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을 아는가?

신문을 조금만 보는 분들은 요즘 시끄러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번 3차 중국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었는데, 이와 관련해 지난 5월 24일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중국 관영 CC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중한은 우호적인 국가이며 홍콩 국가보안법에 대해 한국 측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것으로 믿는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정치적·지정학적인 이유를 무시하기 힘든 것도 있겠습니다만, 아마도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믿는 구석이 또 하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한국의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보안법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치를 떠는 분들도 있고 그게 뭐라며 어깨를 으쓱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장 60대가 넘는 부모 세대들은 이 법이 정확히 무슨 법인지는 몰라도 ‘이걸로 찍히면 끝이다’라는 인식은 정확히 가지고 계실 겁니다. 요즘 인터넷 등을 통해 스스로 빨갱이라고 자천하는 분들이 많아 보입니다만 이 법은 그야말로 국가 공인 빨갱이로 낙인찍는 법입니다. 사문화되어 가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희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제는 1925년 반체제 인사를 검속하기 위해 치안유지법을 만들어 악명을 떨쳤는데 이 법은 해방 후인 대한민국에서도 이어져 1948년 반국가 단체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앞서 말한 치안유지법을 모델로 하여 제정되었습니다. 이후 1961년 반공법이 제정되었다가 1980년에 폐지되고 그 또한 국가보안법에 통합됩니다. 나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어떤 분들은 반역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아쉽게도 이 법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가장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지금 한 자리씩 차지하는 분들이 이 법으로 고초를 많이 치르기도 했습니다. 또한 정치적 반대자뿐이 아니라 술에 취해 대통령을 욕한 사람까지 잡아 가두고 고문해대기 일쑤였기에 이를 ‘막걸리 보안법’이라며 비꼬기도 했습니다. 과거 노동운동사를 정리하다 보면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필화사건―장군님 만세 등의 문구―을 조작하고 국가보안법을 빌미로 체포·고문했다는 증언도 제법 들을 수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개인의 결사 표현의 자유와 정 치사상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인 이적 행위 규정을 비롯하여 고무 찬양죄, 이적 표현물 소지죄, 불고지죄―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사람도 처벌 대상이 되는 법률―등의 대표적인 독소 조항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무상 의료라는데’라는 말로 조사를 받거나(고무찬양에 해당), <조직신학론>이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아닌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는다면(이적 표현물에 해당) 어떻겠습니까? 이런 소련 개그에서나 나올 법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은 실제 국가보안법이 남용된 전설 같은 사례들입니다.

 

홍콩보안법은 국가 반란 목적을 지닌 자를 처벌한다는 핵심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외세의 홍콩개입 금지, 국가 분열 및 테러리즘 활동 처벌, 국가안보 교육 강화 등을 초안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 법안은 의사 표현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고, 투쟁의 단순가담자나 방조자도 처벌할 수 있으며, 외국과의 연계 혐의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는 등 거의 모든 홍콩 민중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입니다.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홍콩보안법을 비난하고 있지만, 국가보안법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지를 확신하는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에게 ‘우리는 좀 그런데’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먼저 국가보안법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Written by  노란머리 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