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와 다양성

현대 한국인들이 쉽게 접하고 마실 수 있는 술은 소주·맥주·막걸리다. 이 세 주종 외에도 여러 술이 있다. 먼저 공산품 청주가 있다. 청주는 한국 사람들이 잘 마시지 않는 주종이지만, 비교적 최근에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이 등장했다. 다음으로 외국 술이 있다. 위스키나 보드카 같은 양주, 일본의 사케, 중국의 고량주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청주나 외국의 술은 소주·맥주·막걸리 보다 하위문화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한정된 주종들이 술 문화에서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정도의 현상이 주목된다. 먼저 폭탄주 문화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에서만 보이는 술자리 문화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소맥이 있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방법과 비율로 소맥을 만든다. 이 외에도 음료수나, 다른 술을 섞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의 폭탄주 제조법들이 있다. 즉 폭탄주는 기존의 3개 주종이나 다른 재료들로 새로운 술을 만드는 것이다. 폭탄주 문화가 탄생하게 된 원인과 배경을 모두 규명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 중 하나는 다양한 술을 즐기기 위함이다.

다음으로 몇 년 전, 모 주류회사에서 유자 향 소주를 출시한 적이 있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모든 매장에서 매진되었다. 이후 경쟁사에서는 각종 과일 향 소주들을 출시했고, 소주에 이어 과일 향 맥주, 막걸리 등 많은 종류의 술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를 기점으로 기존의 적은 종류의 한국 대중 술이 다양한 향과 향을 가지고 출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사람들이 다양한 술을 원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폭탄주 문화’와 ‘유자 향 소주의 출시’는 한 가지 공통점을 시사한다. 현대 한국의 술은 다양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첫 문단의 의문으로 돌아가서 ‘오늘 날의 술 문화에서 소주·맥주·막걸리가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최소한 사람들의 선호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물론 소주·맥주·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왜 한정된 품목만을 향유하게 되었는지는 생각해 볼만 한 주제 같다.

한국의 전통주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항상 5월 말에 이르면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무리를 지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술을 마시는데 낮부터 밤까지 쉬지 않았다.”라는 『삼국지』의 마한 이야기는 꽤나 유명하다. 이처럼 그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이전부터 술의 기록이 있다.

시간이 오래된 만큼 많은 종류의 술이 있었다. 동양권의 술은 탁주와 청주 두 주종이 있다. 술은 누룩, 물, 곡식을 섞어 발효를 시킨다. 술이 익으면 술독에 용수라는 거름망을 넣고 2~3일을 기다린다. 그러면 용수 안쪽에는 맑은 술이, 바깥쪽에는 발효된 곡식 찌꺼기와 누룩 등의 부산물이 나눠진다. 여기서 안쪽의 맑은 술을 떠 낸 것이 청주다. 탁주는 청주를 다 떠내면 그 바깥쪽에 부산물이 남는데, 여기에 물을 타 희석시킨 것을 탁주라고 한다.

두 가지 뿐인 양조주를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추가적인 조주방법을 사용했다. 2차 가공한 술로써 주로 향과 맛을 더하는 재제주(再製酒), 밑술을 담가서 여러 번 덧술을 하는 중양주(重陽酒), 소주고리로 술의 향과 알콜성분만을 추출해 내는 증류주(蒸溜酒) 3가지가 그것이다. 고려 후기 원나라를 통해 증류주 조주방법이 가장 나중에 들어오면서, 현재 한국에 전승되는 모든 전근대 주종의 틀이 완성된다.

청주나 탁주와 같은 양조주는 누룩, 물 곡식의 비율과 발효기간, 숙성하는 시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여기에 더해 재제(再製), 중양(重陽), 증류(蒸溜)의 방법을 더해 다양한 술이 만들어졌다. 게다가 지역의 특성에 따라, 또는 집안마다 재료와 방법이 달랐다. 이처럼 다양한 조주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필요와 방식으로 술을 빚었기에, 술의 종류는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주의 발전은 일제강점기와 함께 내리막길을 걷는다. 조선에서는 술의 제조와 판매는 제약이 없었다. 그러나 일제가 침략해오면서 통감부가 1909년 주세법을 발표하였다. 주세법은 6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주류 제조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 ‘술을 양조주·증류주·혼성주로 규정한 것’, ‘주류 제조자는 면허를 소지할 것’ 등이다.

주세법은 일제의 조선 수탈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세금을 부과하기 쉽게 두 가지 정도를 규정 했다. 첫째가 술의 분류를 단순화·획일화 했고, 둘째는 조주하는 사람을 통감부 관리 하에 두었다. 즉 주세법의 규정에 맞춘 획일적 술들이, 일제 통제 하에서만 제조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 5차에 걸친 개정으로 술의 품목은 더욱 단순해졌고, 면허를 유지하는 것은 극도로 억제하면서 결국 여러 술과 제조자들이 사라지게 된다.

해방 후 법률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일제의 주세법을 그대로 계승했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였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세원 확보에 최적화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즉 충분한 고찰 없이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을 그대로 수용했다.

전통주의 단절은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전통주는 다른 곡물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쌀이 가장 양질의 재료임과 동시에 가장 많이 쓰였다. 그러나 1960년대 양곡관리법의 일환으로 쌀로 술 빚는 것을 금지했다. 이 때 술 문화에 두 가지 큰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탁주의 주재료인 쌀이 금지되자 밀가루와 잡곡을 섞어 막걸리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그리고 전통방식의 증류식 소주를 대신해서 희석식 소주가 등장했다. 최대한 값싼 재료를 사용해서 그나마 남아있던 술의 질마저 낮춰버린 것이다. 훗날 쌀 막걸리는 1977년에, 증류식 소주는 1995년에 다시 허가되었다. 하지만 이미 전통주의 주조방식과 시장은 이미 사장되어 버렸다.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현대 한국의 술 문화는 일제강점기부터 군부독재시기까지의 산물이다. 다양하고 양질의 술을 생산 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주종과 저질의 술을 생산하는 것이다. 즉 보급형 술, 취하기 위한 술, 획일적 술 문화가 형성되었다. 지금은 일제와 독재에서 상당부분 벗어났다. 하지만 문화의 저변에는 아직도 당시의 문화가 흉터로 잔존하고 있다.

반면에 전근대 한국의 술은 ‘전통주’가 되었다. ‘전통’은 사전에서 ‘예로부터 전해지는 사상, 관습, 행동 따위의 양식.’이라고 정의한다. 전통 가옥·전통 춤·전통 놀이 등, 많은 분야에 ‘전통’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이처럼 ‘전통’이라는 단어는 역사성과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다. 동시에 과거의 문화를 단절시켜 박제한다. 더 이상 현재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시간 발전해 온 전근대 한국의 술은 ‘전통주’가 되어버렸다.

현대 한국의 술은 전통주를 계승하지 못했지만, 폭탄주와 같은 한국만의 새로운 술 문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서양의 양주와 일본의 사케, 중국의 고량주 등 다양한 해외의 술들을 구하기 쉬워졌으며, 새로운 맛의 술이 출품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술의 다양성을 원하고 있다. 전통주가 가진 다양성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Written by 김우성

 

  1. 『삼국지』 위서 권 30, 오환선비동이전. “(중략)…… 常以五月下种讫,祭鬼神,群聚歌舞,饮酒昼夜无休. ……(중략).”
  2. 덧술하기 전, 곡물과 누룩을 물과 혼합하여 한번 빚은 술.
  3. 술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1차 밑술에 2차로 겹쳐 담가 덧 넣은 술밑이나 술밥.
  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