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존』, 어떤 것이 사라진 후에 남는 것

모든 유기체들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다. 그건 당연한 세상의 순리다. 유기체는 한자로 有機體, 즉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갖고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지만 有期體, 즉 기간이 한정되어 있는 개체라는 뜻도 갖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무기체들도 죽음을 맞는다.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무기체들도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고 파괴되고 수명을 다하여 사라진다. 모든 것이 그렇다. 심지어 가게들도 그렇다.

 

이 연재글을 시작하게 해준 땅콩문고가 2년 반 운영 끝에 문을 닫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2년 반. 내가 살아온 시간의 1/10 정도에 해당하는 기간이지만, 이상하게 그보다 훨씬 더 오래 땅콩문고와 함께했었던 것 같다. 파주시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세어 보면 땅콩문고가 있었던 기간은 아주 찰나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가게에 마음을 남겼고, 추억을 남겼기에 그 기간은 영원히 기억에 새겨질 것이다. 『위대한 생존』 속 나무들이 사진으로 남아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역사에 영원히 새겨지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우리는 주변에 있는 무언가가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나는 그렇게 많은 단골가게들을 보냈다. 너무 친하다 못해 주인 아저씨를 ‘아빠’라고 불렀던 만화방, 합정역에 가면 당연히 가는 줄로만 알았던 카페 몽소, 처음으로 마카롱을 내게 맛보여줬던 카페 달고나, 맥주를 살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로 유리잔들을 끼워주셨던 맥주슈퍼, 그리고 땅콩문고까지. 『위대한 생존』 에도 그런 순간들이 나온다.

 

상원의원 나무는 늘 거기 서 있을 것만 같았다. 3,500년을 살았는데 3,505년이라고 살지 못할 게 무언가? 하지만 상원의원 나무는 3,505년을 살지 못했다.

굉장히 긴 수명을 가진 생물들은 우리가 영원이라는 거짓 감각을 믿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변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장기적인 생각 없이 현실의 일상에 쉽게 파묻혀버린다. 하지만 오래 살았다고 해서 불멸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회가 있다 해도 그 기회가 마냥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접근하기 쉬워 보이고 긴급해보이지 않았기에 상원의원 나무를 재방문하는 것은 내 우선 순위에서 계속 뒤로 밀리고 있었다.1)

 

상원의원 나무에 땅콩문고, 아니면 살면서 잃어버린 어떤 것들을 대입해도 말이 된다. 우리는 어쩌면 매 순간마다 무언가를 상실하면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 나는 책 『위대한 생존』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데. 사실 나는 사진으로 보는 오래된 나무들에게 관심이 없다. 물론 직접 보게 되면 다를 것이다. 압도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나는 내 곁에 있었지만 사라졌던, 사라지는, 곧 사라질 가게들에게 더 관심이 있다. 정해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땅콩문고 생각뿐이다.

 

이것이 내 원고가 늦어진 이유다. 오래 살아남는 것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기리고 그들의 가치를 주장하는 글이 써지고 책이 나온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어쨌거나 우리는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찰나의 생명이다. 그래서 더 덧없고 더 애틋하고 더 좋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으로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본 건담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OO(더블오)>에서 내가 좋아하는 주인공 이름은 세츠나 F. 세이에이다. 刹那 FROM 聖永. 찰나 프롬 성영. 영원보다 긴 시간에서 비롯된 찰나라는 뜻이다. 영원이 존재하기에 찰나는 더욱 그 가치를 발한다. 레이첼 서스만은 이렇게 말한다.

 

고령 생물들은 우리를 심원한 시간에 연결시켜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찰나적인 감각, 생각, 감정에 묶여 있고 그것들로 구성돼 있다.2)

 

우연찮게도 이번에 읽어야 하는 『위대한 생존』과 상황이 맞물려서 더욱 힘들었지만 이제는 이별을 받아들이려 한다.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작은 가게인데 이렇게까지 힘들어할 일이냐고.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찰나적인 존재이지만 어쨌거나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해서 영원을 체감할 것이고,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 2년 반 동안의 땅콩문고가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남아 있을 텐데 당연히 힘들 거라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이제는 그만 힘들어하고, 어떻게 하면 웃는 얼굴로 이별할 수 있을지 궁리해서 내 나름대로의 방식을 찾아낼 것이라고.

 

1) 레이첼 서스만 저, 김승진 옮김, 『위대한 생존』, 윌북, 2015, p.94~p.96.

2) 같은 책, p.168.

 

*이 연재물은 파주의 동네서점 땅콩문고와 함께 만들어가는 콘텐츠입니다. 땅콩문고에서 운영하는 책 정기구독 프로그램 <월간 땅콩문고>로 받은 책을 읽고 리뷰를 씁니다. 땅콩문고는 11월 말을 끝으로 2년 반 동안의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습니다. 이 리뷰를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파주에 땅콩문고라는 동네서점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