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합리성 – 신천지와 코로나 사이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서쪽 땅에서는 사람들의 몸이 검게 변하면서 죽어갔다. 멀쩡한 사람이 벌벌 떨다가 눈물이 피가 되어 죽어가는 병이었다. 밤중에 죽어서 장례식을 치루면, 장례식에 참여한 친구와 죽음을 배웅해주던 신부 및 죽은 자를 나른 사람까지 모두 저세상으로 떠났던 강력한 병이었다. 중세는 이런 병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시대였다. 그나마 합리적으로 이 병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당시’에 상식적이었던 종교에 기대어 설명하는 것이었다. 페스트, 이른바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이 병은 악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 악마는 훗날 여러 사람에 의해서 세균에 의한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페스트에 대한 집단적 트라우마는 ‘좀비’와 ‘어둠의 마왕’으로 모습을 바꾸어 우리에게 기억된다. 이렇듯 여러 사람이 집단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면 이것은 공포가 된다. 이러한 공포를 사람들은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이해하려 했고, 그 이해는 당시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 아래 이루어졌다.

 

그때로부터 600년 후, 2020년에 새로운 역병이 창궐했다. 2월만 해도 ‘창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시덥지 않은 말이라고 한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창궐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한국인이 봐도 조금은 어이없게 퍼졌다. 정확히 대칭된 상태로 말이다. 알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을 종교의 힘을 빌려 설명하던 시대에서, 알고 있는 역병을 종교의 힘으로 퍼트린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다. (물론 필자의 사례가 부족하여 다른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길 바란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대구의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에 의해 영남지역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신천지에 의한 전염은 대한민국 방역체계를 단숨에 붕괴시켜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신천지 이전에 예상되었던 공포는 현실이 되는 순간으로 인식되었고, 공포는 비난이 되어 신천지 사람들에 대한 단죄를 시작했다. 실제로 신천지는 폐쇄적이고 기만적인 포교방식으로 문제화되었고, 이른바 기성종교라고 불리던 개신교와 가톨릭, 나아가 다른 신종교들의 신도들도 이른바 ‘추수’하여 문제가 되던 종교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불만과 현재의 공포가 결합된 이상 이 종교단체의 존망은 물론 약간은 신비 정책을 고수하고 있던 이 종교의 실상이 드러나 지역 곳곳에 포섭하고 있으며, 누군가 솔깃해할 콘텐츠를 생산하기까지 자연스럽게 종교에 ‘귀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던 정황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 종교의 실상이나 타 종교 간의 신도 뺏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종교는 ‘예수교’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와 전혀 무관하다. 이들의 기타 정치권과의 결탁 루머, 수감된 전직 대통령과의 스캔들, 국제적인 행사를 표방하는 대규모 국내행사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신천지는 한국 현대의 다른 얼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구원’해준다는 신천지의 교리와 이런 일이 구체화된 퍼포먼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살펴보지 않았던 신천지 이전의 ‘메시아’의 구조를 가진 종교들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훑어볼 필요가 있다.

 

1800년대 후반, 한반도가 아직 조선일 때 ‘강일순(1871~1909)’이라는 사람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면서 자신을 옥황상제 또는 미륵불의 화신(아바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직을 구성하였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지도행위를 ‘천지공사’라고 이름 붙이며,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주요 사상은 ‘이 세상에 있는 재앙과 원한을 풀어주면, 개벽의 때가 와서 살기 좋은 이상세계가 도래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종교적 움직임’ 이후 강일순의 제자들이 수많은 종교들로 갈라져 선도교, 보천교, 증산법종교, 증산교, 태극도, 대순진리회 등의 ‘증산 계통 종교’의 모태가 되었다(‘증산계통 종교’라고 불리는 이유는 강일순의 호가 ‘증산(甑山)’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살던 조선후기는 절대 호락호락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일 년에 농사를 지으면 반을 가져가며 땅 주인이 내야 할 세금까지 대신 납부하던 시기였고 ‘호열자’라고 하는 콜레라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여러 세금의 부족과 근본적인 계급의 생산문제, 나아가 열강들의 세력다툼 속에서 조선은 기본적으로 국가공동체의 일원들에게 그에 맞는 대접을 해주지 못했다. 이러한 시기에 강일순의 천지공사, 즉 남녀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어려운 시기에 일상을 버틸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이 당시 사람들에게 일정 정도 힘이 되는 믿음으로 작용했고 이 때문에 대중의 호응을 얻었을 것이다. 혼란의 시기에 ‘천지공사’ 즉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며,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의 형성은 당시의 공적인 윤리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글이 이른바 증산 계통 종교에 대한 어두운 면까지 다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계열에 대한 교리에 대해서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특수성이 주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현상이 이렇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역사적 사례를 제시한 것일 뿐이다.

 

여러 보도자료에 따르면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는 천부교, 장막성전, 통일교 등의 여러 메시아와 새로운 시대를 표방하는 종교들을 섭렵하며 종교적인 지식과 경험을 습득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를 넘어 현실세계를 이겨 낼 힘을 자랑하는 신종교들은 당시 강세를 띠면서도 친숙한 개신교의 모습과 닮아가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 신종교들은 성공적으로 자신들의 교세를 불렸다. 성경을 자신들의 교리에 맞춰서 상징적으로 해석하거나, 기독교의 의례 형식을 빌려 만든 자신들만의 의례를 통해 자신들의 교리에 대한 ‘믿음’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른바 1세대 한국형 신종교들은 당시 암암리에 공감을 형성하던 도교적 색채를 가지고 자신들의 개벽을 이야기했다. 이후 2세대의 형식은 제국주의 일본의 종교정책, 즉 ‘합리성’에 기반하여 식민지의 종교정책은 기성종교를 제외한 일제에 협력하지 않는 여러 종교를 탄압하던 식민지의 종교정책을 통해 이루어졌다. 때문에 ‘백백교’ 같은 일부 개인의 욕심으로 일단락된 종교적 신념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후 ‘신앙촌’이나 최근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여러 신종교들은 광복과 산업화 시대 이후 종교조직의 운영 논리를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마을 안에 공장을 만들고 그곳에 저임금으로 공장을 운영하면서 신도들의 노동력을 이용했다. 자본주의와 종교의 만남은 시대적이고 공적인 시대 인식과 패러다임은 보여주지 못한 채, 자신들의 교리를 통해서 자본을 확대하고 교주 자신과 일부 리더 집단들의 이익 중심의 정책들만 난무해버리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신종교들은 일부 비뚤어진 경제력에 기반한 정치세력과 연계하여 보다 스스로 ‘공식적인 종교’가 되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일상생활에 있어 아무런 희망이 되어주지 못하는 시기가 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일까? 이 시기를 벗어나 다른 시기가 도래하여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믿음의 힘’일 것이다. 신천지에 가담하거나 이른바 ‘세뇌’라고 표현되는 여러 방식으로 인해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도 현실이 힘들었을 수 있다. 그들이 가지는 최고의 가치는 현실의 탈출에 있지 않을까? 이들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적 구조는 이 종교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아닌가? 지금 현실은 조선 후기에 유교적 전통 안에서 미약하게나마 살아있던 도교적 색채를 가진 종교적 신념보다 더 후퇴한 것은 아닐까? 여성에 대한 시각, N번방 사건과 같은 남성들의 여성 신체의 대상화에 대한 문제, 성소수자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과 그에 대한 국가의 여러 가지 민망한 낯빛들은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 신천지와 전염병, 그리고 현대 한국을 엮어보면, 사실은 이만희가 영생한다는 교리보다 어쩌면 더 이상한 나라의 논의들이 상식적인 것처럼 얘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Written by 펠릭스 언더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