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죄로 기소된 피해자, 성폭력 통념에 기반한 수사가 만들어낸 비극을 파헤치다 :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T. 크리스천 밀러, 켄 암스트롱 지음)』 서평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면 꼭 뒤따르는 말이 있다. “성폭력 무고가 너무 많다”라는 말이다. 상업화된 성폭력 가해자 변호사 시장은 ‘억울하게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겠다’고 광고하며 노골적으로 편견을 부추긴다. 남초(‘남성 초과’의 줄임말로 남성 비율이 높다는 뜻) 사이트에서는 ‘성폭력 무고가 성폭력보다 심각한 문제’라고 아우성이다. 2018년 6월에는 ‘무고죄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합니다’라는 국민청원에 약 24만 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성폭력 무고, 즉 허위 신고를 하는 성폭력 피해자가 많다는 ‘꽃뱀’ 신화는 해외에도 널리 퍼져 있는가 보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는 미국에서 발생했던 실제 성폭력 사건을 두 언론 기자가 취재하여 공동집필한 르포르타주이다. 저자 T.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은 성폭력 무고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던 여성 ‘마리’의 이야기와, 연쇄 성폭력 사건의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수사공조를 펼치는 여성 형사 ‘스테이시 갤브레이스’와 ‘에드나 헨더샷’의 이야기를 대조적으로 소개한다. 챕터 중간 중간에는 연쇄 성폭력 사건의 범인이 왜곡된 성 인식을 키우고 성폭력을 계획, 실행하는 과정이 가해자의 관점으로 묘사된다. 이를 통해 저자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와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이 어떻게 성폭력 가해자를 만들어내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지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아직 10대인 마리는 어린 시절부터 위탁 가정에서 살다가 청소년을 지원하는 기관의 도움으로 갓 자립했다. 그녀는 새벽에 집에 침입한 괴한에게 강간당했다고 피해 당일 신고했다. 처음에는 경찰도 마리의 진술을 신뢰하고 수상한 흔적들을 수사했다. 그러다가 담당 형사는 ‘마리가 관심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듣는다. 남성 형사 두 명이 마리를 성폭력 무고 피의자로서 신문하고, 수사기법으로 배운 유도신문, 심리적 압박, 위협, 거짓말로 떠보기, 회유 등을 이용하여 마침내 마리의 자백을 받아낸다. 성폭력 무고사범으로 알려지게 된 마리는 지원 기관에서 쫓겨나 집을 잃고,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잃는 동시에 마리 자신도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한편 스테이시 갤브레이스와 에드나 헨더샷은 서로 관할 지역이 다른 여성 형사들이다. 이들은 피해자의 관점으로 성폭력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던 중,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로 정보를 공유한 끝에 동일인의 범행임을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공조 수사에 나선다. 그 밖에도 증거 수집 및 분석, 프로파일링 등에 전문성을 갖춘 여러 수사관들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돕는다. 사소한 증거도 놓치지 않고, 각 사건 기록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며, 마침내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은 마치 추리 소설처럼 흡입력 있고 전율을 일으킨다.

 

연쇄 성폭력 사건 범인의 카메라에서 마리의 피해 사진이 발견되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진실을 알게 된 마리 사건의 담당 형사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마리 사건을 제대로 수사해서 범인을 검거했다면 다른 연쇄 사건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이 밝혀진 지금도 온라인에는 마리를 성폭력 무고사범이라고 욕하는 왜곡된 정보가 범람하고 있다. 마리 사건의 담당 형사와 관할 경찰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책임을 회피하거나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책임자만 자르는 대신, 다시는 이런 잘못이 발생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노력을 한다. 경찰서의 관행과 문화를 바꾸고 형사들을 추가 교육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허위 신고죄로 기소하기 전에 반드시 고위 간부의 검토를 받도록 한다. 수사관들은 거짓말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입수하지 않은 이상 허위 신고라고 의심해서는 안 된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라는 제목은 피해자의 신고를 믿을 수 없다고 여기는 잘못된 인식과 통념을 드러낸다. 동시에 어떻게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 있느냐고 충격 받은 뉘앙스를 담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형사들이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철저한 공조 수사를 하거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개선하려는 모습이 ‘믿을 수 없는’ 딴 세상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와 같은 변화를 기대하고 싶다.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2017-2018년 성범죄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검찰이 처리한 성폭력 사건 관련 인원 71,740명 가운데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피의자는 556명으로 전체의 0.78%로 나타났다.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한 사건 중 84%가 불기소되고, 기소된 사건 가운데서도 15.5%가 무죄를 선고받아, 실제 유죄가 인정된 사건은 6.4%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성폭력 무고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이 퍼져 있는 대한민국에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가 출간되어 반갑다. 이 책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더 많이 읽히길 바란다.

 

Written by 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