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 접근한 도덕의 진화적 기원 –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웅진지식하우스, 2014.

1. 저자에 대하여

 

저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로이 보마이스터(Roy Baumeister), 폴 블룸(Paul Bloom) 등과 함께 심리학 분야의 대중적 저술가로 최근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인물이다. 저자는 한국 언론에서 전폭적인 관심을 받은 적은 없지만, 몇 편의 저서는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바른 마음 발간 이전의 대중적 주저라 할 수 있는 행복의 가설(The Happiness Hypothesis, 2006)은 2010년에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그 이전에는, 비록 높은 매상은 거두지 못했으나 도덕적 판단에 관한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The Emotional Dog and its Rational Tail: A Social Intuitionist Approach to Moral Judgment, 2001)이 2003년에 번역 출간되기도 하였다. 바른 마음의 원저는 2012년에 출간된 뒤 뉴욕 타임스 논픽션 베스트셀러 6위에 올랐고, 한국어판이 출간된 뒤에는 저자 가 몸소 한국에 방문해 「EBS 인문학 특강」에 출연하여 한국의 시청자들에게서 긍정적인 반향을 얻기도 했다.

바른 마음은 말하자면 저자의 2001년 저서 도덕적 판단에 관한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의 전면적 개정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이었던 2001년 저서에 비하면 이 책은 70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대저이다. 이 많은 페이지의 대부분은 논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저자의 연구 성과를 비전공 독자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쓰고 예를 드는 데에 할애되고 있다.

 

2. 도덕의 원천과 그 성격

 

이 책의 요지는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다. 첫째, 도덕적 판단은 선천적이고 직관적인 것이다. 둘째, 의무론이나 공리주의 윤리설은 ‘피해를 입는 사람을 최소화하라’ 등의 한두 가지 격률을 금과옥조로 삼지만, 실제 인류 대다수의 도덕적 직관은 이것보다 많은 수(5~6가지)의 격률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셋째, 인간은 오랫동안 무리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그 심성 속에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기심, selfish)뿐만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집단심, groupish)을 발달시켰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자아)를 버리고 자신보다 더 큰 어떤 것을 성취하려 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도덕적 판단이 선천적이라는 말은 후천적(학습적)이지 않다는 말이고, 직관적이라는 말은 추론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즉,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인간의 다른 인지/감각기관의 작용과 마찬가지로, 직관적/즉물적/즉자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편 윤리학자들이나 발달심리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중시해 온 의식적 도덕적 추론(‘이 일이 옳은가?’에 대한 내적 성찰)은 이미 일어난 도덕적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뇌가 사후적 해석을 가하는 것일 뿐이다.

인류의 모든 문화의 근저에는, 문화 특정적인 복잡한 도덕률의 근간이 되는 여섯 가지 격률이 존재하는데, 이를 각각 ‘배려’, ‘공평성’, ‘충성심’, ‘권위’, ‘고귀함’, ‘자유’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이러한 격률이 인간 심성 근저에 자리잡은 것은 인류가 무리생활을 하면서 협동을 촉진하고 위험을 피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진화시킨 결과로 생각된다.

인간의 이집단심은 ‘자신보다 더 큰 것’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발달하여, 종교에 귀의하거나 정치에 투신하는 방향으로 현현하기도 한다.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몇몇 자연과학자들은 종교 활동을 초자연적인 대상에 대한 귀의로 해석하여 일종의 망상병으로 취급하고 싶어하지만, 종교 활동은 초자연적인 대상에 대한 귀의보다는 공동체 활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 기인한 바가 더 크다. 한편 인간은 여섯 가지 도덕의 근간 중 어느 것이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강하고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약한가에 따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데, 이에 따라 대규모의 정치 활동에 투신하기도 한다.

 

3. 진화와 생존과 도덕

 

이 책에서 전개되는 논의의 주춧돌을 이루는 명제는 도덕 감정은 위험을 피하고 집단의 생존을 도모하고자 하는 진화적 전략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전혀 무관해 보이는 ‘위생 관념’과 ‘도덕 감정’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그 대표적인 증례가 될 것이다. 청결과 도덕은 그 자체로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도덕적 직관의 세계에서는 아주 가깝게 상호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악취가 나는 장소에서 사람에게 어떤 사안의 도덕적 평가를 요구하는 경우 평가 결과가 더 박해진다는 실험이 있다. 또, 개수대에서 손을 씻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죄책감이 덜어진다는 2006년의 종첸보(Zhong C. B.)의 유명한 실험도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증례를 더해 보자면, 문화권을 막론하고 일상 언어에 ‘악덕=더러움’이라는 개념적 은유가 깊이 파고들어 있다는 점을 거론하고 싶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악행이나 부덕에 대하여 흔히 ‘손을 더럽혔다’는 은유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은유가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도덕 감정과 위생 관념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을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예라고 생각된다.

서구의 윤리 이론은 도덕적 격률(가령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사회적 규약(가령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멈춰야 한다’), 그리고 그 외의 지켜야 할 것들(가령 ‘외출했다 돌아오면 손을 씻어야 한다’)의 사회적 위상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방향으로 발달해 왔다. 그러나 인류학의 연구 성과를 검토해 보면 규범들의 위상을 이렇게 엄격하게 구별하는 문화는 서구 외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으며, 대체로는 도덕적 격률과 사회적 규약의 구별이 없다고 한다.

 

4. 정치적 쟁점과 도덕적 직관

 

미주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민주당에게 ‘정치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유행이 도는지 모르겠으나, 이 책에서도 민주당이 왜 지지율 싸움에서 공화당보다 불리한가의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내놓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왜 공화당보다 지지율이 불리한가?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섯 가지 도덕적 근간(덕목)은 사람마다 조금씩 영향받는 비율이 다르다. 그런데 공화당은 여섯 가지 도덕적 근간에 골고루 호소하지만, 민주당은 ‘배려’, ‘자유’, ‘공평성’이라는 세 가지 도덕적 근간에만 호소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은 ‘충성심’, ‘권위’, ‘고귀함’이라는 덕목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유권자에게 어필할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공화당은 비교적 여섯 가지 덕목에 고르게 어필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어서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다는 것이다. 흔히 노동 계급이 ‘계급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계급배반적 투표를 하는 그들도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과 정책을 내보이는 정당에 투표하고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러나 정치 지형에 대한 분석은 실제 정치활동에 적용해 보아야 비로소 검증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민주당의 지지율이 공화당보다 높은 현재(2015년 갤럽 조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다다르면, 보수주의자에 대한 ‘리버럴’ 세력의 한계를 매섭게 비판한 이 책의 논조가 궁색해져 버린다. 이 책의 분석이 설명력이 있다고 하려는 과연 이 분석에 어느 정도의 정치 지형적 변수가 감안되는 것인가가 여러 모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미국 민주당은 편의상 ‘진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유럽 지역의 ‘진보’에 비해서는 훨씬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므로, 이 책의 정치 분석을 유럽이나 다른 지역의 정치 현실에 대입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분석과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5. 맺으며

 

현실의 산적한 도덕적 문제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당대의 도덕 관념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나아가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도덕을 전해주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까지, 도덕적 판단의 문제는 사회의 여러 영역과 이어져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도덕적 직관주의’라고 하는 일반 독자에게는 대담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학설을, 다양한 실험 소개와 인용, 예시로 알기 쉽게 설명해내고 있다. 간혹 정교한 논증이 필요한 지점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하거나, 어떤 분석이 정말 실증적인 자료에 근거한 것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부분들을 모두 포함해서, 논쟁적인 주제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음미해볼 기회를 준다는 데에 이 책의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에 번역되어 나온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함께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 같다.

Written by 이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