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공원>, 공룡은 어떻게 화석에서 서스펜스가 되었나

*이 글은 영화 <쥬라기 공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영화는 <쥬라기 공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실 나도 의외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팬도 공룡 덕후도 아닌데 왜 이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았을까? 답은 딱 하나였다. ‘집에 비디오테이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이거 말입니다.

지금이야 생소하지만, 그때만 해도 집집마다 VCR는 필수품이었다. 주로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봤지만 맘에 드는 비디오테이프를 직접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로 좌판에서 노점상들이 파는 불법 복제 비디오였지만. 때론 비디오테이프를 빌렸다가 연체했는데, 그 가게가 망하는 바람에 느닷없이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집에 굴러 들어온 <쥬라기 공원>도 그랬다.

 

 

나는 <쥬라기 공원>을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1994년~1995년 즈음에 봤다. 12세 이용가라고 쓰여 있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나보다 3살 어린 남동생도 함께 봤다. 이 영화는 내게 충격이었다. 실제 공룡이 나와서도 아니고, 내가 처음으로 접한 잔인한 영상이어서도 아니다.(참고로 말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접한 잔인한 영화는 <프레데터 1>이다. 무려 TV에서 더빙으로 방영했다! 당시 한국사회가 권장 연령대를 얼마나 신경 쓰지 않았는지 이제 다들 알겠지.)

<쥬라기 공원>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서스펜스(suspense)였다. 그걸 20년이 넘게 지나서야 알았다. 서스펜스란 긴박하고 긴장감을 주며 불안감을 주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다. 이 영화는 매 순간순간이 서스펜스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CG와 특수기술로 복원한 공룡의 모습들도 물론 놀랍지만, 이 서스펜스 때문에 <쥬라기 공원>을 보는 이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첫 장면부터 서스펜스가 시작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룡이 공원 직원을 잔인하게 물고 늘어지는 가운데, 전 직원이 랩터에게 총을 쏜다. 이 사람은 죽을까 아니면 간신히 살아남을까? 그리고 그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릴 적 나는 집에서 봤을 뿐인데도 순식간에 브라운관 속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영화관에서 이 장면을 처음 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천추의 한이다.

 

지금 봐도 조마조마한 영화의 첫 장면.

개인적으로 마지막 헬기가 뜨는 장면에서도 폭포에서 갑자기 티렉스가 튀어나올까봐 어찌나 조마조마했던지. 영화 제목이 <쥬라기 공원>이니만큼 서스펜스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은 당연히 공룡이다. 비중은 벨로시 랩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티렉스(티라노사우루스) 역시 시리즈의 간판 스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심지어 지나가던 딜로포사우루스가 만드는 서스펜스 드라마도 명장면으로 뽑힌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서스펜스 드라마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쥬라기 공원> 내에서 인간이 만든 서스펜스 드라마 중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이 장면이 아닐까.

 

 어린 마음에 팀이 너무 답답해서 소리를 질렀던.

저 아이는 ‘쥬라기 공원’의 설립자 해럴드의 손자 팀이다. 아래에 서 있는 파란 셔츠를 입은 사람은 ‘쥬라기 공원’의 고문을 담당하기 위해 초청받은 주인공 그랜트 박사. 잘 보이진 않지만 그 옆에는 팀의 누나 렉스도 있다. 티렉스에게 공격을 받아 공원 내를 헤매다 천신만고 끝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전기담장을 넘는 장면이다. 지금 공원의 전체 시스템은 멈춰버렸다. 때문에 여기서 보이진 않지만, 공원의 다른 곳에서 그랜트의 연인인 엘리 새틀러 박사가 열심히 공원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엘리는 그랜트 일행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공룡들을 무력화시키고 인간들을 공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전력을 공급하려 한다.(이 과정에도 우여곡절이 무척… 많다.) 현재 전기담장은 곧 전력이 들어올 거란 경고등을 열심히 울리고 있다. 그렇지만 팀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제대로 내려오고 있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팀은 어떻게 될까? 무사히 담장을 넘어 그랜트와 렉스의 품에 안길까, 아니면 전기에 감전되어 공룡들의 먹잇감이 될까? 또한 엘리는 무사히 공원의 전체 시스템을 재부팅할 수 있을까? 마지막 단계에서 삐끗하진 않을까? 결과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물론 이 장면 뒤에도 서스펜스는 계속 이어진다. 다만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물론 이 장면이 작중 최고의 서스펜스 신이란 것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쥬라기 공원>이 정말 훌륭한 점은 따로 있다. 생각보다 ‘깜놀’ 포인트가 적다는 것이다. 업계 용어로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라고 한다. 공포 영화에서 많이 쓰는 기법 중 하나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드물다. <쥬라기 공원>은 어디까지나 철저히 서스펜스에만 기대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솔직히 못 만든 호러 영화보다 SF 어드벤처물을 표방한 <쥬라기 공원>의 서스펜스적 모먼트가 훨씬 더 훌륭하다. 어릴 때는 이야기와 공룡에 정신없이 홀려서 보았다면, 나이를 먹은 뒤에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괜히 거장이 아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영감님… 오래오래 살아주십시오…

 

그 외에도 <쥬라기 공원>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공룡’이란 익숙하지만 낯선 괴수의 존재를 특수효과로 살려냈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앞서 언급했던 <프레데터 1>에 나오는 프레데터들보다 친숙하지만, 그렇다고 <킹콩>이나 <죠스>에서처럼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생물이 아니기에 예측 불가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리부트되어 <쥬라기 월드> 시리즈가 나왔지만 나는 역시 <쥬라기 공원>이 제일 좋다. 1이니 2니 하는 숫자가 붙지 않은 오리지널이.

<쥬라기 공원>은 공룡이란 존재에 한번쯤 빠졌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정말 신기하게도, 인간은 누구나 공룡을 좋아하는 시기를 겪는 것 같다. 공룡에 빠지는 건 나의 남동생과 나만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크고 보니 친구들이 낳은 아이들이 공룡 이름을 줄줄 꿰고 있다. 심지어 나의 친애하는 언니의 3살짜리 딸도 그렇다. 한때 지구를 지배하여 생태계를 구축했던 아주 거대한 존재들, 그러나 지금은 멸망하여 절대 실물을 볼 수 없는 존재들. 우리는 왜 그것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백 번은 넘게 본 <쥬라기 공원>을 다시 처음부터 돌려보며, 모든 대사를 읊으며, 나는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본다.

 

빡쳐서 담배를 뻑뻑 피고 있지만 절대 욕설은 하지 않는 새뮤얼 잭슨도 만날 수 있어요.

 

Written by 박복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