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가 별 게 아니다

필자의 학창시절 「신의 지문」이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강원도에 살았던지라 정확히 도시(?)에서 어떠했을진 알 수 없지만, 신문광고를 하거나 특기적성교육(?!)으로 진행하던 시사토론반에서 관련으로 토론했던 기억도 납니다.

 

아련한 기억을 떠올려 책의 내용을 잠깐 소개해 드리면, 고대문명이 발원하기 전에 번성하던 초고대 문명이 존재했고 대재난으로 인해 지금은 그 자취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미스터리한 증거들이 남아있으며 이 모든 것이 우연일 리 없다는 것이 해당 책의 내용이랍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있었을 법한 음모로 점철된 이 책은 읽는 이에 따라 시간도 잘 가고 제법 흥미로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환단고기 같은 위서를 ‘역사’의 숨겨진 단편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듯이, 해당 책을 여전히 진실이라고 믿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정교하게 잘 짜인 음모론을 듣고 있자면 퍽 재미있기도 합니다. 특히 뭔가 금지되어 있거나 그럴싸한데 자신의 기호와도 찰떡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때로는 안타까운 사회현상에 이런 음모론들이 편승해 기승을 부리기도 합니다. 요즘은 너튜브 덕에 그 수위가 더 심하기도 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 몇 달간 책 ‘신의 지문’을 접하는 것 같은 일련의 사건을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익히 잘 아시는 GS25의 ‘캠핑가자’ 포스터인데요. 이 포스터가 뭐라고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고, 덕분에 모 반동정당은 청년 당 대표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이 심각한 어둠의 진실을 파헤친 인터넷 전사들은 해당 포스터에 ‘남성혐오’라는 거대한 모종의 ‘음모’가 숨어있다고 말했습니다.

 

논란의 포스터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남성혐오를 상징하는 손동작이 사용되었고 megal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있다는 것 등이 그 이유였다지요. 사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당장 너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갑작스럽고 뜬금없지만, 르네상스 시대로 떠나봅시다,

 

혹시 미켈란젤로라는 화가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유명하다 보니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겠지요? 잘 알려진 것처럼 조각, 회화, 건축, 쌍절곤(?!!) 등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화가입니다. 그가 남긴 많은 걸작이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모르시는 분 없을 듯합니다.

 

아담의 탄생

 

그게 어딘데? 라고 생각하실지 몰라도 사진만 보면 ‘아!’하실 듯합니다. 흔히 우리가 천지창조라고 알고 있는 이 그림의 제목은 ‘아담의 창조’라고 합니다. 짧은 지면상 간략히 설명해 드리자면 성당 천장화의 많은 챕터 중 하나인 ‘천지창조’에 포함된 그림이라 할까나요?

 

저 손들을 보라!!

 

아담의 창조는 광고나 짤 등을 통해 잘 알려졌듯이 ‘하느님’이 손가락 끝을 대며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데 가만히 보시면 저 손가락 보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태초에 빛이 있고 난 이후 아담을 빚을 때부터 이 음모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안 믿으면…

 

모든 게 우연일 리가 없는 이 음모는 결국 ‘새우깡’을 이렇게 쥐게 만드는 기적을 행하기도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토록 사회에 암약하는 페미들이 그토록 무서운 존재인 겁니다.

 

무시무시함이 느껴지는가?!

 

혹시나 모르시고 맞장구치는 분들이 있을까 말씀드리면 냉소적으로 조롱한 것이니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음모론을 소비하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미스터리한 어떤 상징이나 기호, 혹은 사건들은 여전히 소설과 영화, 드라마 같은 창작물들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음모론들은 유쾌하고 재미있기도 한데, 마치 베일에 싸인 51구역을 ‘나루토런’으로 뛰면 군인들의 총알을 막을 수 있다며 진행된 행사처럼 말입니다.

 

만화 「나루토」에 나오는 닌자들의 질주 모습을 통칭 ‘나루토런’이라 부른다.

 

대부분 얼토당토않거나 SNS에 인생을 다 쏟아붓는 것과 동일하게 음모론에 심취한 분들을 주변에서 보며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음모’들은 매우 정치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는 마냥 우습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적 범주에서 자행된 통킹만 사건이나 관동대지진 학살을 이야기하기에 너무 거창할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행위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주체가 개인인가 국가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겠지요? 앞서 언급한 사건들은 침략이나 학살의 명분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며 너무 나갔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다시금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GS25 포스터 사건은 이후 불매운동으로 이어집니다. 유사한 논란이 점화될 때마다 정부 기관과 기업이 앞다퉈 빠른 손절과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해당 사건을 등에 업고 ‘남성혐오’의 상징과 발화들이 작동되고 있다고 시류에 편승해 보기도 했습니다.

 

혐오를 양산해 낸다는 것과 공격의 명분을 제공하는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악질적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전형적인 반지성주의라면 반지성주의겠습니다만, 이 일로 거품을 무는 분 중에서 저 내용을 놀이나 공격의 빌미로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사회적으로 암약하는 페미의 검은 손길이라고 굳게 믿는 분이 있다면, 우선 정신건강을 좀 돌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해당 커뮤니티에서 열폭하는 분 중에서 많은 이들은 ‘나는 일베도 아니고 거기서 활동하지 않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느 순간 일베가 되어 버린다’라며 화를 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민주당 아재들이 보수적인 소리를 하면 ‘일베’라고 해서 더 그런 경향들이 있겠습니다만 특정 지역을 싫어하고, 사회적 약자를 싫어하거나 혐오하고 증오한다는 경향성을 제법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일베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베짓’으로 통칭되는 어떤 것을 직간접적으로 옹호하고 동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제법 많아 보이긴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상이나 행위 등에 대한 강한 반발을 백래쉬라고 부릅니다. 사회적으로 이런 반작용은 언제나 전역사적으로 일어났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러한 반발은 단순히 ‘달에 나치의 비밀기지가 존재한다’ 같은 류 와는 그 결이 매우 다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음모론의 탈을 쓰고 사회문제로 야기되고 있는 이런 일은 단순히 ‘음모’로 치부할 것이 아니겠습니다. 음모의 탈을 썻지만 혐오를 바탕으로 한 명확한 의도가 있으니 말이지요.

 

이렇게 혐오를 등에 업고 자행되는 백래쉬는 흑인의 인권을 위해 결성되었던 흑표당에 대한 반발로 백인우월주의를 표방하며 생겨난 아리아 형제단의 탄생과 비슷해 보입니다. 굳이 비유해도 일베도 아니고 파시스트 갱단이냐며 흥분하실 분들이 있다면―그럼 잘하던가―잠시 이야기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누군가의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에 내가 가진 이권이 사라진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세상을 말세라고 느끼며, 이 일을 육탄으로라도 저지하겠다고 여기신다면 크게 다른 거 없지 않겠습니까?

 

아리안 형제단의 문신

 

비단 각종 포스터에 보이는 손가락을 보며 흥분하는 것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세상에 모든 것은 맞물려 돌아가거든요. 이 일로 이득을 보며 배를 채우는 분명히 이들이 있답니다. 그들이 특정 단체나 특정 커뮤니티 등을 통해 지금껏 다양한 형태의 폭력으로 ‘여성혐오’를 표현해 왔고, 이에 동조하는 많은 이들의 모습을 보자면 포스터 속의 손가락이 남성혐오를 나타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이토록 강한 힘을 가져왔는가는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닐 겁니다. 이 거대한 혐오의 나선에 편승하여 이득을 취하고, 더 거대한 혐오를 일으키는 이들에겐 참 험하고 나쁜 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답니다.

 

스스로 신성 로마 제국이라 칭하였고 아직도 칭하고 있는 이 나라는 딱히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

 

‘그 손가락’이 나타내는 의미가 있고, 그것이 나를 분노하게 만들어 천하를 잃은 것처럼 부들부들하는 분들께 한마디 첨언하고자 합니다. 우선 본인의 남성기가 조롱당하면 더는 자신에게 내세울 것이 없다고 느끼실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답니다. 게다가 단 한 번도 남성기는 무기 같지도 않고, 무기도 아니고, 무기인 적도 없었으니 이제 이렇게 자신을 굴레 지우는 맨박스에서 벗어나 광명 찾으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음습하게 암약하는 거대한 세력이 각종 기표를 통해 ‘ ‘남성혐오’를 조장한다고 믿는 당신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혐오’라는 걸 다시금 말해주고자 합니다. 백래쉬가 별 게 아닙니다. 그런 행동이 바로 백래쉬랍니다.

 

 

Written by 박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