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불만이 많아서요

창작 그림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통쾌함을 기억한다. 억눌려 있던 마음속 깊은 곳의 불만이 고개를 들어 그림책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짝! 나는 이미 나이로는 성인이었지만 도무지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본인들은 자신들이 한 말을 다 지키지 않으면서 꼭 어린이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한다. 어린이들이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본인들도 어린 시절을 거쳐 왔으면서 왜 모를까. 어린이는 미래를 살 존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대충 얼버무릴 생각하지 마시라.

 

박연철의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시공주니어, 2007)는 2007년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작품으로, 그림만 봐도 좋지만 내용의 통쾌함도 으뜸이다. 망태 할아버지라니, 지금은 볼 수 없는 직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겁을 주는 형태로 가끔 등장하는 모양이다. 아니, 이 책이 있어서 잊히지 않고 불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망태 할아버지 대신 언급되는 존재로는 에비, 귀신, 경찰, 도깨비 등이 있다. 사실 이 책에서도 꼭 망태 할아버지여야 하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말 안 듣는 아이를 겁을 줘서 말을 듣게 만들면 되는 거니까.

망태 할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우는 아이 입을 꿰매 버리고 떼쓰는 아이는 새장 속에 가둬 버리고 밤늦도록 안 자는 아이는 올빼미로 만들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나쁜 아이들을 잡아다가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만들어서 돌려보낸단다. 이때 돌아온 아이들의 등에는 동그라미 도장이 쾅쾅 찍혀 있고 개성 넘치던 아이들의 모습이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상품처럼 바뀐다. 세상에! 정말 너무 무섭다.

거짓말을 했다고, 밥을 제대로 안 먹는다고, 일찍 안 잔다고 엄마는 계속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단다. 사실 엄마가 거짓말 하는 거, 밥 안 먹는 거, 늦게 자는 거 다 알고 있는데……. 참지 못하고 엄마한테 대든 밤에 어쩐지 망태 할아버지가 올 것 같다. “너 잡으러 왔다!” 누가 잡혀 갔을까? 마지막엔 엄마와 아이가 꼬옥 안고 화해하며 끝이 난다. 앞으로는 망태 할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겠지?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John Patrick Norman McHennessy-The Boy Who Was Always Late)』(비룡소, 1996)은 매일 지각하는 존 패트릭 노먼 멕헤너시라는 어린이 이야기다. 해가 채 뜨기 전에 집을 나왔건만 지각을 하고 말았다. 하수구에서 악어가 나타나 가방을 물고 놔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왜 지각을 했는지 설명하지만 선생님은 거짓말을 한다며 벌을 준다. 다음 날도 서둘러 학교로 가지만 덤불에서 사자가 나타나 바지를 물어뜯는 바람에 나무 위로 피해 있느라 지각을 하고 말았다. 역시 선생님은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다시 벌을 받게 된다. 다음 날은 다리를 건너는데 파도가 덮쳐 와서 지각을 하고 말았다. 물론 선생님은 믿지 않았고 또 벌을 받았다. 학교로 가는 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드디어 지각을 하지 않은 날, 학교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선생님이 고릴라에게 붙들려 있었다. 도움을 구하는 선생님에게 존 패트릭 노먼 멕헤너시는 보기 좋게 복수를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도 존은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어린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황당한 거짓말로 치부한 선생님의 결말이 속 시원하다.

 

미카엘 에스코피에 글, 마티외 모데 그림의 『완벽한 아이 팔아요(Un Enfant Parfait)』(길벗스쿨, 2017)도 한번 살펴보자. 완벽한 아이라니 제목에 반감이 확 생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궁금해진다. 대체 어떤 아이가 완벽한 아이인가? 뒤프레 부부는 아이를 사기 위해 아이마트로 간다. 그곳에는 각종 아이들이 있는데 수학을 잘하는 아이, 악기 연주를 잘하는 아이 등 부모의 요구에 얼마든지 맞춰줄 수 있다며 판매원이 광고를 한다. 하지만 뒤프레 부부가 원하는 아이는 “완벽한” 아이다. 이 완벽한 아이는 너무나 인기가 많아서 딱 재고가 하나 남아 있던 상황이었다. 운 좋게 완벽한 아이를 사게 된 뒤프레 부부는 매 순간 아이를 보며 감탄을 한다. 어쩜 저렇게 완벽할까. 하지만 아이의 완벽함에 대비되게 뒤프레 부부의 부족함은 자꾸만 눈에 띈다. 하루는 학교 이벤트를 착각하는 바람에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게 되는데 이 일을 계기로 처음으로 아이가 집에서 화를 낸다. 그 길로 서둘러 뒤프레 부부는 아이마트에 아이를 데려가 수리를 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수리에는 너무 긴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때 점원이 아이에게도 질문을 한다. 지금의 가족이 마음에 드느냐고. 아이는 부모에게 만족하고 있었을까? 점원의 마지막 말이 결정타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 그럼 완벽한 아이는?

다소 충격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실제로도 부모들은 종종 아이를 원하는 대로 만들려고 애를 쓴다.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과연 정말 그럴까? 아마 부모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알다시피 모든 사람의 마음에 쏙 드는 존재는 없지 않은가. 너도 나도 아이도 역시 그렇다.

 

나는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단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어른들을 향한 불만을 가득 가진 채 살아간다. 그러면서 가끔 스스로를 돌아본다. 누가 내게 하면 불쾌할 것 같은 일을 아이를 상대로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우리는 누구나 어린이였다. 그 시간들을 잊고 노키즈존을 만드는 어른들에게 이 책들을 추천해주자. 당신은 괜찮은 어른인가요?

 

Written by 한일그림책교류회 강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