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과 헤드셋

한 사람 당 1㎡도 되지 않는 공간. 이 사람 저 사람이 사용하던 비위생적인 작업대. 환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밀폐된 구조와 그 안에 다닥다닥 붙어 서로 입김을 주고받는 백여 명의 사람들. 화장실조차 허락을 구하고 다녀오고, 한 시간에 10분간의 휴식조차 제한되는 이곳.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간혹 점심시간을 포기하는 사람도 나오는 이 곳. 사람이 아닌 소모품으로 취급되고 하루 종일 일하며 욕을 먹지 않는 날을 감사하게 되는 이곳. 밀폐된 공간 안에서 탁한 공기로 머리가 어지러워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아파서 쓰러져가는 동료가 있어도 병원에 보내주지 않는 사내 방침에 한 마디 저항을 하기도 힘든 이곳. 먼 과거, 약 70~80년대 즈음 재봉틀이 굴러가던 그곳과 매우 흡사한 구조를 가진 이곳. 이 곳은 2020년대 현존하는 직장이며, 누군가 살면서 한 번씩은 꼭 마주하게 되는 곳이다.

 

이곳의 이름은 고객센터(콜센터)다.

 

2020년 3월. 코로나감염증바이러스-19(약칭 코로나19)로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가능한 재택근무를 하는 이 때에, 웬만하면 외출을 자제하는 이 때에, 반드시 출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버스운전 노동자, 택시기사, 마트 노동자, 그리고 고객센터 노동자. 그 중에서도 필자가 근무하는 고객센터의 노동환경과 건강권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한다. (필자는 고객센터 중 유통업계의 콜센터에서 일하기 때문에 글이 한정적일 수 있음은 양해 부탁드린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감염증바이러스가 보고되었다. 이후 2020년 1월 국내 첫 감염자가 나왔고, 그 뒤 급속도로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하여 공포와 불안을 떠안게 되었다. 코로나19는 새로 생겨난 바이러스인 만큼 알려진 바가 없어 ‘폐 섬유화’등의 다양한 괴담을 낳기도 했다. 감염경로가 비말(침, 땀 등의 분비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히 서로 접촉을 피하게 되었고, 접촉에 예민해지게 되었다. 이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유통업이 활성화되었고, 콜센터 전화량은 폭주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코로나19 국면에서 고객 상담을 하는 상담사들도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있는 일개 시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니고 있는 직장은 코로나19의 감염에서 그들을 전혀 보호해주지 못했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튀어나오는 침이 코로나19의 전파 경로임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회사 측은 그 어떠한 방책도 내놓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쇼핑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마스크나 손세정제 등을 어느 것 하나 구비해두지 않았다. 개개인에게 ‘마스크 쓰고 근무하세요’의 공지가 한 차례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점차 사회적 거리두기로 화두가 모아지고 ‘약속 잡기를 자제하라’ ‘집회를 금지하라’는 공지가 지역사회로 전파될 때, 콜센터 노동자들은 개인당 한 평도 되지 않는 공간을 할당받고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서 누구의 침이 튀었을지 모르는 헤드셋을 끼고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공간 안에서 최소한의 휴식도 보장받지 못한 채로, 꼭 필요한 화장실도 보고한 뒤에야 갈 수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집단 발병은 예견된 일이었다.

 

2020년 3월 9일, 너무나도 당연하게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가 집단 발병했다. 코로나 국면에 들어서면서 온도를 재는 등의 정부 지침을 따르긴 하지만 열이 펄펄 끓어도 고객사(원청)와 약속한 ‘응대율’을 맞추기 위해 직원을 조퇴시키지 않는 곳이 바로 콜센터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열이 나거나 아프면 바로 조퇴시키라는 공고가 지속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고열에 인후통으로 고통스러워하던 필자의 동료는 응대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조퇴하지 못했다.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이 일어나고 얼마 뒤였다. 처음에는 조퇴시켜줄 테니 그래도 출근은 하라던 회사. 그러나 출근하자 4시간만 더, 몇 시까지만 더 시간을 끌더니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조퇴를 시켜주었다. 이리도 안일하던 회사는 서울시에서 ‘콜센터 집중단속’을 시작하자 직원들에게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라. 착용하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는 공지를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마스크 구매는 사비를 들여서 하라는 지시였다. 그리고 바이러스 전파를 예방하는 데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손세정제를 대량으로 구매해 눈에 잘 띄는 곳에 몇 개 배치해두었다. 이것이 코로나 예방을 위해 회사가 보인 최선이었다. 그래도 필자의 회사는 조금 나은 편이었다. 단속 전에 손세정제도 비치는 되어 있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파티션도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파티션이라는 최소한의 방패도 제공되지 않은 채로 일해야 하는 곳도 있고, 전 직원에게 달랑 일회용 마스크 한 장을 배포하고 마는 회사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놓고 항의했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싶다면, 정말 직원들의 건강에 관심이 있고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면 손세정제를 사서 비치할 시간에 마스크를 서칭해서 대량구매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마스크 5부제를 실행할 정도로 물량이 달리는 상황이지만 집단감염 예방을 위해 분명 지자체를 통한 지원 혹은 대량판매 루트가 분명히 있을 텐데 알아 볼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사비를 들여 끼라고 한다면 어느 직원이 달가워하며 따르겠냐고. 이 제안은 받아들여져 추후 인당 10개의 마스크가 지속적으로 제공되었다. 그리고 서울시 방문 이후, 재택이 가능한 인원은 재택근무로 전부 돌리고 빈자리를 활용하여 직원들을 한 칸씩 띄워서 앉히는 등의 환경 조정을 감행했다. 그러니 필자의 회사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 것이다. 이조차도 이루어지지 않는 회사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공무원들이 오는 잠깐 동안만 바짝 감염예방을 위한 활동을 하는 ‘척’ 하는 센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장이 그렇겠지만 서비스직, 특히 전화 상담을 주로 하는 콜센터 상담원들은 기본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죽하면 콜센터 상담원이 3D업종 중에 하나로 꼽히곤 할까. 별다른 스펙이 없어도 쉽게 취직할 수 있는 곳이기에, 그만큼 사람이 쉽게 구해지는 곳이기에 직원에 대한 존중과 배려 등이 없는 회사가 바로 콜센터 하청회사다. 직원들 역시 그런 회사에 큰 정을 붙이지는 않기 때문에 속히 말해 ‘수틀리면’ 그만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여기서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넘어가더라도 사측끼리 블랙리스트를 공유하지는 않기 때문에 재취업도 쉽다. 때문에 직원들은 항의하며 감정을 소모하느니 그냥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회사 역시 이 직원이 떠나더라도 금방 다른 직원이 그 자리를 메울 수 있고, 짧은 교육기간을 거치면 한 사람 몫을 하는 사원이 생기게 되니 큰 부담 없이 직원을 대한다. 때문에 콜센터 직종은 인권문제와 임금문제 등의 이슈 앞에서 지속적으로 개선 없이 몇 년째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처우는 한 사람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는 한 나아질 수 없게 된다. 희생자가 발생하여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아야만 뒤늦게야 사측은 ‘사회적 체면’을 위해 행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상황이 그저 ‘고마운 회사’라고, ‘우리 회사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주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콜센터는 감염병이 이슈가 되는 즉시 지역사회와 직원의 건강을 위해서 진작 위와 같은 조치가 선행했어야 한다. 나라 전체가 심각성을 인지함에도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심각한 재난 수준의 상황보다 더욱 두려운 ‘계약’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객사와 계약한 투입률과 달성률을 보이기 위해서라면 직원들 상태가 어떻든, 지역사회가 해당 센터 때문에 감염이 되든 말든,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마치 납품을 위해서라면 직원이 죽어나가도 상관없던 평화시장 방직공장이 21세기에 다시 재현되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당시 방직공장의 먼지와 탁한 공기로 폐병을 앓았던 수많은 방직공들이 탁한 공기 속 회사의 미온한 대처로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만 콜센터와 겹쳐보인다면 비약인 것일까.

 

노동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건강을 해쳐가면서까지 사측의 이익에 희생당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이익도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훼손하면서까지 추구되지는 않아야 한다. 이 단순한 규칙이 지켜지는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하루빨리 코로나19 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들기를 바라며, 어떤 감염병이 오더라도 그 어떠한 직종도 두려울 필요가 없는 세상 역시 같이 오기를 바란다.

 

Written by 흥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