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지 않는 그림책

 

일본에서 또 한 어린이가 죽었다. 그리고 기사에는 어린이의 비명이 자주 들렸다는 이웃 주민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 이 어린이는 학교 이지메 설문 조사에 아빠가 괴롭힌다는 내용을 써냈다.

아동학대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다. 어린이만 구조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가정 전체에 도움이 필요하다. 때로는 가정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 구성원의 안전이 아니라 가정의 유지에 집중하고, 친권이 너무나 큰 힘을 발휘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아마 같은 상황에서도 어린이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부모라면 당연히 아이의 안전을 보장해 줄 거라는 환상이 깨져야 한다.

 

아빠가 돌아왔다. 아빠는 지금 기분이 좋을까? 화가 나지는 않았을까?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아, 다행이다. 지금은 괜찮다. 기분이 좋은 아빠는 봉투에 한가득 든 사탕 같고 생일 케이크에 꽂혀진 깃발 같다. 보이는 조용히 눈치를 본다. 가족 모두가 웃고 있는데 왜 보이는 이렇게 아빠의 기분을 신경 쓰는 걸까? 갑자기 다음 장에서 아빠의 기분이 달라졌다. 아빠가 왜 그럴까. 지금 이 상태는 유리로 된 방 같다. “쉿, 조용히.” 엄마가 말했다. 아빠의 마음에는 문이 하나 있는데 그 문 너머에는 지하실이 있다. 그 지하실 깊숙한 곳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앵그리맨(그로 달레 글, 스베인 니후스 그림, 내인생의책, 2014)』이 계단을 쿵쿵 올라오고 있다. 제발 착한 아이로 있을 테니 앵그리맨이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하지만 아빠는 앵그리맨이 되었다. 엄마가 울고 있다. 온몸이 불타오른 아빠는 재가 되었다. 이제 화내지 않겠다고 아빠는 울면서 말했다. 항상 화낸 후에 하는 말이다. 집에서 나가고 싶다. 하지만 엄마는 말한다. 아빠 말고 누가 컴퓨터를 도와주고 또 누가 차를 고치고 전구를 바꿔주겠냐고. “보지 말고, 말하지 말고, 듣지 마. 이건 비밀 중의 비밀이야. 우리는 사이가 좋은 행복한 가족이야.” 보이는 집에서 나가서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입에는 7개의 자물쇠가 걸려 있고 접착제가 붙어 있고 천 개의 못이 박혀 있다. 그래도 이웃집 개에게는 말할 수 있다. 보이는 개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는다. 그 말을 숲도 새도 풀도 모두 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누군가에게 말하라고 속삭인다. 말할 수 없다면 편지를 쓰라고. 보이는 왕에게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임금님, 아빠는 때려요. 제 탓일까요? 보이 올림” 편지를 받은 왕은 보이의 집에 찾아왔다. 아빠는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 아빠는 이제 왕의 성에서 함께 산다. 아빠는 마음속의 앵그리맨들을 잘 다룰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아마 다시 웃을 수 있겠지.

보이는 눈치를 보고, 자기 탓을 하고,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를 어려워한다. 학대 상황에 놓여 있는 어린이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당사자가 말하지 않더라도 외부에서 눈치를 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반복해서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

 

부드럽고 큰 귀를 가진 란돌린. 란돌린은 동물 인형이다. 브리트는 란돌린을 꼬옥 안고 있을 때 정말 행복하다. 둘은 놀이도 함께 하고 이웃집 프레리히 아줌마와 함께 그림도 그린다. 그런데 왜 행복한 란돌린이 아니라 『슬픈 란돌린(카트린 마이어·허수경 글, 아네트 블라이 그림, 문학동네, 2003)』일까? 브리트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나쁜 비밀을 란돌린에게만 들려준다. 란돌린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계속 생각한다. 「침대 밑에 있는 슬픈 그림 옆에 떨어진 척을 해볼까? 그럼 엄마가 그 그림을 보겠지? 아니면 내가 멀리 가버리면 나를 찾아 브리트가 집을 떠나지 않을까?」 이렇게 브리트를 매일 울게 만들고 란돌린을 슬프게 만든 사람은 바로 엄마의 애인이다. 이쯤에서 눈치를 채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이 책은 어린이 성폭력을 다룬 그림책이다. 브리트는 잔뜩 겁을 먹어서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못한다. 이 상황에 너무나 화가 났던 란돌린은 “정말 나빠. 너에게 아픔을 주잖아.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돼! 누구도, 누구도, 그 누구도 너에게 그래서는 안 돼!” 라며 브리트가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둘은 밤새 어떻게 할까 이야기하다가 프레리히 아줌마를 찾아가기로 한다. 가슴이 쿵당쿵당 했지만 둘은 아줌마에게 비밀을 모두 털어놓았다. 아줌마는 곤란에 빠진 아이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고 다시는 그 아저씨가 브리트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그들은 강해요. 함께니까요.” 라는 마지막 말이 이 책이 주고 싶은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침묵은 금이고 비밀은 지켜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이 법칙은 깨져야 한다.

 

그림책은 아름답고 반짝반짝한 꿈만 담겨 있지 않다. 현실의 아픔도 솔직하게 다루고 있다. 실질적인 방법이 많이 논의되어야 하겠지만 그림책은 그림책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책들이 어디든지 놓여 있어서, 어른들이 읽고 어린이의 고통에 좀 더 빨리 눈치를 챌 수 있다면, 어린이가 누군가에게 더 쉽게 힘든 것을 말할 수 있다면 하고 바라본다.

 

Written by 한일그림책교류회 강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