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연을 한다는 것

최근 친구와 인연을 끊었다.

 

이유는 그 친구의 망한 연애사를 굳이 공유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애가 망했다고 마치 내가 감정 쓰레기통인 마냥 하소연하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고, 이미 봐준 타로점을 몇 번이고 봐달라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 ‘이오 용하더라’면서 내 이야기는 쏙 빼서 스스로 비교하게 만드는 대화법도 싫었다. 굳이 나한테 타로를 봐달라면서 내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이오 이야기만 하는 이유는 뭐람. 게다가 결정적으로, “한남”과의 망한 연애를 어서 끝내라는 충고를 여러 번 했음에도 굳이 계속 만나는 선택을 한 건 그 친구였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끝난 관계를 억지로 부여잡고 이어간 인연이 가면 얼마나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본인의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는 딱 그렇게 냉정하게 그 친구를 쳐낼 수 있을 만큼밖에 그 친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겠지,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귀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좀처럼 인연을 잘 놓지 못하고, 싫은 말도 잘 못 하고, ‘둥글게 둥글게’, ‘좋은 게 좋은 거다’ 류의 관계를 맺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과 모질게 연을 끊는 것은 나에게 참 어려운 일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인지라, 이런 문제는 나만 겪는 일은 아니겠지 생각한다.

 

인연을 끊기 전에는 주변에 그 사람 험담이 는다. 험담하면서 스스로가 내뱉은 말을 다시 되씹으며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이런 말을 해서 내 입을 더럽히는 건 별로 건설적이지 않은데. 하지만 사람이 어디 이성적이고 올바르게만 살아갈 수 있나. 이렇게 뒤에서 험담이라도 늘어놓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너 그러는 게 너무 짜증 나니까 다신 보지 말자”고 쏴붙이게 될 것만 같으니 뒤에서 이렇게라도 한풀이를 하는 거다. 그 친구가 소중해서가 아니라,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니 하소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나와 험담을 나누고, 나에게서 발산된 좋지 않은 감정을 받아주는 상대방도 마냥 좋지 않을 텐데. 그런데 입은 제어가 되지 않는다. 잘 익은 석류가 제멋대로 터져버리듯이 내 안에 쌓여 있던 나쁜 감정들은 자연스레 뒷담화로 터져나와버린다.

 

사람에게 험담하는 일이 미안해지면 SNS를 켠다. 글로라도 이 마음을 쏟아내어야 조금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핸드폰은 감정이 없으니까, 내가 아무리 안 좋은 기운을 내뿜으며 상대를 비난하고 비하해도 그저 문자로 오롯이 받아내 주니까. 미안할 ‘사람’이 없으니까. 만일 험담하는 대상이 SNS 친구라면 ‘특정 친구 제외’기능을 이용하여, 그 친구는 볼 수 없게 숨겨진 속마음을 줄줄 나열한다. 이렇게 속에 쌓인 말을 풀어놓으면 그제야 조금 개운하다. ‘둥글게 둥글게’ 관계 맺기 위해 미처 표현하지 못하고 꽁꽁 숨겨 놓았던 것들을 뱉어내고 나면 쾌변한 것 같은 상쾌함이 폐에서부터 차오른다. 그리고 그 상쾌함 끝에는 늘 이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 처방이 뒤따라온다. 바로 ‘절연’이다.

 

누가 보면 마치 내가 SNS 친구를 차단하는 것처럼 사람을 쉽게 끊어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을 끊어내기까지 최소 한 달은 그 사람 때문에 아프고 힘들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에너지 때문에 스스로가 상처받고 피폐해지는 것을 지켜보며 결국은 상대방과 절연하기로 마음먹는다. 나에게 누군가와 이별하는 선택지를 고를 용기가 있는 이유는 바로 자기애 때문이다. 스스로를 사랑하기에 내가 상처 입고,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움으로 가득한 에너지가 내 마음 한가운데서 나를 좀먹기를 원치 않는다. 내가 나를 미워하게 만드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지 않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은 대체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사한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 사람을 멀리한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관계가 고통스러워 상대방을 멀리한다는데 손가락질한다면 그 사람들도 멀리하면 된다. 그리고 관계는 상대적이기에 나에게나 나쁜 사람일 뿐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일 테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위치로 그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좋게좋게’ 지내기 위해서 억지로 웃고, 불편한 부분도 상대가 상처 받을까 봐 그냥 넘기는 감정노동은 월급 받으면 서만 하고 싶다. 세상은 넓고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뭐하러 만나면 기 빨리고, 좋지 못한 자극을 받는 사람을 선택하여 안 좋은 에너지를 내 안에 쌓는단 말인가. 그동안 ‘그래도 잘’ 지내보려고 애썼는데도 지금까지 그렇게 ‘잘’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와의 관계에서 더 씨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간혹 이런 내 관계방식을 너무 이기적이라거나,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거나, 폐쇄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내가 사는 내 인생이라는 말과 함께. 그들은 내가 상대방의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감정의 굴곡을 겪었는지,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지 모르니까 나오는 대로 뱉는 거로 생각한다. 제 3자의 시선을 신경 쓰며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원하는 것을 등지다가 망가져 버린 사람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나까지 그런 사람들 그래프에 들어가야 하는 걸까? 굳이?

 

이 글은 친구와 절연한 걸 자랑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나처럼 상처 주는 상대방에게 관계의 주도권을 쥐여주며 스스로를 상처입혀왔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렇지 않을 수 있게 용기를 주려고 쓴 글이다. 친구 관계든 연인 관계든 가족 관계든, 어떤 관계를 내가 주도하여 끝내는 일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마음에 쌓아놓은 말을 풀어낸 후 느낀 카타르시스처럼, 나를 좀먹는 관계를 끊어내면 인생은 보다 가볍고, 개운하고, 깔끔해진다고 장담한다. 늘 내 마음을 습하고, 무겁고, 눅눅하고, 우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싹둑 잘라내 보기를 권한다. 당신이 낸 용기에 비해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Written by 흥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