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깃발을 들어야 하는 이유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참가 소회-

2018년 9월 8일, 대한민국 퀴어문화축제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인천에서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의 막이 올랐기 때문이다. ‘하늘도 우리편, 퀴어人天’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많은 성소수자들이 연대하고 춤추는 장이 될 예정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퀴어문화축제가 무엇인지, 왜 성소수자들에게 그토록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퀴어문화축제는 1969년 6월 28일, ‘스톤월 인’이라는 술집에서 벌어진 항쟁을 기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 질서를 회복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성소수자를 직접적으로 탄압하는 정책들이 많았다. 성소수자들은 무리지어 모일 수도 없었고, 결혼을 할 수도, 아이를 키울 수도, 심지어는 직장을 가질 수도 없었다. 미국 FBI에서는 성소수자들의 정보를 모아놓고 감시하기까지 했다니 탄압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점점 음지로 숨어들었다. 이들이 갈 수 있는 장소는 주로 갱이 운영하는 술집들이었다. 이런 술집들은 주류 판매 허가 없이 경찰에게 뇌물을 주는 돈으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불법적인 일들을 경찰이 눈감아주곤 했던 것이다. 뉴욕 그리니치의 ‘스톤월 인’도 그런 술집 중에 하나였다.

6월 28일, 경찰은 스톤월 인을 급습했고, 그 자리의 성소수자들을 연행해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경찰이 급습하는 시늉을 하면 의례적으로 가게 안의 사람들은 흩어졌다 다시 모였는데, 이날은 경찰이 달아날 통로를 모두 막고 채증을 하기 시작했다. 크로스드레서, 속옷을 갖춰 입지 않은 여성, 드랙을 한 사람 등이 연행 대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저항하던 성소수자 중에 하나인 마리아 리터가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체포되는 것’, ‘두 번째 두려움은 우리 어머니가 신문이나 TV로 내 사진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술병을 깨부수며 강하게 저항한다. 주변인들은 처음에는 이를 묵묵히 바라만 보았지만, 사람들이 하나 둘 연행되기 시작하자 누군가가 ‘게이의 인권을 달라!’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때마침 미국에서는 다양한 부문의 인권운동이 전개되고 있었고, 성소수자 인권운동도 급물살을 타며 함께 커져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외침에 주변의 성소수자들이 동조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촉발된 시위는 긴 시간동안 지속되어 1970년 6월 말에 이 항쟁을 기리는 게이퍼레이드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 퍼레이드가 지금의 ‘퀴어퍼레이드’의 시작점이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숨쉴 구멍을 찾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축제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최소한의 사회활동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계층의 저항에서 비롯된 하나의 운동인 셈이다. 이 축제로 하여금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사회성과 정체성을 보장받고, 커뮤니티를 구성하여 자존감을 높이고 자긍심을 고취하여 살아 나갈 원동력을 제공받는다. 국내의 퀴어문화축제에 들어서는 다양한 부스들이 대부분 당사자 자조모임단체 혹은 인권보장 단체인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18년 9월 8일, 인천에서 그동안 지역 내에 숨죽이고 살았던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건전한 축제를 열 예정이었다. 집회신고가 이미 이루어진 상황이었으며 법적인 부분을 충분히 검토한 후 성기 모양의 물건을 포함한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사전 고지가 되었다. 100% 합법적인 자리였다. 이 자리에 신고도 되지 않은 개신교 집단의 집회가 끼어든다. 이들은 퀴어문화축제가 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혹은 진행 중인 축제를 방해하기 위해 바로 맞은편에 집회신고를 냈다. 그러나 당일 그들은 자신들이 신고한 영역을 벗어나 인천퀴어문화축제 측이 신고한 자리에 무대를 세팅하고 비켜주지 않았다. 거기다 행사 장비를 들고 오지 못하도록 준비 차량을 에워싸고, 준비팀 차량 타이어에 펑크를 내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을 불사했다. 심지어 준비팀을 속이기 위해 대절한 버스에 무지개 깃발을 달고 행사장 입구를 가로막아놓기도 했다.

내가 준비한 축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참을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러나 조직위는 경찰을 사이에 놓고 혐오세력과 끝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 대화의 현장에서마저 혐오세력은 나이, 성별 등을 들먹이며 조직위원장을 무시했고 계속 혐오발화를 내뱉었다. 경찰은 조직위의 요구에도 펜스를 치지 않았고, 그저 폴리스라인을 둘렀을 뿐이었다. 폴리스라인 사이사이로 혐오세력들이 비집고 들어와 참가자들에게 혐오발언을 내뱉고 소수의 참가자 무리를 다수의 혐오세력이 에워싼 채로 기도를 하거나 폭언, 폭행, 절도 등을 일삼았다. 그런 광경을 경찰은 그저 보고만 있었다. 혐오세력이 이같이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허인환 인천 동구청장이 장소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법적으로 집회는 신고제이기 때문에 장소 사용을 허가하지 않아도 집회는 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하여 ‘동성애 축제를 옹호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지 않도록 나름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를 빌미로 혐오세력은 적법하게 신고된 집회를 ‘불법집회’라고 매도하였다.

이렇게 혐오와의 전쟁이 된 ‘축제’의 자리가 마무리되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행진 시간이 다가왔다. 이 행진은 성소수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상징하는 깃발을 흔들며 ‘내가 여기에 있다’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자리다. 일 년에 단 하루 동안 자기 자신을, 동료들과 함께 당당히 거리에 내보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진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행진 코스는 약 700m로, 도보로는 약 20분 정도의 거리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길을 5시간이나 걸려서 완주했다. 혐오세력이 드러눕고, 차량에 올라타고, 인간펜스를 쳐 행진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동안 퀴어들은 별다른 저항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경찰이 이들을 데려가길 기다릴 뿐이었다. 행진이 거의 마무리되어 갈 무렵, 한동안 대오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혐오세력들이 깃발을 내리지 않으면 길을 비켜주지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저 길이었다. 과자 사먹으러 가는 길, 차 마시러 가는 길, 집에 가는 길. 그런 일상적인 길에 정체성을 상징하는, 우리의 연대를 단단히 하는 무지개 깃발을 하나 올렸을 뿐인데 우리는 걸을 수 없었다.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행진임에도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한 채로 걸어가야 했다. 조직위의 탓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지쳤고, 그만 집에 가고 싶었으며 장시간의 대치로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혐오세력들의 지나친 탄압으로 인해 폭행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현명한 선택은 깃발을 내리는 일이었다. 빨리 행진이 끝나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년에도 모일 수 있도록, 안전하게 귀가시키는 일이었다. 깃발을 내린 것은 조직위가 무능해서가 아니었다. 혐오세력들이 무례했고, 영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깃발을 내리는 일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깃발을 내리고 가는 내내 ‘그거 봐, 꼴좋다’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 ‘다시는 인천에 오지 마’ 그 사이에 ‘사랑합니다. 사랑해서 반대해요’라는 외침도 섞여 있었다. 그 사랑에 구역질이 났다. 나는 이제 그만 제주도로 간다지만 인천에 사는 퀴어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 져오고 분노가 솟아올랐다. 그들은 그렇게 우리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자긍심을 짓밟았다.

그래서 나는 내년에도 반드시, 인천퀴어문화축제만은 참석하려고 한다. 그들이 아무리 거부해도 꿋꿋하게 다성애자인 내가, 트랜스젠더인 내가 여기에 있다고 외칠 것이다. 그들이 거리에 드러누웠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하기 때문에, 경찰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기 때문에, 우리의 축제 한가운데서 드러누우며 ‘나는 퀴어가 싫어요’라고 외쳤기 때문에, 우리의 깃발을 내렸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인천퀴어문화축제에 또 참여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깃발을 내리라고 함으로 인해 우리는 깃발을 들어올려야 할 이유가 생겼다. 당신이 걷고 있는 길 위에, 지금은 깃발을 내렸지만 곧 깃발을 들어올릴 성소수자와 앨라이가 있다.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나는 내년에도 무지개 깃발을 들고 인천에 갈 것이다.

이 글은 내가 깃발을 드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연대하는 우리가 깃발을 들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혐오세력은 끝없이 우리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짓밟을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높게 깃발을 들고 더 아름답게 깃발을 흔들어야 한다. 그 정도로는 우리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들은 혐오할수록 더욱 거세게 흩날리는 깃발을 보며 아연실색할 것이다. 지칠 것이다. 누구를 미워하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일은 그저 존재하면 되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이기게 되어 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는 ‘존재’해야 이길 수 있다. 우리의 깃발을 흩날리며 우리는 끝까지 존재할 것임을 당당히 보여주자. 내년에도 인천에서, 무지개 깃발을 들고 본 회의 회원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Written by 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