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 아마도 고전 읽기의 즐거움

I. 사람영화상영회를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공동체 이음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상영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작은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생활영화상영회』라는 이름으로 의․식․주에 관한 테마로 영화를 선정해 함께 즐겼는데요. 그러다보니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엄선한 영화를 보니 좋기는 한데 함께 보고 싶은 영화, 같이 이야기 하고 싶은 영화를 보는 기회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준비한 『사람영화상영회』는 이음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서 달마다 영화를 선정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추천을 받는다고 해도 단순히 ‘이거 재밌을 거 같아요.’나 ‘신작인데 못 봤어요.’ 같은 이유보다는,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나, 느낌 등을 공유하고 싶다는 취지를 구글 스프레드를 통해서 온라인으로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선정하여 매달 말일 토요일에 상영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말에는 선거의 계절을 앞두고 미 대선 과정에서 기계 오류로 한 사람의 시민이 대선 결과를 좌우할 수 있게 되어 벌어지는 헤프닝을 다룬 캐빈 코스트너 주연, 감독의 『스윙보트』를 상영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인문학공동체 이음의 ‘사람영화상영회’ 그 두 번째 상영작은 바로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언젠가 지나가며 그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본 『카사블랑카』였습니다.

 

II. 1942년 작입니다?

 

저도 몇 해 전에 그 책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마이클 조던과 농구의 일화 등은 특히 인상적이었고요. 네? 기억이 안 난다고요? 그런 대목이 있었냐고 질문을 하신다면. 모쪼록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시대를 풍미한 농구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다소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이쯤에서 몇 해 전 세간을 풍미한 한 저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잊혔을 수도 있지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입니다. 네, 책 제목을 듣고보니 무릎을 탁 치며 “그래, 그런 책이 있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책의 내용도 떠오르시나요?

마이클 샌덜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모두가 존 롤스의 『정의론』을 인용하길 좋아하지만 정작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입니다.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몇 알고 있습니다. 가령, 마르크스 좀 안다고 목에 힘 꽤나 주는 분들치고 정작 마르크스의 저작이나 『자본』은 끝까지 다 읽은 적이 없다든지, 크툴루냐 하스터냐로 논쟁하길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정작 러브크래프트를 읽은 적은 없다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인문학공동체 이음에서는 회원 특전(?)으로 ‘고전읽기 세미나 – 자본론 읽어보기’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처음엔 농담으로 시작했는데 진짜로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다시 존 롤스의 『정의론』으로 돌아가도록 해보죠. 어차피 책 내용을 이야기 할 생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아직 안 읽었거든요. 『카사블랑카』도 마찬가지랄까요? 아주 많은 곳에서 회자됩니다만 정작 본 사람은 드뭅니다. 영화 좀 안다고 자부하는 분들조차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는 알아도 정작 본 사람은 없지요. 또 막상 보려고 해도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영화가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이례, 매년 딱 백 개의 작품만 추려서 순위를 매기면 반드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소제목에 적었듯이 『카사블랑카』는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의 참여와 사기 진작 등을 위해 만든 ‘프로파간다’ 영화입니다. 말이 좋아 제2차 세계대전이지, 1942년이면 한반도는 아직 일제강점기 하의 폭거에 시름하고 있을 때 입니다. ‘쌍팔년도’ 영화도 구닥다리라고 재미없다고 안 보는 와중에 1942년이라니? 이른 바 “더블 쌍팔년도” 영화가 과연 재미가 있었을까요?

여기에 바로 고전읽기의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하면 도무지 엄두가 안 날지도 모르지만, 함께 하면 어떻게든 같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인문학공동체 이음에서 힘을 모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나 『젠더 트러블』 등의 고전을 읽었던 것처럼, 또 지금 함께 『자본론』을 읽고 있는 것처럼 함께 헤쳐 나가자(?)는 취지로 『카사블랑카』를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III. 1942년 작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카사블랑카』는 프로파간다 영화‘였었’습니다. Propaganda, 그러니깐 좋게 이야기해도 정치선전 영화라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비교를 하기엔 그렇지만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나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만든,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장병 훈육영화들과 태생이 같다고 할까요? 하긴 후자와의 비교는 레니 리펜슈탈에게 감히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치 부역자이니 어쩔 수 없지요.

다시 『카사블랑카』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보면 결과는 무척 놀라웠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은행정 책마당에 모여 있아 있던 회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습니다.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도무지 믿지 못 했겠지만 무려 반세기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가 무척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그 유명한 애니악조차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무렵입니다. 설령 그 이전에 컴퓨터가 있다고 해도 군사용 계산기에 지나지 않았을 때죠. 요새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보여주는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은 고사하고 ‘쌍팔년도’나 그 이전에 보여준 특수촬영 기법조차 제대로 발달해 있지 않았답니다.

헌데 영화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나치에게 파리 시가 점령되기 직전의 회상 장면 등은 좀 뜨악할지도 모르지만 그 마저도 흑백영화 특유의 풍미로 무마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수준급이기 때문에 요즘 쏟아져 나오는 AAA급 블록버스터가 부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카사블랑카』는 보는 내내 관객들을 흔들어 놓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 문자 그대로 ‘옛날 영화’가 이렇게 웃길 줄 몰랐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심지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 영화는 각 파트가 시작한다는 것을 개그 씬을 통해서 알립니다. 유머스러운 장면들도 하나 같이 ‘그냥’ 나오는 서비스 장면이 아닙니다. 인물을 보여주거나, 사건을 진행시키거나, 갈등을 드러내는데 쓰입니다. 어디 하나 낭비하는 장면이 없는 모습을 지켜보며 일찍이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의 대부인 로버트 맥기가 “아크플롯의 시작과 끝”이라고 극찬한 이유를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영화는 프로파간다를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반나치 전선을 형성하고, 미국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엘사의 남편이기도 한 빅터 라즐로라는 체코계 지하 운동 지도자의 행보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영화는 결코 이들의 반나치 전선 이야기를 강요하거나, 우선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릭과 엘사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각 인물 군상의 갈등과 욕망을 보여주고, 어떻게 서로 화해하는지 보여줌으로써 효과적인 ‘프로파간다 영화’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았던 이 프로파간다 영화는 본래의 목적 이외에도 ‘예술’로써 기능하게 됩니다.

 

IV.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마지막으로 영화 감상 후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서 나왔던 재미난 내용을 소개할까 합니다. 화두는 바로 엘사의 남편이자 지하 운동 지도자인 빅터 라즐로의 존재였습니다.

영화상의 맥락으로나, 시대적인 이유로나 라즐로는 소위 말하는 공산주의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 의해서 반나치 전선에서 활약하는 영웅으로 그려집니다. 왜냐하면 나치는 그들 공동의 적이며, 소비에트 연합은 미국의 든든한 우방이니까요.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냉전과 함께 상황은 일변하기 시작합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미국에 의해 영웅으로 그려지던 ‘빅터 라즐로’는 악마의 다른 이름이고, 라즐로의 미국인 동지들은 ‘매국노’로 손가락질 당하는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 전역을 강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지난 4월 초에 개봉한 화제작(?) 『트럼보』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만 재미난 건 그런 시대상 속에서 『카사블랑카』의 주인공 릭이자 당대 최고의 아이콘이었던 험프리 보가트는 매카시즘의 광기를 지적하며 시민들의 각성을 호소하는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텍스트만큼이나 흥미로운 부분이었다고 할까요?

고전을 독해함으로써 얻는 즐거움이란 단지 해당 텍스트만이 아닌 주변의 것들을 읽어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 오늘날의 어떤 부분들을 빗대어 이야기 할 수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런 작업이 생경하지 않도록 기꺼이 함께 해준 인문학공동체 이음의 『사람영화상영회』에 감사를 표할 따름입니다.대표적인 오역, 아니면 요즘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표현을 빌려 ‘초월번역’인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보다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시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음에도 어떤 즐거운 이야기가 오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혹 그런 기대감이 슬며시 든다면 이번 달 말에도 신월동으로 산책 한 번 나오셔도 좋지 않을까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Written by 박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