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리메이크 영화’라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지난번 <크루엘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리메이크란 자고로 이렇게 해야 하는 거란다’라는 다소 도전적인 부제를 내건 바 있다. 그리고 후반부엔 이런 말을 썼다. 과거의 콘텐츠를 리메이크하는 작품들이 잦아진 요즈음, 어떤 것이 좋은 리메이크이며 또 어떤 것이 좋은 ‘다시-쓰기’인지에 대해서 꾸준히 생각하고 있다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우연찮게 <크루엘라>와 <바람의 검심>, 그리고 <리틀 포레스트>(한국판)을 연달아 보게 되면서였다. 별 생각 없이 이 세 영화들을 다 보았는데, 문득 떠올려보니 과거의 것을 리메이크한 것들이 아닌가. <크루엘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을, <바람의 검심>은 일본 소년만화 <바람의 검심>을, <리틀 포레스트>는 무려 원작 만화 <리틀 포레스트>를 영화화하여 2014년~2015년에 개봉했던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2018년에 다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세 편의 영화가 모두 영화나 소설이 아닌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이 원고는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서브컬쳐물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특이하다.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작화로 우리에게 말한다. 이 내용들은 명백한 허구라고. 그러면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서 그것이 품고 있는 세계를, 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우리는 그것이 2차원 세계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이윽고 푹 빠져버린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영화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도 안 되고 그와 동시에 지나치게 허무맹랑해서도 안 된다. 현실과 허구 사이에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매체가 실사 영상물인 셈이다.

게다가 인기가 많은 작품일 경우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따른다. 어떤 서브컬쳐물의 실사화 소식이 들려오면 대다수의 팬들은 해당 영상물이 원작을 지나치게 빼닮기를 바란다. 소설은 그나마 서로 상상하는 바가 다를 수 있으므로 괜찮지만, 이미 한 차례 영상화가 이루어진 작품들에게 그 기준은 엄격하게 적용된다. (해당 사례를 찾기 위해서는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당장 디즈니 실사영화 시리즈 중 <인어공주> 캐스팅과 관련하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무어라고 떠들어대는지를 보면 아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원작을 그대로 실재화한 영상물만이 좋은 리메이크작인가? 당연히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 앞서 언급했던 세 영화 중 이미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크루엘라>를 제외하고 <바람의 검심>과 <리틀 포레스트> 한국판을 두고서 이야기할 것이다.

 

먼저 2012년 작품 <바람의 검심>부터 이야기해봅시다.

원작 <바람의 검심>은 물론 전부 독파했지만 본 지 너무 오래된 데다가 지금은 작가의 범죄이력으로(미성년자 음란물 소지) 다시 보고 싶지도 않은…… 그리고 꽤 길다! 총 28권! 하지만 영화 <바람의 검심>은 곁가지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가감 없이 전부 쳐내버리고, 액션 신에 큰 비중을 두었다. 주인공인 ‘히무라 켄신’을 담당한 배우는 무려 <가면라이더 덴오> 주인공이었던 사토 타케루니 말 다했지. <가면라이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게인’은 <가면라이더 파이즈>에서 괴인으로 등장했던 아야노 고!

 

‘히무라 켄신’을 담당했던 사토 타케루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메이킹 필름. 이 영상을 통해 액션 합을 맞추는 장면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 영화는 원작 만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메이지 유신 시대 당시의 역사적 고증을 살렸다.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전부 꼬질꼬질하게 나오는데(…) 이런 부분이 또 묘하게 시대극 같은 느낌도 준다. 카가와 테루유키나 에구치 요스케 같은 중견배우들을 대거 기용하여 연기력 또한 전혀 아쉽지 않다.

 

 

흔히 일본 만화를 실사화했다, 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건 어색하고 기묘한 CG와 와이어 액션, 그리고 지나친 팬심 장사를 위한 아이돌 캐스팅과 가발을 쓴 어설픈 코스프레 쇼 같은 모습들일 터다. 이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진격의 거인, 강철의 연금술사 예고편을 보자…

 

 

 

하지만 <바람의 검심> 실사 시리즈는 그런 것을 전부 걷어내고 다른 감각으로 접근했다. 즉 원작 만화는 참고하되, 말 그대로 참고만 하고 스토리나 인물 설정 등을 영화 문법에 맞게 전부 새로 갈아치운 것이다. 지나치게 만화적 과장이 들어간 부분은 적당히 현실성 있게 손 보고, 조금이라도 늘어지는 이야기 같으면 잘라내고, 대신 기본적인 액션신이나 연기 퀄리티는 탄탄하게 매만졌다. 때문에 <바람의 검심>은 굉장히 볼 만한 영화가 되었다. 역시 만화를 실사화하려면 이 정도 정성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가 하면 2018년 작품 <리틀 포레스트>는 조금 다르다. 나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원작 만화도, 그 만화를 기반으로 한 일본 영화도 보았다. 기본적으로 원작 자체가 이미지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어 영상화가 크게 어렵지는 않은 작품이다. 때문에 2014~2015년에 만들어진 <리틀 포레스트>는 만화 속 장면 장면들을 있는 그대로 가져왔다. 빼다 박았다고나 할까? 상상하던 그대로라고나 할까? 모든 미장센이 만화의 컷 구성과 완벽하게 똑같다.

이런 장면들은 그냥 똑같다.

 

하지만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그렇지 않았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삼았지만 이 작품 내에 등장하는 모든 음식과 상황들은 전부 로컬라이징을 거쳤다. 원작 만화에서 주인공 ‘이치코’는 자신이 시골로 내려온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저 ‘도망쳤다’라고만 표현할 뿐. 그러나 한국판 주인공 ‘재하(김태리 분)’는 그렇지 않다. ‘재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시 준비를 하던 공시생이었다는 설정인데, 이게 너무나도 한국의 현실과 잘 들어맞아서 좋았다. 또 원작에서는 주인공 ‘이치코’가 길냥이 한 마리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한국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시골 잡종견으로 바꾼 것 또한 세심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시골의 동물, 이라고 하면 ‘똥개’라 불리는 잡종견을 많이 떠올리기에.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삼았지만 너무나 한국적인 영화였다.

 

역시 한국의 여름에는 콩국수

역시 한국인이라면 비 오는 날에는 전을 부쳐서 막걸리와 함께 흡입

그리고 생각했다. 매체와 시대의 차이를 무시한 채 무조건 있는 그대로의 장면만을 영상으로 똑같이 옮기는 것은 절대 ‘좋은 리메이크’가 아니라고 말이다. 예전 콘텐츠를, 혹은 다른 형태의 콘텐츠를 굳이 현대에 와서 리메이크해야 한다면 어떤 부분을 버리고 어떤 부분을 살릴 것인지 취사선택을 잘, 그리고 과감하게 해야 한다. 또한 해당 작품을 꼼꼼하게 분석한 뒤 시대와 매체에 맞는 가치나 의의를 새로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현대의 관객들이 당연히 던질 수 있는 질문, ‘우리가 왜 옛날 것을―혹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때깔 좋게 리메이크한 것을 돈 주고 봐야 하나’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내보일 수 있을 것이다.

 

어렵지요. 물론 어렵다. 그렇기에 좋은 리메이크 작품이 좀처럼 나오기 힘든 것이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검심>이나 <리틀 포레스트>, 그리고 <크루엘라> 같은 영화들이 꾸준히 등장하기에 저는 또 새로운 리메이크 영화에 기대를 걸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디즈니의 <인어공주>라든가, 넷플릭스에서 존 조 주연으로 제작하고 있는 <카우보이 비밥> 실사판이라든가 그런 것들에 말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카우보이 비밥> 실사판에 칸노 요코의 참전(!)을 알린 영상

 

*P.S: 이런 의미에서 저는 <핑거스미스>에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아가씨>도 매우 좋아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세라 워터스가 <아가씨>를 두고서 정말 좋은 작품이지만 이것은 <핑거스미스> 영화판은 아니라고 선을 그은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지요. 박찬욱이 <핑거스미스>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낸 ‘수’와 ‘모드’의 2차 창작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

 

 

Written by 박복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