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논란, 사실은 이럴 겁니다!

  1. 들어가며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이하 ‘ASF’)이 국내에 처음 발생(‘19.09.16. 18시경, 파주 인근)한지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났다. ASF가 잠복과 확산을 반복하는 동안 인터넷에는 ‘사실’만큼 잘 못 된 정보 또한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듯하다. 이에 인터넷을 횡횡하는 각종 쟁점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지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1. ASF란 무엇인가?

ASF는 돼지에게만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이다. 이전에 국내에서 발생한 적이 없는 출혈성, 열성 돼지전염병이며 크게 <심급성형, 급성형, 아급성형, 만성형> 네 가지로 나뉜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발생한 유형은 ‘심급성형’과 ‘급성형’으로 폐사율이 최대 100%에 이르는 제1종 가축전염병이다. 각국 정부는 ASF가 발생한 즉시 ‘국제수역사무국(OIE, 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에 보고해야 하며, 해당 국가의 돼지 관련 교역은 즉시 중단된다. 경제적 피해도 문제지만 ASF는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일단 특정 개체가 감염될 경우 살릴 방법이 없고, 전염성 또한 매우 강하여 ‘살처분’하는 수밖에 없다.

ASF는 1921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최초로 발생한 아프리카지역의 풍토병이었다. 하지만 1957년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포르투갈로 유입된 이후, 1960년 스페인, 1964년 프랑스, 1967년 이탈리아, 1985년 벨기에를 거치며 유럽 전 지역으로 확산하였다. 이와 별도로 2007년 조지아 포티 항구에 들어온 선박에서 ASF에 감염된 음식물이 반출된 사건이 있었다. 해당 음식물이 인근 돼지 농장에 사료로 쓰이는 바람에 동유럽과 러시아에도 ASF가 퍼지게 되었다. 2018년 8월, 아시아 최초로 중국에서 ASF가 발생한 이후로 2019년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에 퍼졌고, 북한에 이어 올해 9월 우리나라에도 확산하고 말았다.

 

  1. ASF 확산은 최고 수준의 방역 조치를 취하라던 국무총리의 지시사항을 어긴 경기도와 도지사의 무능 때문?

지난 6월 3일 오전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ASF의 전파 속도와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지금 북한에서도 ASF가 매우 빠르게 남하하며 확산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지금부터라도 최고 수준의 방역태세를 가동하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하지만 3달 뒤 경기도 파주에서 ASF가 발생하자 인터넷을 중심으로 “총리의 지시사항을 어기고 예방을 게을리한 경기도와 도지사의 무능” 때문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특정 정치인들에 대한 호불호를 이 자리에서 가늠할 수는 없으니 ‘사실’에만 집중해 이 주장이 과연 타당한지 검증해 보도록 하겠다.

‘ASF 긴급행동지침’에 따르면 <ASF 발생 상황별 위기단계와 주요 조치사항>은 다음의 ‘표 1’과 같다.

표 . <ASF 발생 상황별 위기단계와 주요 조치사항>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위기단계는 <관심, 주의, 심각> 3단계이며, 지난 9월 17일 오전 6시 30분, ASF 확진 발표 직전까지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지역은 ‘주의’ 단계였다. ‘표 1’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심각’ 단계에 이르면 지금처럼 일시이동중지명령(Standstill)이 발령되고, ASF 발생 농가를 중심으로 최소 반경 500m, 최대 3Km까지 ‘살처분’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일부 인터넷 이용자들은 소위 ‘최고 단계’, 그러니까 지난 6월 3일 총리실 간부회의 이후에 ‘심각’으로 위기단계를 올리지 않은 것을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해당 회의에서 이낙연 총리는 “현재 10개 시군에 설정된 특별관리지역을 더 확대할 필요는 없는지 검토”하고, “접경지역 외에도 전국의 6천여 양돈농가에 대한 일제 점검하고, 방역 및 신고요령을 세밀하게 교육하고 홍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니까 이게 그날 국무총리가 구체적으로 지시한 ‘최고 단계’의 전부이다.

애당초 ASF 확진 판정도 없이 일개 광역지방단체에서 갑자기 위기단계를 임의로 격상시키고 이동 제한을 할 수 없다는 건, ‘사실’ 이전에 상식의 영역이지 않을까?

이쯤이면 눈치채신 분도 있으리라 믿지만, 양성 판정을 내리는 것도, 최초로 ASF 확진 발표를 하는 것도 전부 농림축산부의 소관이다. 따라서 일부 인터넷 사용자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광역지방단체에서 늑장 대처를 한다는 건 ‘사실’과 다른 이야기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1. ASF는 방목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ASF 확산 방지를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가축을 방목해야 한다?

ASF가 점차 확산하자 인터넷을 중심으로 환경단체나 동물보호단체, 또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한마음으로 ‘공장식 축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혹시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분들이 인터넷에 올린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구제역이나 조류 독감 사례 영상>에 실제로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더 이야기하기에 앞서 ‘공장식 축사’ 문제에 관한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많은 분이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굉장히 폭력적이며, 다분히 자본주의적이라는 데 동의하며, 쉽지 않겠지만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점진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ASF’에 한정해서 ‘방목’에 관한 생각이 조금 다르다는 걸 꼭 이야기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ASF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방목을 해서는 안 된다. 1960년 ASF가 최초 발생하여 1995년까지 35년 동안 전염병이 창궐했던 스페인의 경우도 야생멧돼지가 처음 병을 옮겼다. 이후 스페인은 방목 사육을 금지했으며 유럽 주요국에서도 예방을 위해 이런 방침을 받아들였다. 이 덕분에 체코나 벨기에 같은 유럽 국가들은 ASF가 창궐했음에도 오직 야생멧돼지들만 감염되었을 뿐 여전히 사육 돼지 중에는 아직 발생 사례가 없다.

실제로 지난 9월 17일 열린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련 국무총리주재 긴급회의’에서 농림축산부는 ASF 확산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중 하나는 방목을 금지하는 것”이라며, “(ASF 확진 판정이 난) 파주 농가 같은 경우는 임신 중기부터 말기까지 분만소로 들어가기 전에 약 2개월가량 정도 머무는 방목장이 있는 거로 파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지난 10월 2일, 파주 적성면에서 방역 작업 중이던 공무원들이 우연히 발견한 소규모 농가(돼지 18두가량 사육)에 11번째 ASF 확진 판정이 떨어졌다. 해당 농가는 발병 전까지 어떤 ASF 예방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고, 심지어 울타리도 치지 않은 상태였다. 현행 법률은 축산 농가가 50두 이상 가축을 기를 경우에만 관청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어 해당 농가처럼 등록하지 않은 곳은 정부에서도 파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역학 조사 결과, ASF에 걸린 야생멧돼지와 접촉하여 해당 농가에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게 확인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평소에 ‘공장식 축사’나 ‘방목 목축’에 관한 소신이 있을지라도 ASF가 발생했을 때는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하여 야생멧돼지 같은 외부 감염원이 접근할 수 없도록 반드시 울타리를 치고, ‘방목’을 피해야 한다.

 

  1. 야생멧돼지 사살을 가로막은 환경부, 진작 다 죽였어야 한다?

최근 곳곳에서 발견된 야생멧돼지 사체가 ASF 확진 판정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언론을 통해 환경부에서 야생멧돼지 사살에 반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터넷에서 공분을 사는 건 물론 모 환경단체에서 성명을 발표하여 환경부의 안일한 대응을 질책하고 나섰다.

지난 9월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련 국무총리주재 긴급회의’에서 농림축산부가 먼저 ‘야생멧돼지 개체 수 조절’에 관한 의견을 냈다. 이에 국방부가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야생멧돼지가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내려오는 걸 막겠다고 밝혔지만, 곧 환경부가 조금 다른 의견을 피력하고 나섰다.

환경부는 야생 멧돼지 포획과 관련하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적극적으로 사살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과도하게 포획하게 되면 멧돼지가 이동을 해서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며, “멧돼지 이동이 증가할 수 있는 사냥 방법을 최대한 지양하고, 잠복 사냥 같은 방식으로 개체 수를 줄여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하면, 언론과 여론에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것과 달리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개체 수 조절을 반대한 정부 부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아직 ASF 발생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다는 것이다.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거라 믿지만, “임진강 물줄기가 ASF에 오염되어서 그런 거다”라는 일부 인터넷 사용자의 주장과 달리 조사 결과, 물에서는 해당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현재 ASF에 감염된 야생멧돼지의 사체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야생멧돼지가 발병 원인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물론 감염이 확인된 지역의 야생멧돼지는 ‘예방적 살처분’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부 환경단체와 인터넷 사용자의 주장처럼 ‘전면적인 개체 수 조절’, 다시 말해 보이는 족족 죽이기 시작한다면 심각한 생태계 교란이 있으리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1. 외국 주요국과 비교하여 더 과도하게 살처분 지역을 설정하고, 너무 많은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앞서 ‘방목’과 ‘공장식 축사’에 관하여 이야기하며 의견을 밝힌 것처럼 ‘살처분’이라는 명칭과 이런 방법으로 처리해도 괜찮은지는 고민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관적인 생각은 차치하고 최근 일부 인터넷 사용자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과연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 구역 설정이 과도한지, ‘사실’만 건조하게 들여다보도록 하자.

우리나라의 경우,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가축전염병이 발생한 농가를 포함하여 주변 500m 안에 있는 대상 개체(이번 경우는 ‘돼지’)는 반드시 살처분하고 있다. 또한 실질적으로 최대 3km 반경 안에 있는 개체는 ‘예방적 살처분’ 대상이다. 한편 ‘표2. 주요 국가별 살처분 범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러시아(최대 5km)나 유럽연합 소속국가(최대 10km)의 ’예방적 살처분‘ 범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넓다.

 표 . 주요 국가별 살처분 범위(출처: 농림축산검역본부)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예방적 살처분’ 규정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돼지를 잡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ASF가 발생한 경기 북부 지역별로 ‘예방적 살처분’ 구역 밖에 있는 개체를 전부 수매하고 있다. 양성 판정을 받은 개체는 살처분하고, 음성 판정을 받은 개체는 전부 도축하여 전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방식으로 ASF 확산을 방지하고 있다.

외국 주요국 역시 ASF 확산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표3’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벨기에는 ‘자국형 방역대’를 유럽연합 규정(Protection & Surveillance Zones 1∼2, 발생지에서 3km까지 보호지역 / 10km까지는 관리지역)보다 훨씬 넓게(Zone 1∼4) 잡아 감염지역을 소개하고 예찰, 수렵하는 방식으로 ASF 확산을 방지하고 있다. 또 러시아의 경우 중앙정부의 승인 없이 지방정부의 재량에 따라 ASF 검사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했고, 아직 ASF가 발생한 적 없는 독일 같은 경우도 야생멧돼지나 전염병을 전파할 수 있는 다른 감염원을 철저히 차단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ASF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일단 개체가 감염되면 ‘살처분’ 밖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 따라서 다소 건조한 시선일지는 몰라도 최대한 인도적인 방식으로 살처분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처분 작업에 동원된 공무원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트라우마를 겪지는 않는지, 양돈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규명하는 건 몰라도 ‘개체 소개’를 통해 전염병 확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을 두고 “적절하지 않다”라고 지적하는 게 그다지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표 . 벨기에의 ‘자국형 방역대’ 규정 – 총 4개, 2개 Zone에 각 2개 구역 설정(출처: FASFC, Belgian Federal Agency for the Safety of the Food Chain)

 

  1. 마치며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낭설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지만 당장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몇 가지 주요 쟁점을 살펴보았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이따금 사람들은 정부의 대응과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일 때도 있다. 물론 신뢰를 잃은 건 정부의 책임이다. 행정당국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음모론을 전파하는 모습도 바람직한 시민의 자세는 아닌 듯 하다. 이따금 정부가 미덥지 못할 때가 있는 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증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속칭 ‘썰’을 푸는 것과 달리, 이미 검증이 되어 있는 객관적인 자료와 사실이 있음에도 자신과 주위 집단이 맹목적으로 믿는 바를 열렬히 설파하는 것은, 이미 ‘정치 참여’의 영역을 한참 비켜난 것이 아닐지 조심스레 우려를 표해본다.

끝으로 부디 하루속히 ASF 문제가 해결되어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들과 방역 업체 노동자들, 날마다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양돈농가 분들과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있는 돼지들까지, 모든 분이 한시름 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Written by  ID 야생 멧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