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 『식스펜스 하우스』

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도 좋아할까? 그냥 책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다 좋아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책에 집착하는 이들은 아름다운 도서관의 사진을 보며 황홀해한다. 실용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한 책 수납 가구들을 보면 넋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책을 사놓고 안 읽는 행위를 가리키는 ‘츤도쿠積ん読’란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면 즐거워하며 주변의 책 집착자에게, 혹은 아닌 이에게도 공유한다.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한다. 나 역시 똑같다. 최근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라는 웹툰을 가장 재밌게 봤다. 최근 눈독을 들인 가구는 콜렉토그라프의 세 칸 책꽂이와 책 수납함이며, 최근 구입한 책은 유유출판사의 『책 정리하는 법』이다. 내년에는 새해 다이어리를 사는 대신, 집에 있는 노트로 나만의 독서록을 만들 생각이다. 물론 완벽한 독서를 위한 플래그와 클립, 마스킹테이프까지 모두 준비해두었다. 그리고 책을 좋아해서 출판계에 들어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나는 폴 콜린스의 『식스펜스 하우스』를 홀린 듯이 읽어치운 것이다. 미국 맨해튼에 살던 폴은 아내 제니퍼와 아들 모건을 데리고 영국 웨일스에 있는 ‘헤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주한다. 이 ‘헤이’라는 마을은 아주 특이하다. 영국에서 가장 서점이 많은 동네이며,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 전역의 헌책들이 이 마을로 모여든다. 이 책 속에서 등장하는 ‘헤이’ 마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책을 한 권씩 썼다. 헌책방 주인도, 법무사도. 폴 콜린스는 물론이고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서광들이 꿈꾸는 유토피아 같은 곳인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집을 구하고 헌책방에서 일하면서 이곳에 숨겨진 책의 이력들을 읽는 재미에 빠져들게 되고, 우리 또한 그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를 즐겁게 읽은 이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폴 콜린스의 ‘헤이’ 마을 이주기를 탐독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아직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를 보지 않았다면, 당장 구입하시길. 그리고 이 멋지고 재밌는 책을 꼭 읽어보시길.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독서 중독자임을 인증하거나, 혹은 주변의 독서 중독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둘 중 하나다.

 

무엇보다 이 책은 너무나 훌륭한 ‘책 영업서’이다. 아니,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저자 해리엇 비처 스토가 직접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 해설』 이라니! 그거 대체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건데! 에밀리 디킨슨의 친구 헬렌 헌트 잭슨이 당시 무명이었던 에밀리 디킨슨을 모델로 쓴 『머시 필브릭의 선택』이라는 책 또한 어떻게 읽어볼 수 있는 건데! 책을 읽는 내내 영어를 할 수 있고 실제로 그 책들을 만져볼 수 있는 작가 폴 콜린스가 부러워서 몸부림쳤다(이 두 권의 책은 한국에 정발되어 있지 않다……).

 

『식스펜스 하우스』의 가장 큰 특징은 폴 콜린스 특유의 서술법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모호하게 소설적 서술로 풀어가는데, 이것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은근슬쩍 끼워넣는다. 이 내공이 보통이 아닌지라 독자는 그의 말을 눈으로 쫓는 것뿐인데도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몰라 숨이 막힌다. 그의 서술은 역사와 문학 사이에서 균형 잡힌 줄타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폴 콜린스의 독특함은 그의 저서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부상했지만 추락하여 잊힌 13명의 이야기 『밴버드의 어리석음』과, 자폐증에 걸린 아들 모건에서 시작하여 역사에서 존재했던 자폐인들의 자취를 찾아가는 『네모난 못(현재는 절판)』, 1897년 미국에서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고 불렸던 토막살인을 추적한 『타블로이드 전쟁』, 민주주의의 사상적 아버지라 불리는 토머스 페인의 유골 분실 사건을 따라가며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룬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등. 책소개 글을 읽기만 해도 대체 어떻게 이 이야기를 다룰 것인지 군침이 도는 소재만이 무궁무진하다.

 

어쩌다 보니 『식스펜스 하우스』 영업기가 되어버렸지만 상관없다. 이 책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영업서니까. 이 리뷰가 책의 본질을 흐린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월간 땅콩문고>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폴 콜린스라는 이 멋진 작가를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이 보물 같은 작가를, 그리고 이 보물 같은 책을 내 품에 안겨준 것만으로도 <월간 땅콩문고>는 내게 큰 의미를 남겼다. 이 원고를 마감하는 11월 30일, 오늘은 파주의 동네서점 땅콩문고의 마지막 영업일이다. 땅콩문고와 땅사장님의 앞날에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빈다.

 

*이 연재물은 파주의 동네서점 땅콩문고와 함께 만들어가는 콘텐츠입니다. 땅콩문고에서 운영하는 책 정기구독 프로그램 <월간 땅콩문고>로 받은 책을 읽고 리뷰를 씁니다. 땅콩문고는 11월 말을 끝으로 2년 반 동안의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습니다. 이 리뷰를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파주에 땅콩문고라는 동네서점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Written by 박복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