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하는 작업 모임을 위한 가이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옴니버스 연작 <꿈>(1990)에서 다섯 번째 꿈. 꿈속에서 고흐를 만난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가 평생에 걸쳐 꾼 실재의 꿈들 여덟 편을 선택해 영화한 것이다.

 

말의 동음이의성으로 일어나는 손쉬운 사례라지만 꿈 작업으로 타인을 만나 대화하다보면 꿈을 두고 하는 대화의 방향에서 내가 내면의 경험으로 치환하여 불러대는 ‘꿈’이라는 말꼴이 (나름 꼼꼼하게 설명했다 생각하는데) 어떤 타인은 그것이 미래의 길에 닿은 의식적 생활의 목적지를 일컫는 장래의 자아 성취로 이해하는 때가 잦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의 빈번함은 말의 체질상 흔한 것이라 할 수 있기에 언뜻 사소하지만 꿈 작업의 맥락에서 일어나는 꿈에 대한 이중시선이 이제는 나에게 종종 말의 사소함보다 더한 징후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지경이다. 그것을 더 다루고 싶은 마음을 여기서는 잠가두고.

여기서의 꿈은 잠결에 어울려 일어나는 감각적인 경험을 일컫는 그 꿈임을 밝힌다. 꿈이라는 말보다 꿈결이라는 말의 현상학적 존재가 더 그것답고 꿈에 대한 이중시선을 상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꿈결’이라는 말을 매만질 때마다 김사인의 시 한편이 기억나는 것이다.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김사인, ‘풍경의 깊이’ 부분

 

이 가이드의 맥락에서 김사인의 저 시는 문득, ‘꿈결’에 따른 연상과 인용만을 위한 사소한 떠올림이었지만, 내면을 다루는 이 작업의 많은 면을 적절히 담아내는 것 같다는 인상을 갖게 돼 글의 진행에 앞서 몇 번을 더 훑고 훑는다. 심층적이고 감각적인 내면의 경험인 꿈이 처한 위치가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와 거기 실려온 ‘낯익은 냄새’와 참으로 닮아있고, 시인이 적절한 언어의 형상으로 내가 경험상 체득한 꿈의 존재를 다듬어내고 있는 것만 같기에.

                                                                                                                                                                                                                                                                                                                                                  

 

꿈은 환자의 상황을, 건강을 촉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명하는 것이다. 꿈은 추억, 통찰, 체험 등을 가져다주며, 잠자는 사람의 인격을 일깨우고 대인 관계에서 무의식적 요소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자기의 꿈을 사명감에 찬 보살핌으로 오랜 기간 소화하기를 꺼리지 않은 사람치고 시야의 확대와 풍성함을 얻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다.

 -C.G.융, ‘꿈의 특성에 관하여'(<정신요법의 기본문제-융 기본 저작집 1>,솔)

 

꿈에 대한 이론이나 연구, 문학적 전거, 해몽적 통념 등이 많다. 내가 앞서 꿈의 존재론을 미미하고 푸대접 받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꿈은 지금도 다양한 경로로 다뤄지고 있는 유용한 것이다. 그것과 이것의 변별점이라면 두 가지 정도가 있을텐데. 하나는 꿈 자체에 집중하기이며, 다른 하나는 ‘꿈을 통한 이해의 방향을 (철저히) 자기 내면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가이드가 놀리는 꿈 작업의 핵심은 거기에 다 있다. 이야기의 장치나 인용구, 수면에 대한 연구는 여기서 별무상관이다.

 

하나의 꿈이 대화의 원탁 위에 올라왔다면 일정한 시간 동안 그 꿈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 기본적으로 2~30분에서 길게는 1~2시간도 가능하다.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꿈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상징들을 연상의 통로 위에 올리고 돌리다보면 추억과 기억, 기대, 감정, 지식 등이 나오고 그것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을 가리키고 있는가?’ 그러다보면 기본적으로는 꿈의 소유주가 타인의 말을 듣고, 자기 연상과 해석적 가정을 하면서 울컥하는 것, 깨달음, ‘아하!’, 전율 등을 크고 작게 느낀다. 그런 자각의 지점이 모임 안에서 모두 공유될 필요는 없다. 이런 흐름. 그것으로 이뤄지는 것이 꿈 작업의 기본 틀이다.

 

이 꿈 작업 모임의 이론적인 줄기는 C.G.융 이지만, 무엇이 됐든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을 어느정도 습득한 상태에서 해야하는 작업은 아니다. 이론과 지식은 2차 문헌 정도다. 진행자가 있으면 좋을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신약성서>의 한 구절인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되는’ 것이 꿈 작업에서는 수시로 일어난다. 꿈의 텃밭인 무의식을 일러 나는 ‘내가 망각했지만 내게 존재하는 앎’이라고 하는데, 꿈을 두고 말하는 과정에서 그 앎의 차원으로의 왕래가 일어나며 지금까지 조용하게 있거나 오늘 처음 참석한 사람의 작은 말 한 마디가 깊고 긴 무늬를 남기기도 한다.

 

이게 내 꿈이라면

내가 기억하는 꿈의 길이가 스냅 사진이든 서사시이든 꿈이 하고자 하는 말(message)은 결국에 한 마디로 정리가 된다. 그것이 해석의 일단(一端)이다. 그 말만 떼어놓고 본다면 보편적인 격언, 속담, 교훈 정도일텐데 그것이 꿈 꾼 이에게 호소력을 갖게 되는 것은 꿈을 경유하면서 메시지에 꿈의 성격이 묻어나기 때문인 것 같다. 독창적인 것은 해석적 결론이 아니라 꿈이고, 꿈을 통해 메시지는 독창성을 갖는다. 꿈이 나눠지고 해석적 과정에 들어간 뒤에는 누구나 해석적 가정을 할 수 있다. 이 때 지켜야 할 하나의 약속은 이게 내 꿈이라면이라는 말로 해석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은연중에 드러날 수 있는 권력관계를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내 꿈이라면’이라는 가정은 사실이기도 한데, 꿈이 마련되는 심층적 차원에서 꿈에 대한 소유권은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 또는 ‘객관적 의식’이 이것의 이론적 배경이 된다) ‘우리’라는 (최소한으로) 인간 집단의 소유인 것이다. 그렇게 드러나는 하나의 은유. 꿈은 선물이다. 꿈을 나누는 순간 내 꿈이 타인에게 선물로 전해지는 것이다. 꿈은 공유재가 된다.

 

정기적으로 모여 꿈을 나누고 그 의미를 같이 탐색하다 보면 서로 친밀해지고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투사를 하고 어떻게 자신을 기만하며 살고 있는지도 꿈을 통해 쉽게 알게 된다. 이런 투사와 자기기만은 사실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솔직하고 친밀하게 관계를 맺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이다. -제레미 테일러, <사람이 날아다니고 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동연)

 

작업의 과정에서 해석적 가정은 이전에 했던 나의 가정을 반박하기도 할 것이다.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중층과 반박의 놀이. 그럴 때마다 ‘이게 내 꿈이라면’이라는 말로 나의 해석적 입장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약속이다.

 

일반적인 작업 순서

꿈 작업의 순서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마음 나누기-모임의 문 열기(명상)-꿈을 간략하게 나누기(제목과 함께)-작업할 꿈 순서 정하기-정해진 꿈들을 하나씩 집중해서 작업하기-모임의 문 닫기(명상)

1) 마음 나누기

개인당 2~3분 정도 마음을 나눈다. 표면적인 일, 사건, 고민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감정을 중심에 두고 말할 수 있는 틀이 있다면 좋다. 꿈이 다루는 이슈는 감정적 문제인 경우가 많다. 감정의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까지. 말로만 감정을 가늠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것은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감정카드를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감정카드를 바닥에 깔아놓고 요즘의 내 감정을 대변하는 카드 두 세 장을 골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임의 중심으로 시선을 집중하도록 한다. 감정 카드는 시중에서 구하기 쉬운데, 개인적으로는 한국비폭력대화센터에서 번역한 그로그(GROK) 카드에 있는 감정카드를 사용한다. 어린이나 중등학생 대상의 꿈 모임에서는 얼굴 표정이 그려진 감정카드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2) 모임의 문 열기

내면을 다루는 일들에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 중 하나는 내면과 외면을 드나드는 우리 존재의 양면성을 존중하는 의미로 그 사이의 문을 드나드는 상징적 수준의 의식(儀式,ritual)이다. 꿈 작업도 마찬가지인 바, 이완을 돕는 명상으로 모임의 앞과 뒤를 여민다.

 

3) 간략하게 꿈을 나누기(제목과 함께)

모임의 인원이 세 명만 되도 세 사람의 꿈을 넉넉하게 다루기에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보통 하나의 꿈으로 해석을 시도할 때 유의미한 ‘아하’가 일어나는 데는 통상 30분 이상이 소요되는 것 같고 ‘아하’를 넘어선 경탄이 일어나는 것을 가정한다면 5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내 경험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모임의 전체 시간을 3시간으로 잡아도 3개 정도의 꿈만 깊이 다룰 수 있다. 내 꿈이 ‘오늘 이 자리’에서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고 해도 타인의 꿈에 개입하면서 자기의 투사(projection)를 의식하고 내 무의식의 근저를 거닐기 때문에(내면의 공유 경제같은) ‘얼마나 많은 꿈을’이 아니고 ‘꿈으로 작업한다는 자체’의 중심성은 작업한 꿈의 개수에 손상되지 않지만 꿈을 하나에서 두 개씩 나누는 것은 지켜야 할 약속이다. 때로 기억나는 하나도 없어서 못 나누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꿈을 나누는 걸 듣는 시간이나 본격적인 작업 가운데서 잊었던 꿈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꿈을 기억하는 능력이 살아나고 꿈을 기억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은 나의 의식적 수준의 삶이 무의식적 수준의 언어를 귀담아 듣고 정밀하게 다룰 준비가 됐다는 신호이기도 한데, 꿈만을 규칙적으로 나누는 것만으로도 꿈 기억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꿈은 (기억이 나는 게 있다면) 꼭 나눈다.

 

4) 꿈 작업 순서 정하기 / 실제로 작업하기

꿈을 공유하다보면 참여자들의 마음이 쏠리는 꿈이 있다. 그런 꿈을 투표로 해서 우선적으로 작업을 할 수도 있고, 제비뽑기나 자원하는 사람이 의사 표시하기 등으로 작업 순서를 정할 수 있다. 일회성의 모임이 아니라면 약속한 회기 안에 참여자들의 꿈이 모두 한 번 이상은 집중적으로 다뤄질 수 있도록 한다. 해석을 할 때는 시간을 정한다. 타이머로 알람 설정을 하는 것을 권한다. 약속한 시간 안에서만 한 꿈에 집중하는 결을 들이는 것은 꿈 자체에 집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 가이드의 앞부분에서 해석의 ‘일단’을 말한 것을 되새기고 싶다. 꿈 작업에서 해석은 일단 완결이 될 수는 있어도 다른 시간, 장소, 경험과 문제의 틀 안에서 새로 해석될 여지를 늘 가지고 있다. 꿈 해석의 다면성은 꿈을 그룹으로 작업하는 것의 근거가 되며 동시에 꿈 자체의 존재론적 풍성함을 특징짓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적인 꿈 작업도 권한다. 그룹에서의 작업은 꿈을 대하는 적극성과 유연함을 감각하는 자리로써 개인적인 꿈 작업의 의지를 세운다.

 

완벽하게 해석한 꿈에서도 어떤 부분은 어둠 속에 남겨두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 부분에서 꿈-사고가 뒤엉키기 시작하면서 도대체 풀리지는 않고 꿈-내용에는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것을 해석 과정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꿈이 미지의 것과 연결되는 곳, 꿈의 탯줄과 같은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열린책들)

 

5) 모임의 문 닫기(명상)

문을 여는 것과 동일한 형식이어도 되고 명상 시의 주문사항을 달리해서 모임을 ‘마친다’, ‘쉰다’, ‘흩어진다’, ‘문을 닫는다’는 의미를 증폭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다. 손을 맞잡고 세 번 ‘옴(ॐ)’을 소리 내기도 한다. 이런 의식의 의미는, 개개의 차가 있지만 꿈 작업에서의 여파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에서의 부적응을 경계하며 몸과 마음이 일상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정리하려는 것이다.

 

의례에의 요청

내가 근래의 꿈 작업 자리에서 되새기며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의례(儀禮)’이다. 모임의 단추이자 지퍼인 그것을 개인적 자리에서 일단의 해석된 꿈의 의미에 통하는 상징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융 학파의 로버트 A. 존슨이 꿈 작업의 단계에서 마지막으로 못박아 말한 것인데(물론 그의 독창은 아니다) ‘연상-역학-해석’의 꿈 작업 단계에서 의식(consciousness)-감정-언어로 마감되며 머리와 가슴에 머문 꿈 에너지를 사지로 고루 흘려보내는 꿈 작업의 실질적인 최종이라 할 수 있다.

 

융은 인간이 의식에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정신적 상황을 표현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하나의 정신적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의 변이가 시행되었을 때, 만일 적합한 의식들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안정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간은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의식(儀式)을 고안한다고 믿었다. -앤드류 새뮤얼 외, <융분석비평사전>(동문선)

이왕 꿈을 매개로 무의식에 빛을 비추기로 한 이상 의식적으로 의식(ritual)에 마저 집중하여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은 이 작업을 그것대로의 완전함의 기준에서 강조되다못해 강요될 여지도 있는 것이다. 이 마무리를 통해 우리는 은연중에 무의식과의 연계성을 튼튼히 하고 안정화하는 것일 수 있다. 비유하자면 의식은 건축물에 문을 다는 것이다. 내가 드나들 수 있는 길을 낸다. 의식을 할 때는 개인적으로 해야하며 무리하지 않고 하는 것이어야 한다. 꿈 의식의 체험이 쌓이다보면 창의성이 불일듯 일어나 예술적이라 할만한 어떤 결과물을 마주할 수도 있겠지만, 이 단계의 본령이라면 일상을 예술화하는 수준의 상징적 행위로 내 삶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꿈 노트를 준비하세요

꿈 작업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꿈을 기억나는만큼 다 기록해두는 것이다. 기록해두지 않아도 기억에 남아있는 강렬한 꿈들이야 있겠지만 꾸준한 꿈작업을 위해서는 기록이 필수다. 핸드폰이나 컴퓨터의 메모장, 블로그 등에 기록을 쌓아둘수도 있지만 공책을 준비해서 거기에 기록하는 것을 추천한다. 공책을 꾸미기도 하고, 색채 도구를 활용하거나 간단한 그림을 그리는 등의 감각적 활동을 하기도 할텐데 거기에는 아무래도 종이가 더 적합할 것이다. 꿈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꿈은 나에게 더 자주 응대할 것이다. 우리가 꿈에 응대했으니까.

 

Written by 김지욱

 

<참고 도서>

  1. 사람이 날아다니고 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제레미 테일러, 동연)

집단 꿈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죽을 때까지 다양한 관계와 자리에서 시도한 제레미 테일러가 꿈 작업의 실제에 대해 정리한 책이다.

 

  1. 내면 작업(로버트 A.존슨, 동연)

융 학파의 로버트 A.존슨이 융 심리학에 기초한 꿈 해석과 ‘적극적인 명상’의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하는 꿈 작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꿈 의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 꿈에게 길을 묻다(고혜경, 나무연필)

제레미 테일러에게 배운 고혜경 씨가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6회에 걸쳐 진행한 꿈 모임의 녹취록이다. 제레미 테일러와 로버트 존슨의 책에 모두 사례가 튼실하지만 이 책은 사례 자체로 이뤄진 것이며, 한국 현대사의 그늘과 연결해 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데서도 돌올하다.

 

꿈 이미지가 주빈이라, 지금껏 되풀이해서 매달려온 5월 이야기는 등장할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 표면 이야기가 아니라 내면 이야기로의 전환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진솔한 내면 풍경이 펼쳐졌다. 고착된 에너지, 흘리지 못한 눈물, 다루지 못한 공포와 수치심, 압도하는 무능감, 살아남은 자의 도덕적 상처, 끝없는 자기비난, 모순으로 인한 몸부림……. 이 거대하고 막연한 고통들을 꿈은 선명한 이미지로 전환해주었다. (…) 우리가 시도한 꿈의 대화는 해석이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머리를 활발히 움직여 답을 찾아내거나 메시지를 파악하는 사유 방식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꿈은 머리가 하는 환원적인 방식을 지양한다. 오히려 적극적인 수동을 필요로 한다. 이미지가 하는 말을 경청하고 이미지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따를 뿐이다. – 고혜경 <꿈에게 길을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