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외치다! 다 같이! – 세계여성공동행진_서울(WOMEN’S MARCH ON SEOUL) 후기

전 세계적인 여성 인권 행사로 ‘세계여성공동행진’이 서울에서도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을 지인에게 전해 들었을 때 가슴이 설렜다. 처음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2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인 2017년 1월 21일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기 위한 ‘워싱턴여성행진’을 기획하였다고 한다. 행진 취지에 찬동하는 전 세계 40여개 국가와 80여개 도시가 동시다발적인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세계여성공동행진’으로 발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이라는 단체가 연대의사를 밝혀 서울에서 공동행진을 진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DSO 측은 단체 위주가 아니라 개인과 단체가 동등한 위치에서 발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방침 하에 ‘서울여성행동 기획단’을 모집했고, 그렇게 모인 기획단이 ‘세계여성공동행진_서울’을 주관한다고 했다. 나는 기획단에는 참여하지 못 했지만 소식을 들은 날부터 이 공동행진을 손꼽아 기다렸다.

 

공동행진 당일 오후 두 시, 강남역 10번 출구 옆에 수많은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기획단에게서 호랑이 핫팩과 물, 풍선, 각종 스티커,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라는 피켓 등을 받고, 행인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엘리베이터 근처 넓은 공간으로 이동하여 다섯 명씩 대열을 맞추었다. 참여자 중에는 외국인도 많아서 기획단은 ‘길 막지 않게 엘리베이터 옆으로 이동해주세요’와 ‘플리즈 무브 어라운드 엘리베이터(?)’를 번갈아 외치곤 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옆에는 기획단이 마련해놓은 포스트잇에 응원 메시지를 적어서 붙일 수 있게끔 준비된 공간이 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낙태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의 깃발을 든 분이 서있었고 ‘낙태’에 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전시물이 게시되어 있었다.

강남역 10번 출구와 예의 엘리베이터 사이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가 영업 중이었고 반대편에도 토스트 등을 파는 푸드트럭 세 대가 운영되고 있었으므로, 일찍 도착한 참가자들은 따뜻한 음료를 마시거나 간식을 사먹으면서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런데 공동행진이 시작되자 일부 참가자들이 빈 종이컵 또는 마시다 만 음료가 담긴 종이컵을 주변에 그냥 내려놓고 가버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버려진 종이컵들이 역 주변 한구석에 모여 있는 것을 본 어느 외국인 여성이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컵도 슬쩍 두고 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약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기획단이 대형 쓰레기봉투를 여럿 준비해 와서, 쓰레기를 길가에 그대로 방치해두지 않고 얼른 치울 수 있었다. 기획단이 대형 쓰레기봉투를 수레에 매달아서 끌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개인적으로 무척 보기 좋았다.

내가 일행을 기다리는 사이에 선두는 먼저 출발했고, 나와 일행은 대열 중후반부 쯤에 합류했다. ‘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의 깃발이 조금 더 앞줄 어딘가에서 펄럭이던 걸 본 기억이 난다. 그 외에도 ‘가부장제에 반대한다’, ‘여성을 성적대상화하지 말라’, ‘낙태죄를 폐지하라’, ‘성폭력피해생존자에 대한 무고의 의심을 거둬라’ 등 여러 가지 이슈를 담은 피켓들이 많아서 행진하는 틈틈이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행사명은 세계여성 공동행진이었지만 참가자는 여성으로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고 젠더와 무관하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공동행진을 하기 위하여 도로 한 차선을 통째로 이용했고, 경찰도 협조적인 편이었다. 사실 나는 앞 사람을 정신없이 따라가기만 했고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돌 예정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 강남역 10번 출구를 시작점으로 그 부근을 십자가형으로 행진하는 루트였다. 그러다 보니 서너 번 정도 길을 건너서 되돌아와야 하는 행진루트가 있었는데, 딱 그 시점이 우리 행진의 실제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이미 건너편 도로로 넘어가서 앞장서고 있는 선두 대열을 보며 사람이 엄청 많다고 놀란 다음, 신호등이 바뀌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서 마구잡이로 달려가다가, 등 뒤로 미처 쫓아오지 못한 후발 대열을 보며 줄이 엄청 길다고 또 한 번 놀랐다. 500명 정도가 사전신청을 했다고 들었는데, 실제 참가자는 2,000여 명이었다고 하니, 일렬로 행진할 때는 앞뒤로 끝이 가늠되지 않을 만도 했다. 행진 중간부터는 하얀 눈송이까지 떨어져 내려서 정말 장관이었다.

대열 중간 중간에서 기획단이 구호 제창을 주도했는데, 처음에는 내가 끼어 있는 위치가 애매해서 앞쪽에서 들려오는 구호를 따라해야 할지 뒤쪽에서 들려오는 구호를 따라해야 할지 헷갈렸다. 게다가 구호가 굉장히 많고 내용도 길어서 한 번에 듣고 따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귀에 들리는 구호를 무작정 따라서 외치다 보니 차츰 반복되는 패턴을 알 수 있었고,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에는 자연스럽게 구호를 따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자유와 평등’, ‘여권이 인권이고 인권이 여권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도 인간이다’부터 시작해서 ‘싸우는 퀴어가 나라를 정의롭게’, ‘싸우는 장애인이 나라를 바꾼다’, ‘노동자에게 평등한 나라를 원한다’ 등에 이르기까지 구호가 정말 다양해서 좋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야! 이건 내 꺼야!’라는 구호는 외칠 때마다 통쾌했다. 구호 제창을 주도하던 분 중에 아주 사근사근한 말씨를 사용하는 분이 있어서 때때로 ‘우리를 무시하기엔 우린 너무 강해요~’, ‘우리 몸은 우리 꺼에요~’라고 응용된 버전의 구호가 들려오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원어민 발음으로 ‘MY BODY MY CHOICE!’, ‘WOMEN’S RIGHTS ARE EQUAL RIGHTS’라는 영어 구호가 들려오기도 했다. 괜히 영어 구호를 따라하려다가 혀가 꼬여서 ‘우먼스 라이츠스 아 이퀄스 라이츠(?)’라고 외친 적이 한 번 있었다.

강남역 10번 출구로 되돌아와 행진이 끝났을 때가 네다섯 시 사이였다. 정확히 시간을 확인해본 것은 아니지만 약 두 시간 삼십 분 정도 행진을 했던 것 같다. 행진은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마무리가 되었다. 선두 대열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의 경우에는 따로 무슨 공지를 해주지 않아서 약간 얼떨떨해 하다가 각자 알아서 해산하는 분위기였다. 여럿이서 온 경우에는 해산하기 전에 서로 인증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각자 준비해온 피켓 문구를 기자나 다른 참가자가 허락 받고 찍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행진이 즐거웠던 만큼 마지막 공동 행동이나 전체 참가자의 구호 동시 제창 없이 흐지부지 끝난 것은 아쉬웠지만 예상 밖으로 참가 인원이 많았기 때문에 뭔가를 더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당일에는 워낙 참가자도 많고 다들 바빠 보여서 따로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세계여성공동행진_서울을 준비하고 이끌어준 기획단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공동행진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준 점도 고마웠고, 핫팩이며 물이며 행진에 필요한 것들을 여러모로 챙겨주셨을 뿐 아니라 만에 하나라도 행진 내에서 차별 또는 폭력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리 행진 지침을 마련해서 나눠주시는 등 섬세한 배려가 느껴져서 참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이후 나는 우연히, ‘워싱턴여성행진’에 참여한 인도계 미국인 여성과 만났다. 그 분은 워싱턴에 거주하지는 않았지만 공동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쌍둥이 동생과 함께 미국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에 다녀왔다고 했다. ‘워싱턴여성행진’에는 52만 명 정도가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들었다. 내가 서울에서 공동행진에 참여한 이야기를 하자 그 분은 무척 반가워하면서 ‘한국에서도 여성과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다니 다행이다. 내 고향(아마도 인도를 말하는 듯 했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여성 및 소수자 인권에 대한 범세계적인 관심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훨씬 다양한 인종과 출신 국가, 종교관 등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기 때문일까? 그 분이 가지고 있는 인권 개념은 나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확장된 것처럼 느껴졌다. 미국인인 동시에 인도인으로서 정체화하고 있는 그 분의 말을 들으며 나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각각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나와 그 분의 관계에서 우리는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여 있었지만, 한편으로 그 분은 미국에서 ‘유색인종‧힌두교도‧채식주의자’라는 소수자로서도 살아가고 있었고 그런 여러 가지 정체성을 하나의 자아로 통합하고 있었다. 반면에 아직은 단일민족주의가 남아있는 한국에서 ‘평범한’ 한국인으로서 살아온 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만 유독 부각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까지 후기를 쓰고 보니, 내가 ‘세계여성공동행진_서울’에서 다양한 구호를 외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쓴 구절에서 나도 모르게 ‘여성 인권’에 관한 구호와 ‘퀴어‧장애인‧노동자의 인권’에 관한 구호를 구분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내가 해당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혹은 가지고 있더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고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그 자체도 누군가에 비해 일종의 권력적 우위에 있다는 표시라고 생각한다) 퀴어‧장애인‧노동자를 타자화했던 것은 아닌지 부끄럽다. 언젠가 지인이 ‘소수자의 인권과 여성의 인권은 결코 별개가 아니다. 소수자 중에 여성이 있고 여성 중에 소수자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새삼 가슴에 되새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구호를 외치며 후기를 마치고자 한다.‘세계여성공동행진’은 이처럼 나에게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을 주었고 성찰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공동행진에 함께 한 참여자들에게서 참 많은 용기를 얻었고, 전 세계 여성들이 다 같이 공동행진을 할 수 있어서 무척 자랑스러웠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계속 인권에 대하여 고민하고 행동하는 나 자신도 조금은 자랑스럽게 여기고 싶다.

 

‘누구에게도 차별 없는 세상을!’

 

Written by 익명의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