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진정한’여성이었던 적이 있는가

  • 숙명여대 신입생 논란에 부쳐

 

도쿄여대, 니혼여대, 쓰다쥬쿠대학, 지쿠시죠가쿠인대학, 오차노미즈여대, 나라여대, 미야이가쿠인여대1)

 

위 대학교의 공통점은 일본에 위치해있다는 점 외에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트랜스여성들의 입학을 전면 허용하거나, 허용 예정인 여자대학교라는 점이다. 이 학교들의 독특한 점은 또 있다. ‘여성’의 기준을 법이나 사회적 시선이 아닌, 당사자 학생 스스로의 생각으로 지정한 것이다.

미야이가쿠인여대 히라카와 아라타(平川新) 총장은 “학생 개개인이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대학의 사명”이라며 “캠퍼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풍요롭게 하는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2)

성소수자 인구의 비율은 전체 10%라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트랜스젠더 인구의 비율은 그 중에서도 소수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라는 단어의 넓은 의미3)를 생각한다면, 사실 어느 누구도 ‘진정한’시스젠더4)였던 적은 없을 지도 모른다.

나는 태어났더니 보지를 달고 있었다. 의사는 나를 여성이라고 불렀고, 모부님은 나를 딸이라고 불렀으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2를 부여받았고 어린 시절은 머리를 길게 길러 땋은 채로, 구두와 치마를 입고 찍은 사진이 다수였다. 어린이집 학예회에서는 최진사댁 셋째 딸 역할을 맡아 앙증맞은 애교를 부리며 남학생에게 입을 맞추기도 했다. 어떤 날은 마녀 역할을 맡기도 했고, 초등학교 학예회 때에는 빨간 부직포를 잘라 치마로 만들어 입고 촛불을 들고 노래 불렀다. 그러나 그 시절을 지내는 동안 나는 단 한 차례도 편안한 적이 없었다. ‘여성’이라는 이름에 달라붙는 수많은 규제들은 하나도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주지 못했다. 어머니가 비싼 구두와 예쁜 옷을 입혀줘 봤자 명랑한 성격의 어린이였던 나는 삼 일을 가지 못해 구두에 상처를 내고, 예쁜 옷을 찢어먹기 일쑤였다. 선생님들은 똑부러진다며 날 예뻐했지만, 똑부러진 만큼 드셌던 나는 어린이집 상급반 오빠와 미끄럼틀 순서를 두고 피튀기는 혈전을 벌이기도 했다. 사회에서 ‘여자아이는 이래야지’라고 부여한 틀에 조금도 걸맞지 않은 어린이였고, 어른들이 ‘여자아이가’라고 시작하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움츠러들었다. 그들 말에 의하면 나는 단 한 번도 여자가 아니었다.

내 바로 밑에 동생은 태어났더니 자지를 달고 있었다. 조그만 아이의 성기가 뭐 그렇게 대단한 볼 일이라고 동생의 백일사진은 올누드로 촬영되었다. 성기가 앞으로 돌출된 형태로 태어났을 뿐인데 나보다 늦게 태어난 동생의 주민번호 뒷자리는 1로 시작했다. 짧게 빡빡 깎은 머리를 한 동생은 총명했지만 내성적이었고, 다른 남자들이 다 한다는 공차기 하나 즐거워하지 않았다. 대신에 방에서 책읽기를 즐겼으며, 말재간을 잘 부렸고, 나와는 달리 조용하고 수동적이었다. 어디 나가서 맞고 오는 건 동생이었고, 나가서 대신 싸워주는 건 나였다. 그런 동생을 보고 어른들은 ‘사내가’로 시작되는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들 말에 의하면 동생은 군대를 다녀오고 어엿하게 자기 밥벌이를 하지만, 멀쩡한 남자애는 아니었다.

내가 조금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을 때, 나는 제대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 특히 내가 어울려야 하는 ‘여자’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공유하는 문화양식에 좀처럼 끼어들 수 없었고, 이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했다. ‘여자이기 때문에’허용되었던 행동들에 나는 강한 거부감을 느꼈고, ‘남자기 때문에’허용되는 행동에 강한 애착을 느꼈다. 스스로를 남자/여자라고 인식해 그런 행동들을 선망했다기 보다는, 또래 여자아이들을 내가 이해할 수 없었고 또래 남자아이들의 행동방식이 더 이해가 쉬웠기 때문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는 더욱 극대화 되었다. 사춘기 여자아이라면 할 법한 행동이라고 하는 외모를 꾸미는 일에도 난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이 하니까 따라서 몇 번은 해봤지만, 역시 내가 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고 인식하진 않았다. 다만, 여자아이들이 그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도 이상하고 별난 존재였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여자아이들’사회에 소속되어야 했다. 남자아이들에게 허용된 자신감이나 자유, 강함은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그들의 서열문화는 소름끼치도록 싫어서 그 사이에 섞일 수 없었고, 여자아이들이 관심가지는 아이돌이나 화장, 예쁜 옷은 내 관심사와 무관했다. 내 관심사는 주변의 아이들과 많이 달랐고, 실로 나다웠다. 그럼에도 사회와 부모님은 나를 여성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학교라는 공간에서 혼자서만 즐거운 데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자아이들 사회에 융화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늘 궁금했다. 여자아이들은 왜 자꾸 자기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지, 얼굴에는 왜 자꾸 뭘 덧바르려고 하는지. 남자아이들은 왜 다른 사람을 괴롭혀서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지, 왜 욕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건지. 남자아이는 이래야하고 여자아이는 이래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누가 정한 건지. 사회가 정한 이분법적 틀에 억지로 소속되려 하면서 나는 늘 궁금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가 그렇게 특이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외에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중에는 성기로 구분지어진 성별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트랜스여성5)은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그러므로 여성이 될 수 없다고.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보지를 달고 태어나서 일생동안 여성 커뮤니티에 소속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나는 누구란 말인가.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인식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여성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는 나는 여성인가 아닌가. 단지 성기가 보지이기 때문에 여성인 거라면, 나를 여성으로 인식하지 않는 상태의 나는 그럼 무엇이 되는 걸까. 내가 스스로 여성도, 남성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느낀다는데 ‘너는 여성이 아니야’ ‘너는 여성이야’라고 외부에서 정해주는 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여자’라는 정체성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트랜스여성은 성별이분법을 고착화 할 뿐이라고. 그들은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는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기준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자지를 달고 태어나 그 기준을 강화하는 존재라고. 정말 트랜스여성이 성별이분법을 ‘강화’하는가? 트랜스여성은 본인이 여성임을 인정받기 위해서 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의학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억지로 고정된 여성의 이미지일 것을 강요받는 존재다. 트랜지션 과정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알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별이분법 강화의 희생양이 바로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 한 트랜스여성에 대한 배제적인 시각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시스젠더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시스젠더의 시각으로 이야기한다. 트랜스여성도 여성이기 때문에 한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그들에게 머리를 기르고, 가슴을 넣고, 성기를 재건하고, 수동적이고,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게 만드는 것은 이미 여성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법적, 사회적 기준이다. 트랜스여성들은 그 기준 앞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거금의 돈을 쓰고, 복잡한 법적 과정과 의학적 과정을 (원한다면)거치게 된다. 트랜스젠더의 삶과, 그들의 트랜지션 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나온 말이 바로 트랜스여성이 성별이분법을 고착화한다는 이야기다. 몸쓰는 일을 좋아하고 치마보단 바지를 즐겨 입으며 머리가 긴 것 보단 짧은 게 좋고, 굳이 가슴이 커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트랜스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로부터 ‘여성’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의사 앞에서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안 좋아했고 인형놀이가 즐거웠으며 치마를 입고 머리 기르는 모습을 자꾸 상상한다. 내 가슴이 더 컸으면 좋겠고, 성기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진술을 해야만 F64.07)을 획득할 수 있다. 성별을 정정하기 위한 기준은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느끼는가에 덧붙여, “왜”여성이라고 느끼는가이다. 시스젠더에게든 단 한 번도 주어진 적 없는 질문이 요구된다.

태어나면서 의사가 자신에게 지정한 성별을 그대로 답습하는 여성들 역시 사회가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젠더롤에 순응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그것이 성기의 모습에서 비롯되고 몸매의 모양에서 비롯된 이분법적 갈라치기임을 알면서도 예의이기 때문에 화장하고, 가사노동에 익숙한 것이 당연하고, 감성적이며 차분하다는 고정관념에 순응한다. 조금이라도 이성적인 면모를 보인다면 ‘여자치고는’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자기주장이 뚜렷하다면 ‘기 센 여자’가 된다. 외형만으로 ‘여자’라고 구분 짓고 여성의 속성을 부여하는 세상의 규칙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트랜지션6) 과정을 거치는 일은 단지 성형수술에 불과하다. 여성인 사람이 조금 더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자기만족을 위하여 외모를 변경하는 일과 같은 일이다. 트랜스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난 트랜스젠더일 뿐이다. 남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부장제 안에서 남성들이 받게 되는 혜택을 누리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트랜스 여성 중 누구도 그런 혜택을 바라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것을 온전히 ‘혜택’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 앞에서 누구보다 위화감을 느끼고 무언가 ‘잘못됐다’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고민해 온 사람들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인정받기 위해 전신을 수술하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성별을 가로지르는 행위야 말로 가부장제와 성별이분법 타파에 전달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을 여성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두고 수많은 페미니스트들과 트랜스젠더퀴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성별정정 기준에서의 여성혐오와 짙은 이분법을 부수어나가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여성을 여성이게 하는 것은 치마도, 보지도, 화장도 아닌 ‘여성이란 ~~이다.’라는 고정관념이기 때문이다

 

Written by 승히

1)  [출처: 중앙일보] ‘트랜스젠더 허용’ 일본 여대들 “스스로 여성이라 인식하면 입학”

2)  [출처: 중앙일보] ‘트랜스젠더 허용’ 일본 여대들 “스스로 여성이라 인식하면 입학”

3) 트랜스젠더란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성별과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이 불일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흔히 통용되며, 남성       → 여성, 여성→남성을 가장 대표적 예로 든다. 그러나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그 외에도 무수하게 쪼개져 있으며 50여가지가  넘는 정체성들이 있다. 여성인 동시에 남성일 수도 있으며 자신을 그 어떠한 성별로도 인식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흔히들  고정적으로 생각하는 성별정정 수술을 받은 사람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과 상황에 처한 트랜스젠더를 의미하고자 하였다.

4) 트랜스젠더의 대응어로,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성별과 실제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

5) 흔히들 MTF라고들 표현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정정을 마친 사람뿐만이 아니라 남성을 부여받았지만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6) 트랜스젠더들이 성별정정하는 것을 뜻하는 말

7) 성정체성장애의 분류코드. F64.0 혹은 F64.9 받아야만 의학적으로 성별정정 수술, 시술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