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죽어서 어디로 갈까?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이 글귀는 모든 현충탑에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 ‘민족은 허구 아닌가?’, ‘조국과 왜 함께해야 할까?’, ‘마지막은 드레곤 슬레이브 같은 마법주문인가?’ 라는 생각을 하셨을까요? 아니면 피 끓은 민족애를 느끼며 조국에 심장 박도수를 맞추고 싶어지시나요? 독자 제현들의 국가관과 민족관이 어떨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필자는 국가주의와 영토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에 대해 경계하는 편입니다. 그런 견해와는 별도로 이렇게 서두를 시작하는 연유는 지면을 통해 누군가를 현충원에 묻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하는 어떤 논란에 대해 조금 말해 볼까 하기 때문입니다.

 

현충원 추모탑 비석

 

지난 5월 25일 운암 김성숙 선생 기념사업회가 ‘2020 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행사에서 당시 당선인이었던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친일파 묘역을 파묘하는 운동과 함께 법률안도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또한 함께 참석한 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지금까지 묻힌 자들도 문제지만 앞으로, 예를 들면 백선엽의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에 미래통합당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으며, 조선일보는 ‘백선엽 장군이 현충원에 못 간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이 아니다’라는 사설을 전직 장성 모임인 성우회는 ‘백선엽 장군에 대한 매도는 국군을 부정하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옹호에도 불구하고 백선엽은 2009년 대통령 직속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국가가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습니다. 그는 일본강점기 만주에서 간토특설대 장교로 복무했는데, 간도특설대는 ‘조선인으로 조선인을 잡는다’는 전략에 따라 만주 일대의 항일독립군과 항일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대부분 조선인 자원자로 구성된 부대입니다. 이들은 잔혹한 토벌 작전을 전개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중국 측 기록을 반만 믿어도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전쟁범죄란 전쟁범죄는 죄다 저지르며 포상과 훈장을 쓸어 담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행각으로 볼 때 강제로 마지못해 싸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역했다고 보기에, 비록 사병일지라도 파악된 인원은 모조리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물며 지휘권이 있는 장교는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간도특설대의 모습

 

백선엽의 이러한 경험은 훗날 한국전쟁에서 다시금 빛을 보게 되는데, 다부동 전투의 승리와 평양 최초 입성으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지리산 대토벌 작전을 지시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백야전전투사령부(Task Force Paik)가 꾸려지고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을 시작하는데 당시 백선엽이 채택한 작전명은 쥐잡기 작전(Operation Rat Killer)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름에 걸맞게 토끼몰이를 하듯 포위망을 좁혀가며 산골의 가옥과 각종 시설들을 모두 소각하는 초토화 작전을 전개해 주민들을 소개하고 포로들을 수용소로 끌고 왔다 합니다. 빨치산 대토벌은 총 4차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작전으로 6,606명이 사살되고, 7,115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작전 참모를 지낸 공국진 대령은 1964년 전사편찬위의 한국전쟁사 편찬을 위한 구술 채록에서 지리산 주변 9개 군 주민이 20만 명인데 사령관 백선엽은 ‘이 안에 있는 것은 다 적’이라 말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주민들을 소개했다고 하지만 실상 토벌을 통해 포로가 된 대다수는 ‘적’보단 ‘양민’에 가까운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간단한 심문을 통해 바로 전쟁포로가 되었는데 당시 군은 토벌 성과를 언론에 널리 알리면서도 여성과 아이들 위주의 사진을 찍어 배포하는 것은 철저히 검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백선엽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그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견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이유로 얼마 전 6월 8일 국민의당 간잽이 안철수 대표는 백선엽에 관한 논란에 대해 ‘홍범도 장군이 일제와 맞서 싸운 영웅이라면 백선엽 장군도 공산 세력과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이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진 모르지만, 필자는 안철수 대표의 저 발언을 보며 한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듯했습니다. 빨갱이를 죽이는 일이면 민간인 학살도 괜찮다고.

 

 

Written by  노란머리 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