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꿀 거예요

 

한 어린이가 발레 슈즈를 신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한 페이지에 딱 한 단어. 무슨 말을 하려나, 숨을 고르고 침 한번 꼴깍 삼키고 다음 장을 펼친다. 어린이는 음악을 틀면서 “지금” 춤을 추겠다고 말한다. 빙글빙글 거실을 지나, 집을 나가서, 풀을 넘고 숲을 지나고, 강 위에서도, 빗속에서도, 바람 속에서도, 심지어 폭풍 속에서도 춤을 출 거라고.

“그러다 보면”

무대 위에 서 있는 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그리고 빽빽한 관중.

꿈이 실현된다는 건 이렇게 훅 밀려드는 감동일까. 이 페이지는 닫힌 창을 활짝 열듯이 양쪽 페이지를 열어 젖히면 나타나는데 내가 무대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 잠시의 단꿈이 끝나고 현재로 돌아와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춤을 출 거예요”

그렇지 그렇게 꿈을 이루려면 열심히 연습해야지.

하지만 포인트는 마지막 말이다.

“춤이 좋으니까요”

 

맞다. 내가 이렇게 애쓰는 이유는 언젠가의 빛나는 미래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춤을 출 거예요』(그림책공작소)의 작가 강경수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춤을 추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왜 춤을 추는지 말은 안 했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 꿈을 향해 노력했는지를. 그리고 그 사람이 추는 춤과 제가 꾸는 꿈이 같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독한 몸치이고, 춤을 잘 추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것이 아님에도 이 책을 보고 감동을 받는 건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위해서 지금 애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이 책이 떠오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좋으니까” 하는 거야.

 

『춤을 출 거예요』가 꿈을 이루는 순간을 확실하게 보여주며 감동을 줬다면 『작은 눈덩이의 꿈』(이재경 글・그림, 시공주니어)은 어느 날 문득 내가 그렇게 바라고 소망하던 모습이 되어 있음을 우연히 깨닫는 장면을 통해 감동을 준다.

하얀 눈밭에 작은 눈덩이 하나가 아주아주 큰 눈덩이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커요?” 큰 눈덩이는 대답한다. “멈추지 않고 계속 굴렀기 때문이지.” 작은 눈덩이는 그날부터 구르기 시작한다. 그냥 구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숲길의 나무를 피하고 비탈길에서 정신 없이 빨라지는 속도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뭇가지가 박혀서 구를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내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도와줄까?” 하고 다가온 까마귀 덕분에 어려움을 이겨낸다. “나도 같이 가도 돼?” “물론이지.” 작은 눈덩이에게 동지가 생겼다. 함께 길을 떠난 둘 앞에 나타난 건 부서진 큰 눈덩이였다. “나도 한때는 잘 굴렀는데・・・・・・ 어차피 눈덩이는 부서지기 마련이야” 그날 밤 작은 눈덩이는 자신이 산산조각 나는 꿈을 꾼다. 다시 길을 떠났더니 이번엔 작은 눈덩이들이 잔뜩 뭉쳐진 울퉁불퉁한 큰 눈덩이가 나타나 자신에게 붙으라고 한다. 애쓰지 않아도 쉽게 구를 수 있다고. 그 눈덩이를 피해 길을 떠났더니 따뜻한 곳에서 녹아가는 눈덩이들이 보였다. 작은 눈덩이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큰 눈덩이가 될 수 있을까? 부서지면 어쩌지? 녹으면 어쩌지? 그냥 큰 눈덩이에 붙어서 살까? 까마귀는 불안해 하는 눈덩이에게 힘을 준다. 까마귀의 말을 듣고 다시 힘을 내 구르는 작은 눈덩이.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말을 걸어 온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크고 멋진 눈덩이가 될 수 있어요?” 그제서야 자신이 그렇게 되고 싶었던 큰 눈덩이가 되어 있었다는 걸 눈치 챈 눈덩이는 다시 기운차게 굴러 간다. 까마귀와 함께.

 

불안함에 가득 차 있던 내게 이 책은 까마귀 처럼 힘이 되어 주었다. 내가 과연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잠시 미뤄두고 멈추지 않기에 집중해 본다. 여전히 작은 눈덩이라고 생각하는 나도 1년 전보다는 조금 커져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확실한 꿈을 꾸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고. 지금 보내는 시간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럼 『구룬파 유치원』(나시우치 미나미 글・그림)을 읽어 보자.

 

외톨이 구룬파는 커다란 코끼리다. 구룬파는 외로워서 혼자 울기도 한다. 그런 구룬파를 보다 못해 다른 코끼리 들은 구른파를 씻겨 주고 일을 하라고 내보낸다. 어쩌다 보니 등떠밀려 나온 구른파가 처음 간 곳은 비스킷 공장. 열심히 힘을 내서 만들었더니 너무 거대한 비스킷을 만들고 말았다. 아무도 그 비스킷을 사주지 않아서 구룬파는 비스킷 공장에서 쫓겨났다. 다음으로 간 곳은 그릇 공장. 여기서도 너무 열심히 만들었더니 너무 거대한 그릇을 만들고 말았다. 그렇게 큰 그릇에 넣을 우유는 없다며 또 쫓겨 났다. 그 다음은 구두 가게. 거기서도 너무 힘내서 만들었더니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큰 구두를 만들고 말았다. 그런 구두를 신을 사람은 없다며 또 쫓겨났다. 다음은 피아노를 만드는 공장. 거대한 피아노를 만들고 말았다. 왠만한 힘으로는 연주할 수 없다며 또 쫓겨났다. 그 다음은 자동차 공장. 구룬파가 만든 너무 큰 자동차에 탄 사람은 앞이 안 보인다고 항의했다. 다시 쫓겨난 구룬파. 쫓겨날 때마다 점차 마음은 무너지고 이제 어디로 갈까 걱정하는 구룬파의 앞에 나타난 것은 12명의 아이를 돌보는 한 어머니. 너무 바빴던 그 어머니는 구룬파에게 아이들과 놀아달라고 부탁한다. 구룬파는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러자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구룬파는 아이들에게 비스켓을 쪼개서 나눠줬다. 12 아이들 외에도 외톨이였던 동네 아이들이 몰려 왔다. 구룬파 유치원이 탄생했다. 너무 커서 쓸모 없던 그릇은 아이들의 수영장이 되었다. 구두도 차도 멋진 놀이 기구가 되었다. 구룬파는 이제 더이상 외로워서 울지 않는다.

 

여러 곳에서 쫓겨나면서 마음이 점점 무너진 구룬파가 포기하지 않고 끊임 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한 건 정말 대단하다. 따로따로 떨어져 이어질 것 같지 않던 경험들이 이어져 구룬파 유치원이 탄생했을 때 내가 보낸 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걸 생각했다. 좀 돌아가면 어떤가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면 어떤가. 언젠가 내 경험들이 쌓여서 나만의 특별한 그 무엇이 생기지는 않을까.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 새해라고 특별할 게 있겠나 싶지만 그래도 이 즈음에서 한번 쉼표를 찍는다. 새해 계획을 세우며 조금 더 꿈에 가까워지기를 소망한다. 어린이들에게는 꿈이 뭐냐고 물으면서도 어른의 꿈에 대해서는 묻지도 잘 말하지도 않는다. 크고 먼 곳에 있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많은 이들이 꿈을 꿨으면 좋겠다. 그래서 즐거웠으면 좋겠고 그 길에서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게 힘을 줬던 그림책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힘이 되면 좋겠다.

Written by 한일그림책교류회 강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