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십자회의 습격

이음저널 connet의 2023년 11월호는 작가진의 과부하로 휴재하려 했으니 ‘집게손 사태’가 터져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혹시 해당 사건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독자들께서는 관련 키워드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잘 정리된 기사가 많이 나오니, 사건의 전개는 객관적인 기사들을 통해 참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이 일은 지금처럼 신문 지상을 뜨겁게 달굴 일이 전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답니다. 집게손으로 게임세상을 도배했다고 알려진 A씨가 어떤 분인지도 모르지만, 이런 일로 괴롭힘을 당하고 고통받아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고 봅니다. “남성혐오”로 명확히 표현되는 “집게손”으로 한국 게임을 페미로 물들이자는 그 비밀스러운 음모를 어떻게 그렇게나 영민하게 캐치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문제에 공감하는 그 판단력이 대단한 분들이 대놓고 사람들을 털어먹는 용산의 행보에는 시큰둥하신 것 같던데……아마 여러분도 저처럼 거꾸로 메달릴까 겁이 나서 그러신 거겠죠? 용산의 문제도 중요한 이야기입니다만 우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이분들의 주장대로 A씨가 집게발을 곳곳에 숨겼고, A가 아니라 40대 남성 B가 한 작업이며, 넥슨의 컨펌하에 이뤄진 일이라고 알려진 후에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페미에 변질된 남성혐오 기호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핵심 주장입니다. 이 기호의 함의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일련의 상황들이 두 가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첫 번째는 「신의 지문」이란 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90년대 꽤 유명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읽어보신 분들도 있고 어쩌면 심취하고 계신 분들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책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드리자면 저자 그레이엄 핸콕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고대 문명들에서 유사한 공통점들을 발견해 내고, 이러한 불가사의들을 만년도 더 전에 멸망한 초고대문명인 아틀란티스의 후예들이 만들어 냈다고 말합니다. 대략적인 저자의 주장은 지각이동으로 아틀란티스는 남극대륙까지 밀려갔고, 천상의 춘분점이 가리키는 별자리가 몇천년 마다 바뀌는데 그때 별자리에 해당하는 동물이나 신을 숭배하는 문명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에 근거한 대표적인 저자의 주장은 스핑크스도 사자자리 시대 때 만든 것이라는 건데, 이러한 이야기를 언뜻 흥미롭게 생각하며 그래 이 모든 게 우연일 리 없다며 오랜 의구심을 깨우는 깨달음을 얻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별자리에 의해 문명이 탄생했는데―그렇게 극심한 지각이동에도 불구하고―오늘날의 별자리 관측과 정확하게 떨어져 그것을 추산할 수 있다는 것이―그 오랜 시간 동안 천구가 움직였다는 사실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 것으로 합시다!―얼마나 엄청난 우연인가요?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혹시 가야 기독교 국가설이란 기독교 이론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이론을 들으면 또 성령이 충만해지실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앞서 말한 신의 지문과는 또 다른 뽕(?)이 차오르는 이야기입니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알려진 곳은 아르메니아로, 국왕 트라나타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화된 시기는 301년입니다. 대략 이때 있던 일을 말해드리자면 고구려는 미천왕 2년, 백제는 분서왕 4년, 신라는 기림 이사금 4년이며, 중국은 삼국지 다음 이야기인 팔왕의 난이 진행 중인 시기입니다. 한데 이 가야 기독교 국가설은 가야의 건국인 42년으로 무려 아득한 시간을 더 앞서는데 대략 기독교인인 김수로가 선교에 의해 복음화된 아유타 왕국의 공주를 배필로 맞았고 이 기독교 국가의 치세가 500년간 이어졌다는 것인데, 그 근거를 구지가와 각종 유물, 상속방식 등에서 찾고 있답니다. 역사적 고증에 대한 이야기는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므로 지루하기 그지없겠습니다만, 그런 이야기를 떠나도 이런 주장이 매우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느껴지지요? 이렇게 되면 관련 불교 유적이나 불교적 설화도 사실 다 기독교였음이 되어야 하거든요.

집게손 이야기 실컷 하다가 음모론 이야기하면 이 모든 게 음모론이라는 것이냐? 라고 화를 내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모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과를 이미 정해놓고 그럴싸해 보이는 상징을 끼워 맞춘다는 점에서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이야기와 공통점이 꽤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필자는 신의 지문과 가야 기독교 국가설을 음모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원하는 결과에 맞게 정교하게 다듬은 증거를 끼워 맞춘 내적 완결성의 결정판쯤으로 볼 뿐이지요.

오히려 집게손 논쟁에서 음모론적인 측면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업계에 자신들의 사상을 배출하기 위한 페미전사가 유수의 국산 게임사의 애니메이션 외주 과정에서 페미니즘의 표상인 ‘집게손’을 교묘히 숨겨 넣으려 했다는 것이지요. 헌데 이걸 또 누군지 모르지만 찰나의 순간, 이 집게손을 포착해 내는 이가 있습니다. 어쩌면 집게손가락을 대단히 민감히 여기거나 이를 넘어선 공조증(恐爪症)―사견이지만 굳이 무서워할 손가락은 구음백골조 정도데……―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이 투철한 반남성혐오자에 의해서 이 마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습니다. 이 일의 배후로 지목된 A씨는 평소 SNS에 페미정체성을 드러내고, 은근슬쩍 페미 계속하겠다는 매니페스토를 게시했기에 이 일의 음모가 발각되었다고 합니다. 인터넷은 들끓고 오만군데서 집게손을 찾아냅니다. 프레임 단위로 영상을 돌려가며―그 열정은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스킬 이펙트에서 조차 집게손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해당 작업을 한 스튜디오 뿌리조차 사과문을 올렸으니 이것이 사실이며 페미니즘에 대한 마지막 보루인 외로운 20대남―다른 20대 말도 들어봐야 할텐데―들의 승리를 외칩니다. 헌데 40대 남성 B씨가 작업을 했고 넥슨의 관리감독과 컨펌하에 해당 작업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국면은 전혀 반전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작업자도 남페미겠지, 콘티를 짠 놈도 페미겠지라고 합니다. 최초로 문제가 된 장면은 ‘집게손’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하트를 날리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결국 이들은 숨겨진 페미전사가 아닌 그 뒤에 숨은 고도로 조직화된 페미십자회의 비밀을 알아냅니다. 20대 남성들이 즐겨하는 게임을 페미로 물들여 이들을 세뇌하려는 수작이었을까요? 결국 ‘집게손’이 “남성혐오”이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이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생각 뿐입니다.

앞서 말한 비밀십자회의 습격이 정말 현실적으로 그럴싸 해보시나요? 그분들께서 모아둔 집게손 짤을 보며 필자는 박장대소했었습니다만 논리적인 척 결과에 증거를 맞추는 분들을 보고 있자면 저는 차라리 가야가 500년간 기독교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를 더 믿어보고 싶답니다. “SNS에 그런 글을 쓴 건 사실이잖아 그러니깐 그런 걸 숨겼어! 그러니깐 이건 여성혐오가 아니야!”라고 목청을 높이신 분들에게 그 논리를 그대로 돌려드리면 이 논쟁에 가장 깊숙이 뛰어든 분들의 SNS나 게시글에 여성혐오의 표현들이 있다면 처음부터 여성혐오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 맞지 않나요? 라고 되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여성혐오 같은 것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본인들이 커뮤니티나 인터넷에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쓰는 많은 글들은 여성혐오가 맞아요. 모를 뿐이지요. 논리의 비약을 부리지 마라고 하신다면 한 가지 더 비밀스러운 사실을 알려드릴 것이 있어요.

바로 페미십자회의 습격에 대한 건데요. 저 비밀스러운 결사가 굳이 왜 선생님들이 페미니즘의 심벌로 아는―어쩌면 유일한―집게손을 기호로 넣었을까요? A가 메갈리아라서? 페미니스트라서? 이것에 대해서도 한 가지 알려 드릴 것이 있어요. 귀하들은 페미니스트를 계속 욕으로 쓰니 그걸 진짜 ‘욕’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일베하냐는 모욕일 수 있겠지만, 페미하냐?는 모욕이 아니라서 말이지요. 일베의 혐오의 갈래가 얼마나 다양하고 자기들끼리 부딪힐지는 잘 모르지만―그걸 알 필요도 없습니다만―페미의 갈래가 끝과 끝이 태평양 넓이 보다 더 간극이 큰지라,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상징도 다양하고 말이지요. 공교롭게도 A씨와 그 기사단이 선생님들이 반드시 긁힐 수밖에 없는 심벌을, 본인들의 노동시간을 갈아가며 했다는 주장이 얼마나 비약일지 좀 생각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세상이 넓으니 정말 그렇게 소모적이고 그걸 짜릿한 승리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짓을 본인의 생계를 위협해가며, 추가 노동까지 해가며 한다는 것보단 아틀란티스가 남극으로 가라앉아서 녹으면 찾는다는 쪽이 더 그럴싸하게 들리는 건 왜 일까요?

필자는 개인적으로 요즘 정말 심취한 일이 있는데 24시간을 들여도 모자랄 정도랍니다. 하루에 더 많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하루하루 너무 정신없이 보내고 있답니다. 여러분들이 거기에 시간을 들이시며 겁내 건지, 분노하는 건지, 아니면 사실은 그냥 노시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거 그냥 시간 낭비하시는 게 아닙니다. 시간 죽이니깐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사람의 시간은 유한한지라 사실은 수명을 활활 태우고 있는 거라서 말이에요. 넥슨이 공포를 느꼈는지, 여러분처럼 비밀결사회의 음모를 먼저 캐치해서 꼬리를 내렸는지는 몰라도 헛짓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게임사가 기타 회사들도 비슷하고요. 괜히 엄한데 정혈을 쏟지 마시고 밖에 나가 상쾌한 겨울 공기라도 한번 마셔 보길 바랍니다. 아니면 숨은 뜻을 찾아낼 시간에 대놓고 저 짓하는 용산이나 좀 어떻게 해보시던지요!!

 

 

Written by 박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