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이 빛나는 밤에 – 도교편

우리는 종교가 삶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냐는 주제를 바탕으로 ‘주술이 빛나는 밤에’라는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첫 번째로 주목한 것은 ‘도교’였답니다. 아마도 도교를 이야기하기엔 동아시아사에 대한 통사적 이해가 없는 분들은 살짝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그냥그냥 이야기 나눠도 좋겠지만 흡사 역사 수업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면 머리 아플지도 모르니깐 말이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눌수록 ‘도교는 어떤 종교인가요? 도교가 뭔가요?’라는 질문이 제법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부분 많은 종교는 죽은 이후에 자신의 덕행에 따라 벌을 받는다는 설정(?)을 차용하여 종교관을 따를 것을 설파하는 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교는 다음 세상보단 지금, 이 순간(?) 날 묶어왔던 사슬을 끊어내고(?!) ‘늙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개념을 차용하여 현재를 더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종교이기도 합니다. 매우 복잡한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했습니다만 어떤 세계관을 중요하게 생각했는가 하는 측면도 있달 까나요?

 

그런 의미에서 도교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이 도교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앞서 말씀드린 불로장생하는 신선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불사의 존재인 ‘신선’은 좀 유니크(?)한 맛이 있어야 하기에 비바람도 불어오고 구름도 타고 다니며 도술을 자유자재로 부리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문학성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봉신방 혹은 봉신연의로 알려진 소설에서 도교의 세계관을 차용하여 은‧주 시대의 역성혁명을 신비롭게 그려내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술은 식기 전에 돌아오는 것으로 유명한(?) 삼국지의 관우도 도교의 신인 관성대제로 민간에 많은 숭상을 받고 있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교는 손오공(제천대성)이라던지 노자(태상노군) 등 유명한 자들은 죄다 신격화되기도 합니다. 특히 노자의 경우 도교의 교조로 추앙되는지라 도교의 최고 존엄인 원시천존의 화신이라는 설정까지 더해집니다. 아마 교리를 설파하는데 유명한 아무개도 신과 함께(?) 한다더라 하면 귀에 쏙쏙 박히지 않았겠습니까? 거기에 너도 수련 좀 하고 도력도 쌓으면 같이 겸상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으면 지금 기준으론 안 먹힐 이야기겠지만 그 옛날에는 얼마나 그럴 싸 했을까요?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사람들이 따르게 하기 위해선 너무 어렵지 않고 쉽게 이해되는 교리와 체계가 존재해야겠습니다. 그런 연유로 도교의 신들은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체계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바로 지체에 의해 등급이 나눠진 것인데요. 쉽게 말하면 더 높은 벼슬에 있는 신일수록 더 높은 하늘에 산다고나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신분제 사회에서 발원한 도교는 자연스레 권력자들의 통치 정당성을 옹호하면서 자신들의 종교의 권위를 드높이는 일타쌍피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지요. 그런 의미에서 살아남은 모든 종교가 그렇겠습니다만 도교 또한 매우 사회적인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도교에서 신선이 되기 위한 수련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중적인 것 중의 하나가 연단술이 아닐까 합니다. 연단술은 꼭 단약을 만드는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지만 알기 쉽게 그냥 단약을 만드는 이야기만 좀 나눠 볼까 합니다. 쉽게 말하면 영생을 위한 재료들로 단약을 만들어 먹으며 수련을 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게 그 요지인데, 진시황이 찾아다녔다는 불로초도 비슷한 형태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지금은 마치 잊힌 전설 같은 것으로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포박자 등의 책을 통해 연단술의 방법과 비법이 쓰여 있습니다. 물론 고대와 중세의 기준으로 서술된 것이기에 무조건적으로 신봉하고 따라 하면 곤란하겠지만 말이죠.

 

이 영생을 위한 연단술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재료 중의 하나는 무시무시하게도 수은입니다. 지금 누군가 수은을 마시라고 한다면 112부터 누르시겠습니다만 당대에는 환동의 묘약으로 손꼽혔습니다. 이건 서양도 비슷했는데 수은을 바르면 피부가 고와지고 젊어진다는 게 바로 당대의 견해였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실제 수은을 섭취하게 되면 혈관에 가라앉아 혈류를 방해하고 피부를 경직시키게 되는데 이때 일시적으로 피부가 매우 탱탱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엔 화장품 등으로도 많이 애용되었는데 ‘환동’을 위한 잦은 수은 섭취는 결국 ‘신선’이 되어 ‘승천’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지요.

 

영원함을 누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수은 섭취의 결말은 항상 골에 가서 끝나기 마련이었답니다. 그런 연유로 유독 도교와 관련된 내용을 보면, 일가족이 어느 날 다 같이 사라졌다는 식의 이야기나 단약을 먹고 죽었다 다시 살아나 승천했다는 이야기들이 제법 많습니다. 혹시나 호기심이 들거나 나는 영생을 누릴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야말로 Don’t try this입니다.

 

도교는 불교, 유교와 함께 동아시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실제 중국사에서도 도교의 도사들은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높은 종교적 위상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처절히 투쟁하기도 하였고, 흥할 때는 상대를 말려 죽이려 하다가 밀릴 때는 산천의 도관이란 도관이 모두 박살나기도 했답니다. 아울러 교세 확장을 위해서 삼교가 서로의 영향을 하나둘씩 나눠 가지며 차용해 갔는데, 우리가 잘 아는 정화수를 떠 치성을 드리는 것이 대표적인 도교적 의례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소설들을 통해 도교의 계보를 학습해왔습니다. 그 시작은 그 유명한 삼국지라 할 수 있는데, 당시 삼국시대에는 태평도의 교조 장각이나 천사도의 장천사 장로 같은 인물이 존재했던 시기였답니다. 태평도의 경우 황건적이라 불리는 역적(?!)인지라 사료가 많이 남아있진 않지만 오두미교라고도 불린 천사도의 경우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분화하여 상청파, 정명파, 영보파 등이 나왔고 다시 이들이 합쳐져 정일교라 불리게 됩니다.

 

앞서 도교는 불로불사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만 남송 시대에 발현한 전진교는 불로불사나 부적술 같은 주술적인 개념보다 수양과 양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파이기도 합니다. 생소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무협지를 좋아하는 분 중, 김용의 사조삼부곡을 애독하신 분들이라면 익숙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지금부터 전진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무협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이야기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소설 속에선 천하오절의 으뜸으로 꼽히는 왕중양은 실제로 전진파를 창립한 후 그 제자들은 전진칠자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실제 역사에서 장춘자 구처기는 징기스칸을 만나기도 했답니다. 이후 전진파는 여러 계파로 흩어지게 되는데 그 중 전진칠자의 한명인 광녕자 학대통은 화산파의 개조가 됩니다. 이후 전진교에서 수련한 장삼풍이 그 유명한 Wu-Tang Clan 무당파를 세우게 됩니다. 무협지를 너무 많이 본 것 아니냐고 혼란스러워하실 분들께 다시금 말씀드리자면, 무협소설이 역사적 사실들을 그럴싸하게 채용하여 각색한 것이라고 거듭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장삼풍을 무당의 개조라느니 형의권이나 태극권의 창시자라고 하는 것은 다 후대의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랍니다. 물론 장삼풍은 실존인물입니다만 마치 무당권법이 소림권법이니 하는 것들은 현대의 생겨난 쪽에 가까우니까요. 내러티브들의 설정을 즐기기 위해 천하무림출소림이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겠지만 정말 정색하고 달마대사가 가랑잎 타고 나타나 중원무학이 출발했다고 믿으면 심히 곤란해질 수 있다고나 할까요?

 

그런 연유로 도교를 수련하던 도사들이 청강북두진(?)을 펼치고 구음진경을 연마한 일은 전혀 없을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이전부터 이어진 중국의 많은 도사물, 무협물, 협객물들의 설정들이 현실의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 오다 우리가 잘 아는 지금의 무협지의 형태를 이루기도 합니다. 특히 양판소 형식으로 흘러가는 요즘의 무협지가 아닌 50~70년대 작가인 김용과 고룡의 소설을 보면 도교적 색채와 교리가 제법 잘 보이기도 한답니다. 그런 연유로 오늘날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도교의 잔영은 오래된 무협지가 아닐까 합니다. 필자만 해도 무량수불, 우하등선, 반박귀진, 노화순청 같은 도교 용어들은 다 거기서 배웠거든요.

 

지금까지 살며시 도교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그래서 ‘도교가 뭔데?’라는 질문으로 다시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줄 요약해드리면 도교의 극의는 도를 체득하고 통달하여 영원불멸한 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할까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도덕 시간에 배운 견물치지와 상선약수의 개념이 나오기도 한답니다. 당장 도교를 믿는 많은 이들은 예부터 지금까지 불로장생보다는 보다 지금의 복을 빌어 왔습니다. 너무 어렵다고요? 어차피 교리를 깨우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니깐 괜찮습니다. 알 듯 말 듯 알쏭달쏭한 신비함을 주는 것이 또 도교가 가진 매력이지 않을까 합니다.

 

앞서 말한 전진교와 정일교 또한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대만에 가면 심심찮게 그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만은 문화대혁명을 겪지 않아 도교 문화가 잘 남아있는데 혹시 관심 있는 분들은 역병이 끝나고 대만을 가본다면 길거리를 유심히 지켜보세요. 생각보다 곳곳에 숨어있는 도관과 지전을 태우는 이들, 그리고 천상성모에게 복을 비는 부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도덕경에서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고 했답니다. 그러니 ‘도교가 뭔데?!’라는 질문이 궁금하시면 마음속으로 ‘그래, 도교!’하시면 되지 않을까나요? 지금까지 주술이 빛나는 밤 도교 편에서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이슬람교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 보아요.

 

 

Written by 박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