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7 ‘깨어난 포스’ 리뷰 – 카일로 렌과 다크 사이드를 중심으로

I. 글 속에 스포일러 있어요!

 

지난 12월 17일(목), 십년도 넘는 세월 끝에 스타워즈의 새로운 시퀄 시리즈가 국내 개봉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차까지 고려하면 해외보다 이틀 먼저 개봉한 셈이다.

수익성이 반드시 작품의 내용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며, 조지 루카스로부터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구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흥행은 그런 명색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분석이 세간을 떠돌고 있고, 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성공 이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디즈니를 위시한 거대 자본의 입김에도 불구하고 제법 냉랭한 국내의 분위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즐거운 논쟁거리임은 틀림없다. (세상에 우리의 무관심이 작정하고 달려드는 자본을 이기다니?!)

한편 스노크의 정체가 쉬브 팰퍼틴(다스 시디어스)의 스승인 다스 플레이거스 일 것이라는 추측과, 어쩌면 레이가 솔로 가의 자녀이고, 벤은 스카이워커일 것이라는 등, ‘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럼스, 통칭 ‘쌍제이’ 감독이 자아낸 퍼즐을 풀기 위한 지난한 노력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도 즐거운 시간일 테지만 이런 때이니만큼 보다 ‘텍스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컨텍스트’를 제외하고 나면 역시 남는 것은 인물과 서사이다. 클래식 시리즈의 주인공 삼인방이 루크, 레아, 두 스카이워커와 한 솔로였다면, 이번 신 시리즈의 주인공 삼인방은 명백히 레이, 핀, 벤 솔로이다. 우키(츄바카의 종족명)와 포 다메론은 어디 갔냐고? 우키는 우키고(아니면 R2D2와 3CPO랑 엮든지!), 포 다메론은 클래식 시리즈의 X-윙 편대장이자 에이스 파일럿 웨지 안틸레스의 포지션이지 않은가?

먼저 레이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더 크다. 클래식 시리즈와 대구(對句, Parallelism)를 이루기 위해서, 아마도 ‘에피소드 8’에서 “내가 니 애비다”에 버금가는 반전을 위한 안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트 사이드 주인공인 레이의 캐릭터는 너무 약하기만 하다. 혹자들은 흔히 말하는 ‘쎈 언니’ 캐릭터이자, 헐리우드에서 흔치 않은 페미니즘적 캐릭터라고 추켜세우는데 글쎄? 과연 그런지는 한 번 고민해볼 문제이다.

그녀가 ‘페미니즘적 캐릭터’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납치를 당한 뒤에도 도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뭔가 해결하려고 하는 등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라는 기존의 문법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무려 ‘다니엘 크레이그’에게 세 번 만에, 배운 적도 없는 ‘마인드 트릭’을 시전하며, 역시 배운 적도 없는 라이트 세이버를 휘둘러 (비록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멘탈이 나간 카일로 렌을 쓰러뜨리는 활약을 보이는 등, 말 그대로 레이는 물리적으로 ‘쎈 언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로 그게 레이를 페미니즘적인 캐릭터이도록 만드는가? 다른 삼인방 중 하나이자, 라이트 사이드 주인공 중 한 명인 핀은 퍼스트 오더의 스톰트루퍼로서 투입된 첫 작전에서 민간인 학살에 대한 깊은 회의와 고민을 느끼게 된다. 유아 때부터 납치되다시피 하여 스톰트루퍼로 훈육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택했던 것도 아닌 운명을 거부하고, 결국 목숨을 걸고 포 다메론을 도와 탈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그의 양심은 죽음에 대한 공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때문에 양 쪽에서 번민하다가 한 번은 공포에 눌리지만 결국은 양심을 택하는 그 과정에서 핀은 캐릭터로서의 매력을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허풍도 심한 개그 캐릭터이며, 일부 인종차별주의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까지 했던 ‘백인이 아닌’ 최초의 스톰트루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살펴 볼, 이번 에피소드에서 가장 고뇌하며, 위상이 극과 극으로 변하고, 뛰어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는 벤 솔로에 비하면 레이는 어떠한가? 너무 평면적이고, 고뇌하지도 않는 전형성을 가진 캐릭터일 뿐이다. 고민한다고? “엄마 왜 안 와?”의 어디가 캐릭터의 매력을 획득할 고민인가? 심지어 그녀는 이전 시리즈로 치면 루크 스카이워커의 포지션이다. 선천적으로 강한 포스 센시티브라고? 그런데 뭐 어쩌란 말인가? 『드래곤볼』에서도 손오공이 가장 강하지만, 강한 전투능력이 그의 매력을 담보해주는 것이 아니다. 아니, 애당초 이제 그 시리즈의 최강자는 고양이인 비루스인데, 그럼 비루스는 동물권보호의 기수라도 된다는 말인가? 페미니즘 캐릭터라고? 오히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감독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어야 하지 않을까?

각설하고 이제 정말로 벤 솔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아마도 특별한 반전이 더 생기지 않는 한, 현재까지는) 한 솔로와 레아 오르가나의 아들이자, (그리고 이건 스포일러지만) 다스 베이더의 외손자이기도 한 그는 이번 에피소드의 메인 빌런인 카일로 렌이기도 하다.

우선 그는 등장부터 비범하다. 다스 베이더를 연상시키는 탈바가지를 쓰고 타투인을 닮은 사막행성 자쿠에 모습을 드러낸 카일로 렌은 시뻘건 세이버가드 라이트세이버을 들고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블라스터 볼트를 그대로 공중에 세워버린다. 이 때 연출도 제법 훌륭하지만 초반부터 이런 장면을 통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동시에 이 인물이 가진 강함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보다도 놀라운 건 스톰트루퍼가 총을 쏴서 드디어 사람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거지만!)

하지만 당연히 초반부터 일이 잘 풀리면 영화가 진행이 안 될 테니 은하 제국의 적통을 잇는 퍼스트 오더는 그들이 원하는 정보(클래식에서는 데스 스타의 지도라면 이번에는 루크 스카이워커가 잠적한 장소)도 얻지 못하고 기껏 잡아온 포 다메론도 핀과 함께 탈출해 버리고 만다. 클래식 시리즈에서 다스 베이더가 임무에 실패한 부하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카일로 렌은 부하들을 참살하는 대신 라이트 세이버를 켜고 온 동네 물건을 다 때려 부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제법 여러 차례 나오는데 레이가 탈옥한 후에 그가 물건을 때려 부수며 스톰트루퍼들을 찾지만 부하들은 차마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주춤거리기까지 한다. 다시 말해 그가 누구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한편 그는 고뇌하는 인물이다. 할아버지에 대한 삐뚤어진 동경은 동시에 열등감이기도 하다. 다크 사이드에 매료되어 있지만 라이트 사이드에 대한 열망 역시 놓고 싶지 않다. 데스 스타보다 더 거대한 대(對) 행성파괴요새 스타 킬러에서 마침내 재회한 아버지 한 솔로 앞에서 구원을 바라며 가면을 벗는다. 외나무(?) 다리에서 재회한 부자의 머리 위로 햇살이 드리운다. 그러다 작렬하는 태양광이 사그라지고 츄바카, 레이, 핀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를 찌른다. 그가 다시 카일로 렌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스타워즈 최고의 인기 캐릭터 중 한 명이자, 에피소드 7의 최고액 배우를 한 칼에 보낸 카일로 렌의 위상은 ‘한 솔로의 아들’에서 “천하의 ***”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는 부정과 긍정을 끊임없이 가로지르고, 천국과 지옥을 수도 없이 오르내린다.

마지막 라이트 세이버 듀얼 장면 덕분에 카일로 렌이 사실 약한 거 아니냐는 의견이나 레이를 부각하기 위해서 너무 희생한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에피소드 내내 강력한 위력을 보이던 우키 보우캐스터에(그것도 아버지 친구 분께!) 맞아 배가 뚫린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다스 베이더를 닮은 가면에 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가면을 벗는 행위는 기술적으로 카일로 렌 역을 맡은 아담 드라이버의 얼굴을 보여줘야 했고, 또 그가 (다크 사이드에 빠진 것 같다는 루머가 도는) 루크 스카이워커가 아님을 보여줄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동시에 이 탈바가지는 그의 또 다른 페르소나로도 작동한다. 굳이 제의적 측면을 따지지 않더라도, 자신이 닮고 싶은 다른 지향으로써, 다른 인격이 덧씌워지는 의미에서 카일로 렌의 가면을 주목하면 화려한 등장 이후로 그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가 겪는 내적 갈등과도 관련이 있지만 동시에 가면의 행방과도 관련이 있다. 초반 내내 가면을 쓰고 있던 카일로 렌은 레이 앞에서 한 번, 그리고 아버지를 찌르며 완전히 가면을 벗는다. 아버지를 찌르고 구원을 얻었다는 자신의 진술과는 달리 철저히 발가벗겨진 채로, 소위 말하는 ‘민낯’을 드러낸 상태가 된 것이다. 좀 더 과도하게 표현해보자면, 강함에서 약함으로 가는 그의 도정 역시 상징체계의 일종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입체적인 인물이었던 덕에 수많은 ‘다스(Darth Who)’ 팬들의 거부감, 즉 카일로 렌과 그의 기사단이 시스 전통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루크 스키이워커와 만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시대의 전환을 보여준 레이보다도 훨씬 더 주인공다운 카일로 렌. 그의 성장과 보다 더 처절한 ‘찌질함’을, 또 종국에는 라이트 사이드로 다시 돌아올 탕아가 벌써부터 기대되어 이대로 곧 다크 사이드에 빠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Written by 박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