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몸에 실린 무한한 경이 – 팀 버케드, 새의 감각: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에이도스, 2015.

1.

 

새의 생태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새가 우는 소리가 같은 종끼리라도 지역에 따라 다르며, 지역에 따라 새소리가 달라지는 이유가 조상들의 노래를 배워서 계승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접하면서였다. 한동안 새의 생태에 대한 피상적인 흥미만을 가지고 파편적인 정보만 구하던 가운데,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을 펴면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새가 실로 경이로운 생물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병아리는 두 눈이 서로 다른 시각적 기능을 담당한다. 병아리의 오른쪽 눈은 가까운 물체를 보는 데에, 왼쪽 눈은 먼 물체를 보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비둘기는 시각, 후각, 자각(磁覺, 자기장을 지각하는 능력)을 모두 사용하여 길을 찾는다. 오리의 혀는 딱딱하고 거칠어 촉각과 미각을 느끼는 데에 적합하지 않지만, 그 대신 부리 안쪽에 촉각과 미각을 느끼는 감각점이 빼곡하게 들어있으며, 그것으로 흙탕물 속에서 부리를 쓸듯이 하며 안전한 먹이를 구별하여 섭취한다. 계절 변화에 따라 신체의 기능이 변화하는 것은 육상동물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인데(털갈이, 동면 등) 새의 경우에는 이 현상이 더욱 극단적이어서, 계절 변화에 따라 필요하지 않은 뇌 부위가 작아졌다가, 해당 부위가 필요한 계절이 오면 다시 커진다고 한다. 한참 책을 읽고 있으면 이렇게 흔하게 보는 생물이 이렇게 특이한 해부학적 특징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이다.

새의 감각은 진중한 동물학자가 써내려간 새의 다양한 해부학적 특징들을 접할 수 있는 책이고, 전반적으로 환상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읽는 재미가 있다. 본 서평에서는 서평자가 인상적으로 느낀 두 가지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책의 전반적인 소개를 대신하고자 한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흥미롭게 느껴졌던 부분은, 새의 각 기관들의 존재가 안정적 비행을 하기 위한 진화적 최적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새에게 이[齒牙]가 없는 것은 안정적인 비행을 위해 두부(頭部)의 무게를 최소화한 결과이다. 치아와 같은 단단하고 무거운 기관이 머리에 있으면 하늘을 날 때 그만큼 앞쪽에 무게가 쏠리게 되어, 안정된 비행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가 없는 대신 새는 몸통 안의 모래주머니로 먹이를 으깬다.

안정된 비행을 위해 새가 이 대신 모래주머니를 가지게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그 외의 기능들도 비행의 안정을 위해 최소화되었다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가령 매의 두개골 안에는 안구를 굴리는 근육이 없다. 육상동물들은 물체를 관측할 때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여 물체의 크기, 거리 등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 매는 두부의 무게가 줄어들다 보니 안구 근육의 기능이 거의 상실되었다. 그 대신 물체를 관찰할 때 머리 자체를 움직여 대상 물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는다. 매가 가만히 있는 물체를 관찰할 때도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동물원에서 보던 새들의 몸짓에 대해 좀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범인이 상상하기 힘든 영역까지 작용하는 진화적 최적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3.

 

중세 유럽의 식탁에는 오늘날과 같이 포크와 나이프가 식기로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이프 두 자루가 식기로 올라와 있었다고 한다. 나이프 한 자루는 (오늘날의 포크처럼) 음식물을 고정하거나 찍어 올리는 용도로 쓰이고, 다른 한 자루는 음식물을 써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같은 모양의 도구를 두 가지 용도로 쓰는 것이 기능상 효율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한쪽 나이프의 디자인이 점차 변화되어 오늘날의 포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진화의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비행 곤충의 날개는 초기에 (오늘날의 잠자리처럼) 똑같이 생긴 날개 네 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일부 비행곤충은 날개 두 장으로 충분한 양력을 얻을 수 있도록 진화하게 되었고, 비행용으로 쓰지 않아도 되게 된 나머지 두 장의 날개는 (오늘날의 풍뎅이처럼) 비행용 날개를 보호하는 두꺼운 겉껍질로 변모하였다. 즉 진화의 세계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발생한 기관(상동기관homolog)이 여럿 있으면, 해당 기능은 한 기관에 전담시킨 다음 잉여적인 기관들이 각기 다른 기능을 하도록 분업화하는 경향이 있다.

새들의 경우에도 이렇게 상동기관들이 기능 분화를 한 예들을 볼 수 있는데, 우리 포유강의 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철저한 분화가 존재하여 신기함을 더한다. 대표적인 예로, 이 글의 서두에서 예시하였던 병아리의 예와 같이, 양안이 먼 곳을 보는 눈과 가까운 곳을 보는 눈으로 비대칭적으로 분화되어 있는 새들이 제법 있다. 가금류, 물떼새류, 매 등이 대표적인 예이며 다른 새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예외 없이 모두 이러한 시지각의 편측화(lateralisation)가 나타난다. 아마도 새들에게는 가까이 있는 대상(먹이나 지상의 적)을 파악할 필요와 멀리 있는 대상(하늘의 적)을 파악할 필요가 동시에 존재했기 때문에 눈의 기능이 분화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리라 생각된다. 두 눈이 동일한 기능을 하지 않으면 양감이나 깊이감을 지각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무뎌질 것이지만, (관련된 예인지는 모르겠으나, 새끼 재갈매기는 종이에 그린 재갈매기 그림을 보고 진짜인 것처럼 반응한다고 한다) 새들의 세계에서는 섬세한 깊이 지각을 가지는 쪽보다 양안의 기능이 분화되어 있는 쪽이 개체의 생존에 더 유리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또 한가지 기능 분화의 예는 올빼미의 귀이다. 올빼미는 대개 귀의 모양이 비대칭이어서, 한쪽 귓구멍은 눈보다 낮게 위치하고 한쪽 귓구멍은 눈보다 높게 위치한다고 한다. (시계에 비유하면, 큰회색올빼미의 경우 한쪽 귀는 5시 위치에, 반대쪽 귀는 10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먹이를 잡기 위해 소리로 대상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을 극대화하려 한 결과로 보인다.

 

4.

 

과학자들은 간혹 자신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곤 한다. 가령 물리학자들은 자연계에 내재한 대칭성과 조화,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는 수학적 엄밀함 등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한다. 화학자들도, 심리학자들도, 사회학자들도 간혹 자기가 탐구하는 학문을 아름답다는 말로 묘사할 때가 있다. 한 종류의 知의 세계를 깊이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그 이면의 아름다움이 점차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해부학자들도 어떤 측면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고 느끼는 아름다움이 어떤 것일지 일반인으로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진화의 섭리가 만들어낸 섬세한 효율성, 정교하게 조직된 유기성을 간접적으로나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일반 독자로서 해부학 대중서를 읽는 즐거움이라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새의 감각은 그런 즐거움을 손색없이 맛보여준 한 권이었다.

 

Written by 이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