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떨어지면 웃는다네-화투의 짧은 역사

꽃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연인들이 선물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 슬픔을 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꽃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하니, 다양하게 아름다움을 즐기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요.

아름다움은 기쁨과 자주 대응을 합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기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절 때마다 담요위에서 꽃이 우수수 찰싹 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즐거움의 이중주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꽃에 대가를 내기 위해서 돈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빛(光)을 팔기도 하고, 오동나무-우리가 똥으로 부르는-를 싸기도 합니다. 빛은 소나무 위에 고고히 서있는 두루미에서도, 울타리가 펼쳐진 벚꽃나무 아래서, 휘영청 달이 뜬 억새 언덕 위에서, 봉황이 살포시 앉은 오동나무 위에서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일본의 유명한 서예가 오노노도후가 있습니다. 이 서예가는 끊임없이 물기 젖은 언덕을 미끄러져도 다시 오르는 두꺼비를 보고 본인의 서예실력을 연마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설과 추석, 그리고 학생들의 모임에서 빈번히 출현하는 이 꽃 싸움을 ‘화투(花鬪)’라고 부릅니다. 다섯 마리의 새라는 뜻인 고도리(五鳥)나, 멈추고 서는 고스톱과 같은 놀이는 1년 12달 쉬지않고 멈추고 서는 인간의 숙명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특정 동물과 꽃으로 이루어진 조합인 ‘섯다’라는 게임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벛꽃아래 펼쳐진 달의 아름다움은 삼팔광땡으로 불리며 아름다움도 게임의 주도권을 쥐락펴락하는 재미가 될 수 있음을 알게합니다.

그렇다면 화투를 다룬 영화에서 손목과 무거운 건축용 망치를 찾게 만드는 이 놀이는 언제 기원되었을까요? 놀랍게도 16세기 후반 포르투칼 등 서양에서 그들이 말하는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동분서주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넜을 때 일본으로 전해진 카드게임입니다. 우리가 즐겨하는 원카드나 블랙잭에 사용하는 트럼프 카드의 동양버전인 것이죠. 트럼프 카드가 전래되었을 당시 일본은 도쿠가와 가문이 바쿠후(幕府)를 창설하고 실질적인 통치력을 발휘할 당시였습니다. 지방의 영주인 다이묘(大名)와 중앙의 귀족들,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사무라이 계층은 트럼프 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러던 중 도쿠가와 막부가 트럼프 놀이를 금지한 이후 일본화 됩니다. 카드 48장을 1년 12달로 배치하여 꽃과 새, 바람, 달 같은 자연물과 일본인들에게 잘 알려진 자연의 풍경들을 배치하기 시작했지요. 현지화를 완료한 새로운 일본 카드놀이인 화투(하나후다)로 바뀌어갔고, 일본열도를 그야말로 흔들어놓았습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일본 사람들의 고전인 삼대집(三大集) 즉 만요슈(萬葉集), 고금집(古今集), 신고금집에 수록된 12달을 노래한 시들이 주요한 텍스트가 그 배경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시들과 함께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당시의 자연관과 시간관에 따른 감정을 화투를 통해 공유했다는 분석적 연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화투를 통해 돈과 일상성을 잃어버리는 예나 지금이나 화려함에는 무상함이 같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영광은 예쁜 꽃으로 자라나 화려하게 피었다가 무상하게 지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화투는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놀랍게도 17세기 후반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조선은 부산 초량진에 왜관을 설치하여 일본인과 교류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조선인들이 사랑한 게임은 수투(數鬪)라고 하는 게임인데, 통에 숫자를 적은 막대기를 뽑아 섞고 ‘끝’을 맞추는 놀이입니다. 사극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놀이 맞습니다. 이 놀이와 일본의 하나후다가 합쳐져 ‘섰다’라는 놀이와 자연물의 짝을 맞추어 점수를 내는 고스톱(지역마다 다르겠지만, 고도리, 민화투 등의 명칭이 있음)같은 놀이들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숫자가 적인 막대기를 뽑아 끝을 맞출때의 긴장감은 화투에서 끝을 맞출때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일제강점기를 맞아 1902년 화투를 억제하기 위해 세금을 부과했던 것을 보면, 처음 전래되었을때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사랑받는 게임도구로 환영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 1920년 무렵에는 화투로 할 수 있는 놀이는 33종이나 되었다고도 합니다. 1940년대에는 일본 조선총독부는 공영도박으로 인정하여 군대 뿐만 아니라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에게 의해서도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화투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우리가 잘아는 고스톱은 일본의 코이코이(こいこい:오라오라)와 하치하치(八八)이 합쳐진 놀이라는 결과도 있는 것을 보면, 당시에 많은 문화적 접촉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많은 가족문화가 있겠지만, 생각보다 화투를 많이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화투를 비롯한 게임들은 도박이니 중독이니 하는 말들이 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서먹했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밑그림 역할을 해주는 순기능도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화투가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발전시켜온 게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왜색이니, 하는 말들은 잠깐 접으셔도 좋을 듯 합니다. 16세기 후반 유럽에서부터 17세기 일본과 조선의 역사가 안방에서 펼쳐지는 셈이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게임들의 역사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게임이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도, 무조건 나쁜 점만 있다고도 생각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뭐든지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문제니까요.

마지막으로 가을을 맞는 시로 이 글을 맺으려합니다. 화투는 여전히 꽃같은 아름다움으로 게임의 즐거움을 돋우어주는 상징으로 있는 듯 하니까요. 모두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菊に盃(키쿠니 사카즈키, 국화에 술잔), 10끗

 

「色変る秋の菊をば一年にふたたびにほふ花とこそ見れ」

변색한 가을 국화를 ‘한 해에 두 번 활짝 피는 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네.

 

Written by 이민기(학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