시작되면서 사람의 발길은 눈에 띄게 뜸해졌다.” 8월 25일자 동아일보 칼럼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알 수 있겠네요. 삼겹살 집이라는 것이 79년을 즈음해서 성행하였고, 이전까지는 돼지고기 구이라는 것 자체가 낯익은 음식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삼겹살이라는 단어 자체가 표준어로 등재된 것이 94년입니다. 그만큼 역사가 길지 않은 식문화라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지금 형태의 삼겹살 문화는 언제부터 생겨나서 정착하게 된 것일까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설이 있습니다.

먼저 장사 수완으로 유명한 개성상인들이 돼지를 키울 때 두 종류의 사료를 번갈아 먹여서 살코기와 지방질이 겹이 지게 개량했다는 “개성상인 설”이 있습니다. 이게 어디서 나온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수긍이 가는 얘기는 아니지요.

그리고 65년부터 업계를 장악한 싸고 맛없는 희석식 소주의 안주로 삼겹살이 퍼져나갔다는 “소주 안주 설”이 있습니다. 소주 안주로 먹는 삼겹살이야 워낙 보편적이지만 시대별 고기소비량을 볼 때 삼겹살과 소주의 만남은 60년대가 아닌 한참 이후의 일 같습니다.

“노가다 설”은 70년대 건설 현장에 흔했던 슬레이트에 고기를 구워먹던 것이 시작이라는 것인데, 이것 역시 옛날에 흔했던 일이긴 합니다만 이것이 시작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인상적이던 ‘기억’과 ‘기원’이 섞인 이야기겠지요.

“우래옥 설”은 냉면으로 유명한 을지로의 우래옥이 70년대에 삼겹살을 구워 판 것이 시작이라는 것인데, 역시 어떤 근거는 없습니다. 역시 우래옥은 예부터 불고기와 냉면이지요.

가장 유명한 것이 “탄광 노동자 설”입니다. 강원도 탄광촌의 광산 노동자들이 목구멍에 낀 탄가루를 씻어내리기 위해 기름기 있는 음식을 찾아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후에 삼겹살이 중금속, 황사에 좋다는 속설로 이어지게 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속설입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가장 설득력 있게 얘기되는 것이 바로 “일본수출 부산물 설”입니다. 71년에 일본이 돼지고기 수입을 전면 개방하게 되어 돼지고기의 대일 수출량이 급성장하게 됩니다. 조사해 보니 같은 시기에 국내에 기업형 양돈 농가가 등장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주로 소비되는 부위가 등심, 안심 등의 소위 돈까스 용 고기라 나머지 부속물들은 남게 되었고 그때 인기가 없던 삼겹살 부위가 시장에 싸게 풀리면서 삼겹살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설에서 전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어떤 ‘정서’입니다. 노동과 그것을 달래는 가난한 술상에서 오는 정서입니다. 그것이 사북 탄광의 함바집이든 을지로 오피스타운 뒷골목의 깡통집이든 무슨 차이겠습니까. 거기에 싸게 파는 고기가 있었고, 우리가 그 맛에 길들게 됐다는 것이 전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해진 삼겹살은 “부루스타”의 보급과 만나며 대중적으로, 가히 전국민적으로 확산됩니다. 휴대용 가스버너와 함께 삼겹살은 산으로 들로, 바다로 사람들을 따라 나서게 됩니다. 숯과 연탄불로는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호시절이지요. 네. 잠깐 호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IMF가 옵니다.

금세라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이전까지 잘 들어보지 못했던 구조조정, 정리해고라는 말과 노숙자라는 말을 매일 듣고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의외로 IMF와 삼겹살의 궁합이 또 좋았습니다. 강호에 삼겹살 집 창업의 붐이 일었습니다. 1인분 1500원 대패삼겹살이 기억나시나요? 녹차삼겹살이니 와인삼겹살이니 하는 것들이 연일 새로 등장했습니다. 이 집은 삼겹살 1인분에 3000원, 저 집은 2600원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것도 부담스러울 때면 자취방에 선배들에게 물려받은 가스버너와 불판이 있었으니까요. 만만한 게 삼겹살입니다. 그렇게 또 한 세월이 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즘 삼겹살이 옛날 그 삼겹살은 아닙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그 맛에 길들어도 너무 길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너무 많이 먹다 보니 수요와 공급의 간단한 법칙에 의해 삼겹살이 귀해졌습니다.

110kg짜리 돼지 한 마리를 도축하면 삼겹살 12kg정도가 나옵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 아닙니다. 13년 기준 국내 삼겹살 소비량인 27만톤을 채우려면 도대체 돼지 몇 마리를 잡아야 할까요. 그래서 삼겹살의 가격은 점점 오릅니다.

누군 먹고 누구는 안 먹을 수 없으니 모자라는 양을 수입하게 됩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삼겹살의 약 40퍼센트 정도가 수입으로 채워집니다. 그래서 한국은 세계 최고의 삼겹살 수입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 만만한 게 삼겹살이다, 라고 말하기가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조리법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습니다. 이제 수십 년간 삼겹살을 먹어왔고, 그렇게 많이 먹고 있는데 조리법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다라는 것이지요. (건강에도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하고요) 외국인들이 볼 땐 낯설고 박력 넘치는 풍경에 엄청 좋아한다고도 합니다만, 우리야 그간 “삼겹살, 굽는다” 외에 다른 길은 그다지 고민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저 석쇠에 굽느냐 돌판에 굽느냐 정도의 차이였지요. 물론 보쌈(수육, 편육)의 방식이 있습니다만 불과 기름의 향연인 구이의 풍미가 삼겹살이 대중에게 갖는 정서와 더 밀착되어 있는 듯합니다.

 

삼겹살이 예전만큼 만만한 먹거리는 아닌 게 분명하지만 그대도 당분간 그 소비량이 줄어들지는 않을 테지요. 일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던 정서가 유효한 동안은요. 단체 회식이라든가 야유회를 할 때 제일 먼저 삼겹살이 떠오르는 동안은요. 이미 그런 자리의 긍정적인 정서 자체가 많이 해체되기도 하였고, 삼겹살이 차지하던 경제적인 이점이 치킨으로 상당 부분 옮겨가기도 했습니다만. 그냥 옥탑방의 그 친구들이 가끔 보고 싶은 것처럼, 삼겹살이 딱 그렇게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Written by 김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