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누구를 위한 기념일인가

필자의 고향(?)은 유채꽃과 한라산으로 유명한 제주도다. 출생지는 전라남도 해남이지만, 두 살 때 이사 가서 법적 성인이 될 때까지 자라난 곳이니 그 곳이 고향이 맞을 거다, 아마. 사실 제주도에서 살다가 서울 와서 다른 점을 크게 느끼진 못했다. 꼽아보자면 집 근처에 산부인과가 있다, 지하철이라는 수단이 있다 이 두 가지 정도.

 

그 외에는 제주에서도 시골 축에 드는 본가와 이곳 서울살이의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시골이어도 은행 업무는 볼 수 있었고, 서울도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면 제주도의 시골과 크게 다른 느낌은 아니었기에. 게다가 서울 오자마자 직장-집-직장-집을 수개월째 수행하다 보니 서울의 문화생활과 같은 장점을 누릴 기회도 없었다.

 

그러던 중, 여실히 ‘아, 여긴 서울이구나’를 느꼈던 일화를 풀어보고자 한다.

 

때는 4월 3일. 본 회보를 보는 회원이라면 어렴풋이 알아챘을 것이다. 맞다. 제주 4.3항쟁을 기리는 날이다. 4.3항쟁은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미군이 국내에 주둔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제주도는 육지 여타 시군구보다 다양한 운동조직들이 조금 더 튼튼하게 자리 잡은 편이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섬인 탓에 기댈 자원이라고는 사람 하나뿐인지라, 여느 곳 못지않은 교육열이 한몫 했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당시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제주도 내 여기저기에서는 분단에 대한 비판과 통일에 대한 염원 어린 목소리가 조직되고 있었다. 이승만 정부가 남한 단독 정부 수립, 단독 선거를 실시하려 하자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제주도민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표현했고, 4.3항쟁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자세한 4.3항쟁의 일대기를 쓰자면 지면이 모자랄 듯하니, 자세한 것은 4.3평화공원의 잘 정리된 자료를 참고하길 바란다.

(링크 : https://www.jeju43peace.or.kr/kor/sub01_01_01.do)

 

사실 필자의 탄생지는 전라도고, 전라도민인 모부 아래서 자랐기에 4.3의 직접적인 피해와는 큰 연관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남 출신이던 모부는 간접적으로 5.18민주항쟁을 경험했기에, 필자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4.3과 5.18민주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필자의 부모님이 간접적으로나마 겪었던 5.18민주항쟁으로 인해 4.3에 대해 어렴풋이 연대의식이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자라면서는 다행히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매번 사회교과 관련 시간에는 4월달 즈음 하여 빠지지 않고 4.3 다큐를 시청하곤 했었다.

 

이렇듯 필자에게 4.3이란 교과과정 내 당연히 습득되는 지식이자 한 지역의 뼈아픈 역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죽어나간 슬픈 날이었다.

매년 4월 즈음 하여 제주에서는 4.3을 기리기 위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열린다. 글짓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포스터를 만들거나. 그리고 4월 3일이면 어김없이 추념식이 열리고, 이 때 각계 인사들이 너도나도 평화공원에 방문하곤 한다.

4.3 평화공원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야외 추념식을 하는 기념공간에는 성벽처럼 아주 크고 기다란 비석이 빙 둘러쳐져 있다. 그리고 그 비석 한가득 동네별로 희생자의 신상이 기록되어 있다. 지역과 이름 석 자가 명확하게 기입된 사람도 있지만, ‘무명’으로 기입된 자들도 수도 없다.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에는 4월에 향 냄새 지지 않는 집이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 통일을 주장했든 하지 않았든 상관 없이 도민의 약 70% 정도를 산으로 밀어넣고 사살하던 사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 희생자의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하기 힘들고 너무 오래되어 진위를 파악하는 일조차 이젠 거의 불가한 사태. 그러나 그 시작은 너무나도 당연한 항쟁의 의미를 지닌, 제대로 진상규명조차 되지 못했기에 사건인지, 사태인지, 항쟁인지 이름조차 제대로 지어지지 못한 4.3.

 

실제로 4.3평화공원 내부에 세워진 4.3비석에는 글씨가 써져 있지 않다. 4.3을 사건이라고 볼 것인가, 항쟁이라고 볼 것인가 조차 의견대립이 있어 이름을 아직 정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때문에 4.3을 항쟁이라고 부르는 자들도 있지만, 4.3의 공식 명칭은 ‘제주 4.3’이다.

 

제주 4.3은 명백히 국가의 폭압에 의해 죄없는 국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운동권 내부에서조차 4.3은 그저 어렴풋한 하나의 사건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다. 단적인 예로, 사람들이 시위할 때 모이면 광주 5.18민주항쟁을 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불러도 제주 4.3을 기리는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르진 않는다. 심지어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다.

 

이렇듯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사의 한 켠으로 조용히 지워져가는 4.3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역사다. 제주에서는 이 4.3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제주에서 그쳐서 될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폭압으로 국민이 죽어나간 사건인 만큼,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고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대적인 추모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주에서는 매년 4월 3일이면 시청 앞에 임시 분향소도 생기고, 평화공원으로 이동하기 위한 특별 버스도 여러 대 운행하고, 여기저기 근조 현수막도 걸려있고, 사이렌도 울리는데 서울의 4월 3일은 너무 평온했다.

이날이 얼마나 슬프고 가슴 찢어지는 날인지, 얼마나 억울한 날인지, 얼마나 부끄러운 날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필자는 혼자 ‘잠들지 않는 남도’를 들으며 추념하고, 슬퍼했다.

 

매년 6월 6일이면 전쟁 속 죽어간 국가의 영웅(..)들을 기린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누군가를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했던 자들은 기리면서 어쩔 수 없이 죽어야만 했던 자들은 왜 기리지 않는가.

나라가 기려야 하는 것은 ‘국가의 명예’를 드높여준 전쟁에 참여한 순국선열(..)뿐인 것일까? 국가의 폭압이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을 수많은 제주도민, 광주시민들도 국가의 명예를 드높인 국민이지 않을까?

현충일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군인을 기림으로써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조차도 국가의 영웅으로서 기리게 된다.

기념일은 기리고 생각하여 그날 하루만이라도 그 사건을 잊지 말자, 라고 나라에서 공인한 날이다. 매우 중요한 사건과 사람들을 잊지 말자는 날이다. 그런 날이라면 응당 5.18민주항쟁과 4.3 같은 무고한 죽음들이 기려지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전쟁 당시 죽어간 군인들의 삶만 무고하고 안타깝고 슬픈 게 아니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총을 든 군인에 의해 죽어간 사람이 있는데 왜 이들의 삶은 철저하게 외면당하는가. 왜 이들의 죽음은 철저하게 지워져야 하는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근간이 자유와 평화라면, 그 목적에 무엇보다 부합하는 두 사건이 바로 4.3과 5.18민주항쟁이다. 때문에 4.3과 5.18민주항쟁이야말로 국가에서 기리고 생각하며 그들의 정신을 계승해야 하는 중대한 날이다.

 

이 글을 빌어 한 사람이라도 더 4월과 5월의 자유와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여전히 ‘임을 위한 행진곡’과 ‘잠들지 않는 남도’를 두고 합창이냐 제창이냐를 따지고 있는 자치단체와 국가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한다.

노래를 뭐로 부를지 따질 시간에 속히 4월 3일과 5월 18일을 국가 기념일로 추대하고, 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을 하고, 4.3과 5.18민주항쟁에 대해 잊지 않으려는 제스쳐를 취하길 요구한다.

 

끝으로, ‘잠들지 않는 남도’의 가사를 첨부한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가슴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향기 더욱 진하리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Written by  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