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딸은 엄마를 죽이면서 자란다 -리메이크란 자고로 이렇게 해야 하는 거란다

*이 글은 영화 <크루엘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영화 <크루엘라>를 보았다. <크루엘라>는 디즈니의 빌런을 중심으로 새롭게 리메이크하는 스핀오프 프리퀄 실사 영화 시리즈 중 하나로, 잘 모르겠는 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안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으로 분했던 <말레피센트>와 같은 경우라고 생각하심 됩니다.

 

나는 이 영화를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크루엘라’라는 캐릭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배우 엠마 스톤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온 작품은 하나같이 전부 좋았다. 거기다 <칠드런 액트>에서 보고 반한 엠마 톰슨이 등장하여 대립한다니! 이 강력한 엠마 vs 엠마 구도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가! 두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크루엘라>는 2021년에 꼭 봐야 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처음 엠마 스톤을 알게 된 영화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었지.  완벽한 그웬 스테이시라고 생각했다.

엠마 톰슨 재판장님… 저 죽어요

 

사실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조금 있긴 했다. 101마리의 달마시안 강아지 가죽을 벗겨서 코트를 만들겠다는 악역을 대체 어떻게 해야 좋게 포장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디즈니의 시나리오 작가들(다나 폭스·토니 맥나마라·엘린 브로쉬 맥켄나·켈리 마르셀·스티브 지시스)은 해냅니다. 진심으로 입이 떡 벌어졌고, 극장을 나오면서 집에 들어갈 때까지 감탄 또 감탄했다. 이 팀들은 천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원작 <101마리 달마시안>에서는 저급 악당이었던 ‘크루엘라’를 이렇게나 매력적인 천재로 만들어놓을 줄이야!

 

원작이라 할 수 있는 <101마리 달마시안>의 요소들을 깨알같이 살려서 집어넣었다. 일단 강아지 가죽에 탐을 낸다는 설정은 2020년대에 맞게 사라졌다. 대신 ‘달마시안과 대립한다’와 ‘코트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요소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크루엘라’와 대립각을 세우는 ‘남작 부인’과의 사건이 있어서 달마시안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었다. 또한 코트에 집착하던 모습은 ‘크루엘라’가 패션 업계 종사자라는 설정을 만들어 설득력 있게 넣어두었고.

 

 

그리고 ‘크루엘라’가 부리던 두 졸개, ‘재스퍼’와 ‘호라스’는 ‘재스퍼(조엘 프라이 분)’와 ‘호레이쇼(폴 월터 하우저 분)’라는 동등한 관계의 동료로 다시 태어나 나름의 캐릭터성과 특징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에스텔라’란 이름을 갖고 있을 적의 ‘크루엘라’와 가족 같은 존재로 나오는데, ‘가족’을 중요시하는 디즈니 영화의 특성상 이들과의 갈등을 빚고 화해를 하는 과정 또한 전체 서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마지막으로 ‘크루엘라’의 조력자로 나오는 기자 ‘아니타(커비 하웰-밥티스트 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니타’는 영화 후반부에서 ‘크루엘라’로부터 달마시안 강아지 한 마리를 받는데, ‘크루엘라’가 보낸 편지에는 이 강아지의 이름이 ‘퍼디타’라고 써져 있다. 그 전에 ‘남작 부인’의 어리버리 변호사였던 로저 또한 달마시안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받는데, 그 강아지의 이름은 ‘퐁고’라고 한다. ‘퐁고’와 ‘퍼디타’, 원작 <101마리 달마시안>을 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하게 여길 바로 그 이름! 그리고 로저는 피아노를 치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노래를 부른다.

 

크루엘라 드 빌크루엘라 드 빌-”

 

우으으, 분명 이걸로 끝이 아니겠지만 내가 보면서 찾아낸 것만 해도 이 정도다! 그리고 ‘크루엘라’가 운전을 거칠게 하는 것마저 구현해낸 것을 보고 소름이 쭉 끼쳤다. 연신 대단하단 말 말고는 할 것이 없다. 하지만! 리메이크한 시나리오의 대단함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얘기해볼까 한다. 사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제목에 다 쓰여 있다. ‘모든 딸은 엄마를 죽이면서 자란다.’

 

다소 표현이 거칠지만 누군가의 자식으로 자라온 사람들은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것이다. 모든 자식들은 부모를 죽임으로서 그들을 계승한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자라서 부모가 되면 똑같은 일을 겪게 된다. 이것은 중단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하여 가족이라는 단위를 만든 이래로 계속되어 왔던 일이니.

 

디즈니의 경우,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붓딸을 질투하거나 구박하는 계모가 악당으로 나오던 과거의 작품들을 벗어나 새로운 엄마-딸 서사를 만드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2011년에 개봉했던 <라푼젤>의 경우, 친부모에게서 ‘라푼젤’을 빼앗아 온 마녀이자 길러준 엄마인 ‘고델’은 ‘라푼젤’을 영원히 가두기 위해서 쉴 새 없이 가스라이팅을 한다.

 

그러한 ‘고델’의 모습이 아주 잘 나타나 있는 노래 ‘엄마는 모두 알아’

 

그리고 마침내 ‘라푼젤’은 머리카락을 자름으로서 ‘고델’을 죽이고, 친부모가 다스리고 있는 왕국을 계승하게 된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2014년작 <말레피센트>는 그와 반대로 길러준 엄마 ‘말레피센트’가 양녀 ‘오로라(엘 패닝 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둘이 행복한 유사가족 체제를 만들게 된다. (제가 <말레피센트 2>는 보지 않아서 무어라고 더 언급은 못하겠네요. 죄송.)

 

그렇다면 <크루엘라>는? ‘에스텔라’ 혹은 ‘크루엘라’는 사실 ‘남작 부인’의 친딸이었다. 때문에 ‘남작 부인’과 마찬가지로 의상 디자인에 특출 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의 능력치는 어머니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그는 복수를 위해 ‘남작 부인’이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를 포함한 모든 것을 모조리 때려부수고 망가뜨리는 한편 자신의 브랜드를 완벽하게 성공시킨다. 그런 의미로 <크루엘라>는 <라푼젤>의 진화판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것이 ‘크루엘라’로 대표되는 80년대 펑크 정신의 핵심이기도 했다. 반체제. 고루한 구식 문화에 저항하고 마침내 그것을 타파하는 것. 영화 내내 펑크 음악이 흘러나오고, 펑크 룩 패션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 옷이 등장하며, ‘크루엘라’의 마지막 런웨이 또한 펑크밴드의 공연처럼 구성되어 있는 것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여하튼 <크루엘라>는 ‘모든 딸은 엄마를 죽이면서 자란다’는 말을 높은 완성도로 구현해낸 최고의 리메이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원작에서 따온 부분들은 새롭게 어레인지해서 넣으면서 가볍지 않은 메시지도 묵직하게 던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렴, 리메이크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고말고!

 

과거의 콘텐츠를 리메이크하는 작품들이 잦아진 요새 들어 생각하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이 좋은 리메이크일까? 또 어떤 것이 좋은 ‘다시-쓰기’일까? 꾸준히 생각하고 있는 주제이니, 아마 다음 리뷰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다시 만날 때까지 여러분 안녕.

 

 

 

Written by 박복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