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죽은 사람의 필모그라피를 따라간다는 것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을 보며 생각한 것들

*이 글은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홍콩영화 세대는 아니다. 그래서 홍콩의 영화배우들, 그중에서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장국영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갖는 애틋한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장국영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천녀유혼> 앞부분만 조금 본 적이 있는 중학생이었다.

처음으로 장국영의 영화를 본 것은 2017년이었다. <아비정전>이 재개봉했던 때였다. ‘아비’를 연기한 장국영은 잘생겼고, 영화 특유의 미장센도 좋았고, ‘발 없는 새’에 대한 대사도 마음에 들었고, 장만옥이 연기한 ‘소려진’이 유덕화가 분한 경관과 만들어가는 관계도 애틋하게 남았다. 마지막에 등장한 양조위를 보고 ?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했다. 근데, 그냥 그것뿐이었다. 아다치 미츠루의 <H2>를 서른 넘어서 정주행 했을 때 들었던 기분, 그 기분이 또 들었다.

 

‘아, 나는 이걸 보고 좋아하기에는 나이를 먹어버렸구나.’

 

 

그러던 내가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를 보러 간 이유는 딱 하나였다. 모 님이 이렇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스크린에서 장국영의 영화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이번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 마지막 기회일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바로 이 영화를 예매했다.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딱 두 가지가 있었다. 이 영화가 경극을 다루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장국영이 나온다는 것. 그 외의 것은 까맣게 몰랐다. 시대 배경이 언제인지, 정확히 장국영이 무슨 캐릭터를 연기하는지, 주요 스토리라인이 어떤지…….

그렇게 상영관에 입장한 나를 반겨준 것은 혼란이었다. 영화 전체를 감싸고도는 혼란과 이 영화의 내용을 하나도 몰랐던 내 스스로에 대한 혼란. 2시간짜리일 줄 알았던 영화는 사실 3시간짜리였지만, 3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영화관에서 나온 뒤에는 주변을 오래도록 걸었다. 영화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루종일 멍했다.

이 영화를 왜 내가 이제야 봤을까? 그리고 왜 <아비정전>을 봤을 땐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요새 들어 생각하고 있는 어떤 주제와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 다루고 있는 배경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면서 나는 자꾸만 문화대혁명을 겪지 않은 중국은 어떤 형태일까, 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너무나 많은 것을 파괴해버렸다. 현실에서도,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속에서도. ‘뎨이’와 ‘단샤오러’, ‘쥐샨’은 일본군이 밀려들어오던 중일전쟁 시기도 견뎠고 국민당이 박해하던 국공내전 시기도 버텨냈지만, 중국 공산당이 이끈 문화대혁명 앞에선 무너졌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민재판 신은 너무 끔찍하고 비참하여 제대로 볼 수 없다. 경극도, 이들의 관계도 ‘단샤오러’의 엉망이 된 화장처럼 무너져 내린다. 오래된 영화 특유의 뿌연 색감때문에 이 영화의 비극성이 더욱 강조되는 듯하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들 셋은 나름대로의 묘한 삼각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갔을까? 장담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비극적인 결말을 맺진 않았겠지.

장국영이 연기한 ‘뎨이’에게 마음이 가는 것과 별개로 나는 ‘뎨이’와 묘한 관계를 형성했던 ‘쥐샨’도 좋았다. (그렇다, 이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나는 ‘쥐샨’을 연기한 배우가 공리인 줄도 몰랐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현실을 빨리 파악했던 인물, 쥐샨

 

‘뎨이’와 ‘단샤오러’의 관계는 금방 파악할 수 있는, 감정선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관계였지만 ‘쥐샨’과 ‘뎨이’의 관계는 그렇지 않았기에 더 좋았던 것 같다.

 

시종일관 ‘단샤오러’에게 경극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그는 여성이기에 경극에 참여할 수 없는 외부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단샤오러’보다 ‘뎨이’를 더 잘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는 캐릭터였다. ‘단샤오러’보다 더한 애증으로 묶여 있던 ‘뎨이’와 ‘쥐샨’. 그 사이에는 ‘단샤오러’가 있다. 둘 다 ‘단샤오러’를 사랑했고, ‘단샤오러’에게 버림받았으니까.

 

그래도 역시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은 장국영을 위한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장국영의 ‘뎨이’는 그야말로 한 떨기 꽃과 같았다. 장국영은 ‘뎨이’를 처절하고 애처롭게 연기해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장국영을 그리워하는지,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을 본 나는 이제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P.S: 중학생 당시 문화대혁명을 직접 겪었고, 홍위병에 참가해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을 만들었던 천카이거 감독. 그러나 현재 천카이거 감독은 중국 프로파간다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 아닐까. 언제나 현실은 픽션을 뛰어넘는다.

 

Written by  박복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