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그 땅에는 ‘자유’가 있나

*본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넷플릭스를 헤엄치던 중이었다. 하얀 머리의 귀여운 아동 그리고 ‘약속의 네버랜드’라는 제목. 순수한 동심을 되찾아줄 것만 같은 표지였다. 마우스를 움직여 이미지 위에 가져다 대자, 애니메이션의 첫 도입부가 나왔다. 아이들이 어딘가로 떠나자고 다짐하고 탈출하는 분위기였다. 흔한 아동 모험물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일, 영상 소개에 나눠진 분류는 ‘다크’, ‘심리’. 아니 애들이 여행을 떠나는데 다크해봤자 얼마나 다크하고 심리전이 펼쳐져봤자 얼마나 대단할까라고 생각했다. 내 모든 생각은 아동혐오였고, 나이브했다.

 

약속의 네버랜드는 1화부터 충격적이었다. 먼 미래에 인류가 괴생명체에게 지배를 당하고, 사람이 먹이가 되고.. 이런 류의 전개는 간혹 SF류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상이 아동인 경우는 없었다. 아마도 내가 작품을 그만큼 협소하게 봐왔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1화를 감상하자마자 든 생각은 ‘이 애니메이션은 본격 비건 입문 애니메이션이다’는 것이었다. 괴생명체에게 사람이 좀 먹히기로서니 이야기가 비건까지 나아간다고? 궁금하시다면 꼭, 약속의 네버랜드를 보시기를 권한다. 고작 한 시즌짜리 애니메이션에 공장식 축산제도와 생명과 자유를 향한 갈망, 모든 것이 들어있다.

 

작품의 대략적인 세계관을 설명하자면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괴생명체가 지배하는 성에 ‘플랜트’라고 나누어진 구역 안 ‘하우스’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것이다. 괴물은 똑똑한 아동의 뇌를 주식으로 삼으며, 그중 가장 별미가 12세 이전 IQ가 높은 아이의 뇌다. 주인공이 속한 하우스는 이런 양질의 뇌를 공급하는 곳이고, 그 안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그저 본인들이 모종의 이유로 부모와 떨어진 상황이고, ‘마마’라고 불리는 감시자(성인 인간 여성)의 양육 하에 입양 갈 때까지 하우스에 머무른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현실을 깨닫고 자기 주도로 인간공장을 탈출할 작전을 세우는 과정 속에서 성인과 아동의 촘촘한 대립, ‘마마’가 ‘마마’가 되기까지 당했던 여성으로서의 착취와 자기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행하는 아동착취들의 향연. 이 작품 후반부에 잠깐 소개되는 ‘마마’의 이야기는 공장식축산제도 안에서 동물 여성이 착취되는 과정과 동일하며 이는 가부장제도 안에서 인간 여성을 착취하는 제도와도 맞닿아 있기에 비건 페미니즘으로까지 저변을 확대하여 해석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그저 흔하고 명랑한 아동의 탈출기가 아니라 세계관 안에서 지나치게 현실적인 애니메이션으로, 19금 딱지가 붙은 이유를 납득할 법한 작품이다. 평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을 통해 현재 사회의 축산업제도를 떠올릴 수 있다. ‘동물복지계란’이 정말 ‘동물복지’가 되려면 우리는 계란을 소비하지 않고 닭을 소비하지 않아야 한다. ‘복지’란 사회적 약자 역시도 주체로써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혜택과 안온한 환경이 주어져도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선택의 폭을 축소하며 생존의 위협을 내포한 환경은 결코 ‘복지’가 아닌 것이다. 이 명제 앞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아직 시즌 1만 나온 상태이고, 이제 막 탈출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시즌 2가 방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앞으로 아이들은 약속의 땅, 네버랜드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땅의 동물들 또한 약속의 땅 네버랜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Written by 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