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중심에서, Red

‘사과는 빨갛다.‘

이 명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너무 당연한 걸 물어봤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 ‘당연한’ 사실에 저는 의문을 던지면서 대표적 색상 빨강Red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빨강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르겠지만, 동적인 이미지라는 것에 모두가 동감할 것입니다. 빨강은 620~780mm 파장에 해당하는 색이고 인간이 확인할 수 있는 가시광선 중 제일 긴 장파장에 속하는 편인데, 어찌 보면 태생부터 역동적인 이 색상이,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건 당연하기도 합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로 알려진 아른하임Rudolf Amheim은 ‘미술과 시지각’에서 형태와 색상이 서로 별개의 현상임을 밝혔습니다. 그는 색이 정서적 경험을 낳지만, 형은 지적인 통제력과 어울린다고 주장했는데, 우리가 감정의 변화를 느낀다는 것은 색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을 밝히며 2색 이상의 조합이며 이 효과는 더 커진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서구사회의 근간인 그리스·로마 시기, 지성과 논리를 중요시한 그 시기에 색상 사용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이 이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참고로 이미지 표현에서 빨강은 사람에게 ‘자극적, 흥분, 따스함’의 영향을 주고, ‘충동성, 활동성, 자기 중심성’의 성격으로 나타납니다.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Newton은 분광실험으로 발견한 7가지 색을 7음계와 연관 지어 빨강을 ‘도’로 표현하였고, 카스텔Castel은 색채·음악과 관련성의 연구를 통해 ‘G’를 빨강으로 연계시켰다. 이러한 연구에서 일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예리한 음은 선명한 노랑, 빨강과 같이 순색에 가까운 밝고 선명한 색으로 표현된다는 점입니다.

아른하임과 다르게, 색채와 형태와의 추상적인 관련성에 주안점을 두어 연구를 진행한 여러 학자가 있었습니다. ‘색은 어떠한 형태를 연상시킨다.’라고 말한 파버 비렌Faber Birren과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은 빨강을 사각형으로 정의하며, 이 색상이 유목성(색의 주목성)이 강하고 단단하며 견고한 느낌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대해서Concerning the spirtual in Art’에서 빨강은 안정적이라 설명하며, 각도로는 90%, 평면형으로는 평면 사각형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색상을 정적이되 불안하지 않은 색으로 바라봤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베버와 베흐너Weber&Fechner도 또한 정사각형으로 중량감 및 안정감이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렇듯, 형태와 빨강을 연관 지어 연구한 이들은 유동성 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르게, 이것을 무게감 있고 듬직한 느낌으로 색을 정의한 것이 특징입니다.

 

색은 또한 맛과 연관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음식의 색은 빠르게 식욕을 자극하여 식욕 증감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데, 프랑스 색채연구가 모리스 데리베레Maurice Dericere는 빨강과 분홍이 단맛을 연상하는 것을 보아, 난색 계열의 색상이 식욕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색상과 향의 관계에서 Red Brown이 샤Musk향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향수 용기·포장디자인과 같이 가벼우면서 강한 향은 동적인 빨강·검정 사용을 지양하며, 섬세하고 에로틱한 향은 검정·하양·금색 등과 함께 난색 계열이 어울린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빨강은 또한 채도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계절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흔히 싱그럽고 부드러움을 나타내는 봄에서는, 빨강을 포함한 난색이 중심이라고 할 정도로 고명도·고채도 색상과 하양이 중점적으로 쓰입니다. 그에 반해 여름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과 왕성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강렬한 원색이 주로 사용되고, 단풍의 정점과 해 질 녘이 생각나는 가을은 어둡고 흐린 중명도·중채도가 주로 사용됩니다. 겨울에선 난색의 사용이 비교적 덜한 것 또한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런 속성들을 인지하며 색상의 다양하게 매치하면, 형용사로써 색들의 조화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모던Modern은 현대적인 감각과 기능적·합리적이며 단순하고 간결한 도시적 이미지로, 색상의 절제 속에서도 더욱 빛나기 위해 강렬한 빨강 원색이 강조 색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에스닉Ethnic은 주로 아랍·잉카·인도의 문양 이미지로 상징되고 고유의 염색·직물·자수 등으로 표현되며, dull·dark 톤의 빨강이 주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매니쉬Mannish는 남성취향의 패션감각으로 중성적 이미지며, 무게감 있는 중명도.

엘레강스Elegance는 우아한 느낌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gray·pale·light 등으로 표현됩니다.

 

다음과 같이, 오감에서 역동성과 차분함, 강렬함과 섬세함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빨강은 여러 공동체에서 다양한 사회 문화적 맥락으로 사용되어왔습니다.

구석기 시기에는, 산화철로부터 얻은 붉은색을 사용하여 소를 표현하는 데 사용됐는데,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로코코Rococo 시기에는 밝은 색조인 핑크가 이용되었고, 야수파의 강렬한 보색대비 사용에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모든 시기에 서구 사회에선 선호 색으로 인정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비단 유럽 사회만의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퍼져있는 현상이었습니다. 계층을 표시할 때 사용되었다는 점도 대표적입니다. 인도에서는 크샤트리아 색상으로 왕·귀족·통치계급의 색이었고 조선은 1품~정3품을 상징한 것이 그 예시이며, 사용계층이 지배계급과 멀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의도로 사용되는 빨강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갈등과 논란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를 상징하면 사별의 색으로 인식되었고, ‘붉은 군대’, ‘적백내전’ 등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 20세기 공산주의·좌파·혁명·노동자 등을 상징하면서 이데올로기 최전선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레드 콤플렉스’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이것이 한 시대를 휩쓸었던 색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관념에서 자유롭지 않던 한국에서 2002년 ‘붉은악마 열풍’이 일어난 것은 색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빨강은 쉽게 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색상이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색상 간의 우위 싸움에서 앞자리를 놓아준 적이 없는 빨강은, 과연 현시대에서 얼마나 큰 가치가 있을까요? 단순히 그 영광이 과거에만 머무르고 쇠퇴할 수밖에 없는 색상일까요? 단언컨대, 빨강은 미래에서 더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고대의 투박한 형태로 쓰인 빨강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가지게 되었고, 근대에서는 혁신과 변화의 상징으로 가장 선두에 있던 색입니다. 각각의 의미가 있는 색상들은 수없이 많지만, 역사성을 지니며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은 빨강 외에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많은 이들이 역사를 통해서 재창조해내고 그곳에서 또 다른 의의를 찾을 수 있듯,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새로운 모습의 빨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으로 말이죠.

 

여러분도 제가 지금까지 알려드린 내용을 발판 삼아, ‘나만의 Red· 개성 있는 Red’를 떠올려보는 것이 어떨까요? 발전 속에 답이 있듯, 변화하는 Red 속에서 아무도 모르던 길을 찾아, 새로운 관점을 선사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Written by 김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