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별 게 아니다

내 친구 A는 본인을 트랜스남성(FTM)으로 정체화 했지만 포궁(자궁)을 갖고 있고 월경을 한다는 이유로 본인의 성 정체성을 부정당하고 여성이라고 불린다. 심지어 일부 여성들은 내 친구를 본인을 여성이라고 정체화하지 않았다며 한국 사회에서 여성 연대를 해체하는 존재라고 욕하고 있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이 친구는 월경을 하는데 평소에 남자화장실을 이용하다가 월경을 할 때는 남자화장실을 이용하면 생리대를 가는 소리 때문에 남자화장실을 이용하기가 어렵고 성폭력에 노출당할 위험 때문에 화장실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없다.

 

내 친구 B는 본인을 트랜스여성(MTF)으로 정체화했다. 본인을 여성으로 정체화한 후 심각한 디스포리아(성별위화감, 본인이 정체화한 성별과 본인이 지정받은 성별 간의 괴리에서 오는 위화감,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디스포리아로 인해 우울증을 앓고 있다)를 느꼈지만 국가에서는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수술을 미용수술로 취급해서 의료보험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B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뒤 본인이 3천만 원가량을 모아 자비로 성기재건 수술을 받았다. 내 친구는 수술을 받은 후 디스포리아를 없애고 본인이 원하는 성별로 살 수 있게 됐지만 어떤 사람들은 내 친구를 억지로 만들어낸 여성이라며 조롱하고 어떤 사람들은 트랜스여성의 존재 자체가 여성혐오의 상징이라며 언급하기도 어려운 악담을 쏟아냈다.

 

나는 법적 성별이 남성이지만 나를 남성, 여성 어느 한쪽으로 생각하지 않는 논바이너리다. 나는 주변 비성소수자 지인들에게 커밍아웃하면 ‘형은 그러면 게이나 레즈비언은 아닌 거야?’ ‘꼭 여자가 되고 싶다는 건 아니구나?’ ‘어찌 보면 철학적 접근인 거네?’ 등의 말을 하며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지, MTF 트랜스젠더인지를 끊임없이 검증하고자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남자를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굳이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안심한다.

 

내 친구 A,B, 그리고 나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다.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정체성으로 인해 차별을 받았다. 트랜스젠더가 외모로 추정되는 성별과 주민등록상의 성별이 반대라는 이유로 본인이 원하는 직군에서 일하지 못하거나 동일한 스펙을 갖고도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합격에서 배제되는 일은 수도 없이 많다. 많은 회사에서 트랜스젠더를 이질적 존재로 여기고 채용을 하지 않기에 오늘도 트랜스젠더는 콜센터, 택배 물류센터 등 취약한 노동환경에 노출된다.

혐오가 별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한다면, 본인이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이 혐오다. 시스젠더(법적 성별과 본인이 생각하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트랜스젠더가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트랜스젠더가 혐오에 노출돼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바라보고 느끼는 성별이 아닌 본인이 생각하는 성별 정체성이 그 사람의 성별 정체성이다. 트랜스남성은 트랜스남성이고, 트랜스여성은 트랜스여성이다. 밖에서 바라보기에는 아무문제 없는 여-남 커플인 것처럼 보이는 커플이 사실은 논바이너리 커플일 수 있다.

여성이 여성으로 차별 없이 당당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트랜스젠더도 트랜스젠더로서 차별 없이 당당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소망한다.

 

 

Written by  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