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서의 도약 TDoR MARCH – “그만 죽여라! 우리도 살고싶다!” 참여기

지난 11월 17일, 낮 4시 30분경부터 이태원에서 트랜스해방전선 주최로 TDoR MARCH – “그만 죽여라! 우리도 살고싶다!”라는 집회가 열렸다. 11월 20일 TDoR(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TDoR은 1998년 트랜스젠더 혐오범죄로 희생당한 ‘리타 헤스터’라는 트랜스젠더 활동가를 기리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국내에서는 조각보, 여행자 등의 단체가 목숨을 잃은 트랜스젠더들을 기리는 추모식을 진행하는 형태로 행사를 이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집회, 행진의 형식으로 트랜스젠더를 추모하는 행사는 처음이다. 이는 그간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에서만 기려지던 트랜스젠더의 죽음과,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트랜스혐오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대외적 일갈을 했다는 점에서 뜻 깊은 행사였다.

 

행사는 참가자들의 사전 자유발언과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신지예, 섬돌향린교회 임보라목사,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소장,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가 라라로 이루어진 연대인들의 연대사, 도댕, 소주, 비텔의 추모공연으로 이루어졌다. 집회가 끝난 뒤 행진은 이태원의 트랜스바 골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태원에서 가장 오래 운영 중인 트랜스젠더 바 앞에 멈추어서 신우리 부대표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태원 트랜스바 골목을 누비며 “해방 없이 생존 없다! 우리도 살고 싶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우리도 살고 싶다!”, “그만좀 죽여라! 우리도 살고싶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동안, 바에서 근무하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거리에 나와 지켜보는 것으로 연대, 참여하는 광경은 벅찬 순간 중 하나였다.

 

이 행사를 개최하게 된 원인은 멀리 있지 않다. 일상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성차별과 그 일환으로 행해지는 트랜스젠더 혐오가 당사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때문에 축제 전에 미리 배포한 카드뉴스 등에는 트랜스젠더가 당사자로서 사회로부터 거부당하는 이야기를 담기도 했다. 카드뉴스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음악학원 강사로 일하던 여성이 하루아침에 짤리고 다닐 직장이 없어 결국 성매매를 하게 되는데, 손님이 화대를 주지 않자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언쟁을 하게 되었고, 결국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을 다루었다. 이는 2014년 8월 18일에 기사화 된 바 있다. 이미 2014년에 끝난 사건을 가지고 집회를 한다? 의아하실 수 있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트랜스젠더’라는 존재 자체가 사회로부터 이질적인 존재인 만큼, 이들의 이야기를 언론은 좀처럼 다루지 않는다. 이 사건은 우연히 눈에 띄어 기사화가 된 것일 뿐이다.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직장을 구할 수 없고, 생계 문제에 직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현재 상황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기사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즈음 되어서야 잠깐 진보언론에 노출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트랜스젠더의 존재와 인권문제에 대한 가시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집회는 트랜스젠더의 생존권과 직업 가질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행진이었지만 동시에 희생자들의 죽음에 마냥 가슴아파하기보다는 살아남은 자들이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위한 도약의 자리였다.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제도적으로 한 존재를 밀어내는 차별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 트랜스젠더들이 수술 후에도 편안하게 직업을 가질 수 있기를, 호적정정을 위해 반드시 수술이 전제되지 않기를,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으로 논바이너리(non-binary, 성별이분법에 기초하지 않는 성별정체성)들이 고통받지 않기를, 제도가 트랜스젠더를 밀어내어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이 점점 사라져가기를 바라본다. TDOR MARCH – “그만좀 죽여라! 우리도 살고싶다!”는 당사자들이 이런 메시지를 세상에 던진 첫 발걸음이었다. 이 도약을 발판삼아 매년 트랜스젠더의 인권이 가시화 될 수 있길 기대한다.

 

Written by 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