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저는 말이 많습니다. 그냥 말하는 걸 좋아합니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지금 보시는 것처럼 글로 말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한참 메신저로 떠들고 있으면 친구들 열 명 중 아홉 명은 제가 글 쓰는 것도 시끄럽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전생에 무슨 한이 맺혀서 그렇게 말이 많은거냐는 소리도 들어봤습니다. 글쎄요. 저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생각해보면 저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둘째치고, 그냥 제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등. 끊임없이 저는 제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걸 통해 상대방에게 제가 어떤 사람인지 표현하고,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의 키워드’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 입니다. 그러기 위한 수단으로 저는 ‘말함으로써 표현하기’를 선택한 겁니다.

 

말을 잘하고 싶어서 책을 엄청나게 읽어댔습니다. 지금도 부모님 댁에 가면 거실 한 쪽 벽면이 전부 책장으로 되어있는데, 그 중 제 손이 한번이라도 닿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부터 부모님이 읽으시던 수필이나 산문집 등 손에 잡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읽어가며 말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을 만나 책에서 읽었던 얘기들을 하면 칭찬을 받았습니다. 똑똑하구나, 참 똑부러지네, 어쩜 이렇게 말을 잘 하니? 같은 말들을 들었고, 그렇게 칭찬을 들은 날이면 어김없이 밤 늦게까지 또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을 만나서 책에서 읽었던 얘기들을 하면, 이상하게 다들 지루해했습니다. 재미없어하고, 제 말에 집중하지 않고, 저를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뭐가 문제인지 몰라서 더 책을 읽어봤는데, 딱히 달라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를 점점 더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늘어났던 것 같습니다. 당시 주변 친구들의 저에 대한 감상은, 발표는 잘 하는 애, 말 하는 거 좋아하는 애, 근데 재미는 없는 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저도 딱히 미련은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하는 얘기는 재미가 없었거든요. 그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아.. 딱 하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는 아주 많이 궁금했습니다. 아무도 대놓고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고나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아. 되게 재수없었겠다.

 

이런 제가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대략 짐작이 되실 겁니다. 물론 지금 제가 대화를 잘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아직 덜 배웠거든요. 저에겐 아직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 그 사람의 마음을 듣는 것, 그 사람이 경험한 상황들을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 그리고 그 것에 대해 나는 어떻게 느끼는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은, 정제되지 않고 창고에 물건 쌓아놓듯이 쌓아둔 수많은 문장과 단어와 어휘들 속에서, 제 마음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을 찾는 것 입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집중해서 대화하고 난 후 느껴지는 뿌듯함과 충만함은, 어쩌면 그런 고민의 시간에 대한 대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보통 그런 시간은 우리 일상에서 잘 허락되지 않죠.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린 너무 바쁘잖아요. 책 한 권 읽을 시간은 고사하고, 내 건강을 위해 운동할 시간도, 좋아하는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갈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것이 지금의 우리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타깝게도요.

 

아직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바쁘고 타인의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화를 잘 못합니다. 귀가 두 개고 입이 한 개 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도 두 개나 되는 귀를 잘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람책을 읽는 시간이 저에겐 참 반가웠고, 많이 소중했습니다. 그 날의 분위기는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심을 담자면, 장기적으로 행사를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기 직전까지 고민했던 건 사실이에요. 비가 많이 왔잖아요. 저는 비가 오는 날이면 정말 거북이가 되고 싶을 만큼 움직이기가 싫거든요.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 공기 속의 수분 입자 하나하나가 저를 짓누르는 기분이 들 정도로요. 일일이 싸우느라 늦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 두 사람의 책을 ‘읽은’ 소감은, 정말 훌륭하고 충실한 시간이었다, 는 것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정말,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었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책을 읽는다’고 하면 종이책을 떠올리게 되죠.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확정적으로 적어둔, 고정된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그래서 일방적인 정보의 전달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사람책은 살아있는 책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었습니다. 평소 제가 살아오던 패턴에서 혼자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첫번째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에 대한 제 의견을 전달하고 피드백을 받는 상호적인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 두번째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신선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어폰을 꽂지 않고, 가만히 시간을 되짚어보면서 제 마음 속을 다시 들여다보려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단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 그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는 것. 종이책을 읽을 때에는 절대 느껴볼 수 없을, 진짜 소통의 시간들. 늘상 바쁘고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 얻은 잠시간의 휴식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멀지 않은 시일 내에 꼭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라는 책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Written by 이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