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없는 3월

3월 10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앞에서 박근혜씨의 탄핵 결정을 기다리던 세월호 유족들이 들고 있던 피켓의 문구이다. 여전히 춥고 꽃도 피지 않았지만 박근혜씨의 탄핵을 위해 겨우내 거리로 나선 많은 이들의 가슴엔 이미 봄이 성큼 다가온 듯도 하다.

탄핵을 생중계하던 많은 방송사들은 탄핵선고 이전부터 선고문을 발표하는 과정을 예측하며 탄핵이 인용될 경우 탄핵사유 중 해당되지 않는 것부터 거론할 것이라 했지만, 막상 선고문을 직접 듣고 있던 그 순간은 그런 것을 따질 겨를도 없이 절망감과 좌절을 느끼고, 생업을 접고 거리로 나서고자 했던 분들이 제법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 점에서 헌재의 판결이 보여준 기승전결은 엄청났다고 생각한다.이 날은 아마도 이 땅을 사는 모두가 마음 조린 날이 아닐까 싶다. 헌재의 선고문은 3번의 ‘그러나’로 수많은 이들을 불안감에 떨게 했고, 마지막 한번의 ‘그러나’로 엄청난 대반전의 서사를 보여주었고, 마지막으로 이정미 판사의 입에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말이 떨어지자 탄핵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기쁨의 함성을, 탄핵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분노의 함성을 지르게 했다.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아직 박근혜씨(65, 무직)는 청와대를 비우지 않았고 부녀가 둘 다 대통령이 되었으며, 취임식은 했으나 퇴임식을 하지 못한 대통령으로 나란히 기록되게 되었다. ‘탄핵행동’은 퇴진투쟁 종료를 선포하고 광화문광장에서 축포를 터뜨렸고 , 만화가 주호민은 파괴왕(?!!!)으로 그 명성을 이어나갔다.

필자는 누군가에겐 기쁨이고, 누군가에겐 분노의 장이된 박근혜 탄핵 이후의 단상들을 보며 느끼는 몇 가지 안타까움을 본 졸고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법적 심판이나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자면서도 긍정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많은 사람들과 다르게 일부 SNS 명사들은―지면을 통해 좀 더 주관적으로 표현해 보라 한다면 감히 맹동좌경소아주의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세월호에 대한 대통령의 생명보호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헌재의 결정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함을 넘어, 오히려 슬픔과 분노를 나타내야 할 시점에 기뻐하는 사람들은 결국 문재인씨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 이도 더러 있었다. 당연히 몇몇의 의견을 일반화할 수 없으며, 특히나 개인의 공간인 SNS에 어떤 정치적 의견을 내던 그거야 개인의 자유일테고―물론 개인의 자유이기에 어떤 것이든 정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특정 대선 후보에 대해서도 어떤 의견을 피력하던 그것 또한 개인의 자유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많은 추종자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런 몇몇 SNS 명사들에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또한 지면을 통해 미리 밝히지만 필자는 차별금지법을 지지하지 않는 후보를 결단코 지지할 일이 없기에 유력한 후보를 공격하였다는 이유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천명하고자 한다. 본인들이 이 엄중한 사안에 분노하고자 함은 해당 글월을 통해 잘 느껴지지만 이를 비단 자신들을 선각자의 포지션에 두고자 함이라고 느낀다면 너무 과한 생각일까? 개인적으로 이번 일을 그저 국민의 승리라고만 생각하지 않으며, 박근혜 퇴진 투쟁 또한 보수성에 더 많이 기인한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1600만이 넘는 사람들이 133일간 추위에 떨며 외친 싸움을 그런 알량한 몇 마디의 선언으로 전유하고자 함은 무슨 어마어마한 자신감인지 되묻고 싶다. 흡사 조선반도에서 자신들만이 진정한 투사이며, 이 싸움의 본질을 목도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양의 글을 함부로 쓰기 전에, 댁들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리 내여 환호하고 가슴으로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이다.헌재의 박근혜 탄핵선고 이후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마이크를 잡고 “왜 세월호만 안됩니까. 왜 우리 애들만 안됩니까. 제발 알려주세요. 왜 죽었는지. 그거 하나만 알면 되는데요. 제발, 나 죽기 전에 그거 하나만 알고 죽자고요. 제발 알려주세요.”라며 오열했다. 아직도 인양조차 되지 않은 세월호에는 여전히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있다. 헌재는 박근혜씨의 탄핵사유 중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했고 이 말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을 가슴에 품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들었다. 박근혜의 탄핵 자체를 기뻐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왜 세월호만 안되냐며 오열하는 유족들을 보며 많은 이들은 비통함을 느꼈고, 이에 SNS상에는 많은 이들이 탄핵에 환호하면서도 세월호에 대한 헌재의 결정에 대해 수많은 아쉬움과 유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중에는 이제부터 박근혜씨를 구속하고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자는 이들도 적지 않았으며, 오늘 하루만 기뻐하고 또 싸움을 시작하자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제 4월이 옛날의 4월이 아니게 된 많은 이들에게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다른 형태로 아쉬움과 유감을 표하는 이들은 필자의 눈을 찌푸리게 했다.

그저 기쁨을 토로할 수 없을 만큼의 참담함을 글로 표현하다 보니 투박하고 분노로 가득 찬 언사였다고는 생각하지만 그저 나처럼 슬퍼하지 않는 자들은 다 ‘문재인 부역자’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은 그날의 판결문에 아쉬움을 나타낸 많은 이들을 무시하는 처사 이상도 이하임이 아닐 것이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기쁜 소식 속에서도 이와 뜻을 달리하던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이하 탄기국)의 직접행동은 꽤나 거세게 일어났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경찰 기물과 의경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경찰버스를 빼앗아 차벽을 밀어붙이기 시작했으며, 이 와중에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날 다수의 사상자와 3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탄기국의 시위는 더욱 과열되고 과격해져 길에서 세월호 리본이나 뱃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과 카메라를 들거나 기자로 추정되는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탄핵에 앞선 3월 1일 그들은 서울 종로 도처에 스크린을 걸어두고 이를 통해 그들이 ‘빨갱이’로 지칭하는 자들이 경찰차를 부수고 ‘과격’하게 싸우는 장면들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하느님과 반신으로 추앙 중인 박정희의 사진, 그리고 태극기를 내세우며 구국의 결단을 위해 애국의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그러나 정작 탄핵선언 당일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밧줄까지 동원하여 정확히 ‘빨갱이’들의 행동을 그대로 실천한 탄기국 시위 참여자들의 모습은 엄청난 블랙코메디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촛불의 그 많은 이들이 돈을 받고 나오지 않았듯이 탄기국의 그 많은 이들 또한 모조리 돈을 받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물론 개중에는 통상의 관제데모처럼 돈 받고 나온 분들도 있겠지만―이라 생각한다. 투쟁현장에서 경찰방패를 잡아당기고, 버스에 밧줄을 걸어 당기고, 차벽을 넘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 결심과 분노를 필요로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용돈벌이 하러왔다가 슬픔과 분노를 넘어 각성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그들의 인정투쟁(?)을 모욕(?!)하는 언사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의 행각을 보면 그야말로 안타깝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박근혜 퇴진을 호명하던 측들이 ‘민중가요’로 불리는 일군의 노래들을 사용했다면, 탄기국으로 통칭되는 박근혜 탄핵반대를 호명하던 이들은 ‘군가’를 틀며 대항했다. 2017년 현재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탄핵된 첫 대통령을 목도함과 동시에 여전히 진행 중인 냉전의 잔재를 함께 경험하고 있다. 아울러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탄기국 측의 친박 집회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며 만세를 부르고 박수로 환호하며 ‘다 죽어라’를 연호하는 몇몇을 보자면, 빨갱이는 다 죽여도 된다는 어떤 승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탄핵반대 시위 참여자 개개인이 분노의 대상으로 맞춰지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 말종이란 단어 이상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을까?

 

국민, 시민, 민중, 인민, 대중. 이 싸움에 참여한 상반되는 진영의 참여자들을 뭐라 부르든 간에, 그리고 이 싸움을 통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얻고자 했던 간에 이 싸움의 핵심인 박근혜씨가 파면되며 일단락되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무엇보다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가 있다. 필자는 그다지 공신력과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이니 익히 아는 어떤 먼저 간 사람의 말을 차용하여 말하고자 한다. 혹자는 자신이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 탄기국이 하는 것처럼 그들을 보수반동이라 낙인찍고 린치하고 싶은가? 서로에게 등잔불을 비추며 너는 헌재의 이 결정에 진정 기뻐하냐? 슬퍼하냐고 말하고 싶은가? 적어도 세월호에 슬퍼한다면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 의무는 위반사유가 아니라고 말한 헌재에 유감을, 박근혜씨의 전횡에 치를 떨었다면 이 하나의 승리에 기쁨을 표하며 다음 싸움을 준비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 순간 목이 쉬어라 환호했던 것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갈 듯하다. 박근혜씨의 퇴진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닌 시작일 것이다. 앞으로 봄을 봄이라 부르기 위해 많은 난관들이 남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해보고자 한다.

 

 

Written by 박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