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를 읽고 – 다섯번째 보라읽기

*이 글은 인문학공동체 이음 여성주의위원회에서 진행중인 보라읽기 사업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섯번째 보라읽기의 발제도서로 나는 록산게이 작가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선정하였다. 책은 그동안 읽었던 책과 공통적으로 페미니즘의 실천을 탐구하는 책이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대중문화 콘텐츠를 예로 드는 비평이 담긴 에세이다. 책을 읽기전 나는 작가의 <헝거>를 먼저 읽었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헝거는 키190cm에 몸무게가 200kg이 넘었던 작가의 몸에 대한, 허기에 대한, 삶 전체에 대한 이야기로 세상이 육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작가에게 홀딱 반한 나는 자연스레 <나쁜페미니스트>를 발제도서로 선정하게 되었다,

<나쁜페미니스트> 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작가 록산게이가 보다 사적이고 보다 진솔하고 보다 거침없이 들려주는 책이다. 적지 않은 분량에도 빠르게 읽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과 그 내용의 공감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이것이다 ’라고 정의 내리기 보다는 ‘나는 이렇게 본다‘라고 말하며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유롭게 던져준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교수님이 들려주는 교과서 같은 느낌의 책이라면 <나쁜 페미니스트>는 열성적이고 예리한 성격의 친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의 책으로 중간중간 너무 공감이 되어 맞장구를 치기도, 믿기지 않는 사실에 경악하기도 하며 읽게된다. 책은 특히 미국의 엔터테인먼트와 문학, 저널리즘, 트위터 속에 표현된 성차별과 인종차별주의, 정책들을 지적하며 대중문화콘텐츠에 만연한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서사를 비판한다. 이번 ‘보라읽기’에서는 책에서 지적된 문제점들을 한국의 대중매체와 문학, 저널등에 적용하여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고 동시에 작가가 고민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 ‘소재만을 착취하지 않고 주제를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고민’하려면

“어쩌다 강간과 성폭력이 우리의 표현 속에 이렇게 뿌리 깊이 자리잡고 합리화 되었을까? 어쩌다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도 그것이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단 식으로 받아들인단 말인가?”《강간과 재현》

작가는 린 히긴스와 브랜다 실버의 책속에 등장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성폭력을 너무 자주 다루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드라마<비버리힐즈><프라이빗 프랙티스><재너럴 호스피털><성범죄전담반 SVU>를 예로 들며 일부 드라마는 시청률이 부진할때마다 그 테마를 사용하여 시청률 상승 효과를 본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한국도 전혀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서사에서 단순히 남성의 폭력성을 드러내기 위해,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 여성은 소품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동안 아무렇지않게 무의식적으로 소비해온 여러 콘텐츠속 성폭력 장면들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어떻게 이토록 아무런 고통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나 역시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전에는 이러한 것들이 자연스러운 문화권에 살고 있기 때문에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지금은 변명이 불가능하다. 창작자는 소재만을 착취하지 않고 주제를 전달할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창작하기 위해 고민해야하고 소비자는 콘텐츠가 어떤 것을 착취하면서 누구의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사고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여자 주인공 폭행 장면을 가혹하게 다룬 드라마 <나의 아저씨> 남자 화장실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다 적발되어 폭행을 당하는 여자가 나오는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 여성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10분 가량 묘사한 영화 <VIP> 사회적으로 대두된 ‘미투 운동’을 선정적이고 상업적으로 다루어 만든 영화 <미투>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토일렛> 한국에도 많은 예가 있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콘텐츠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생산되고 비판의식 없이 수용되고 있다. 폭력을 다루는 방식이 타당한지, 성평등한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는지, 차별과 불평등을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의 눈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의 눈으로 보면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 많겠지만 아무렇지 않게 쉽게 보는 것이 얼마나 무심한 폭력인지 깨달아야 한다. ‘페미니즘은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지만 개개인의 변화된 행동을 통해서도 성공할 수 있다’라는 작가의 말을 나는 믿고 지지한다. 내가,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노력한다면 문제적인 콘텐츠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현재를 뒤로하고 앞으로는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콘텐츠들 또한 그에 못지않게 창작되고 사랑받는 사회가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페미니즘’과 ‘전문가적 페미니스트’를 구별하는 것

: 페미니즘의 오해와 페미니스트의 어려움

왜 이토록 페미니즘을 접하기 힘들까. 왜 페미니즘은 처음 들을 때 거북하게 느껴질까. 나는 여성인권영화제의 영화들을 통해서 여성 서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여성의 서사를 창작하기 위해서 페미니즘 공부가 필요함을 느꼈다.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시작한 페미니즘 공부는 알면알수록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져 스스로의 벽과 주위 사람들의 벽에 걸려 허우적거렸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여성혐오 문제의 심각성이 인식되고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고발로 ‘미투운동’이 시작되어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만연한 여성혐오 문제와 성폭행 문제가 폭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남녀불문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들이 많다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것에 비해 사람들은 우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 부담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오해를 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로 페미니즘에 완벽함을 요구하는 태도와 페미니스트 개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있을것이다. 작가가 지적하듯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된 어떤 인물이 실수를 하면 그것을 페미니즘이 잘 못 되었다는 증거로 삼아 그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처럼 결점도 있겠지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진심에서 쓰인 글이다. 나는 그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한 여성일 뿐이다. 나는 여기에서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원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고 그런 방법이 있다고 외칠것이다.’

작가는 애초에 책의 시작부터 페미니즘이 완전무결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이 자신의 삶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나이지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한번 질문해본다. 우리가 페미니즘에 요구하는 완전무결함이 타당한 것인가. 그렇다면 현재의 가부장주의 사회는 완전무결한가. 문제가 끊이지 않는 현대사회에 ‘모두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는 페미니즘’은 어느 순간부터 대안이 아니라 ‘그냥 성난 여자들의 여성우월주의 정치’로 읽혀지고 있다. 무엇이 이를 조장하는가. 우리는 왜 이토록 가볍게 그 모략에 넘어가는가. 시스템은 누구의 입장에서 작동하는가. 페미니즘의 오해는 익숙한 것들을 맞는 것들로 생각하는 사고에서 발생하고, 페미니스트의 어려움은 익숙한 모든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불평등한 것들을 평등한 자리로 돌려놓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거라는 신념이 우리를 지속하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모순적인 사람이지만 확실한건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개똥 같은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점이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 나는 앞으로 어떤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하고, 무엇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록산게이는 누군가 아이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기전에 작은 것부터 실천하여 자신이 그 아이콘 자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우리 모두를 독려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생각과 실천들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나쁜페미니스트> 보라읽기의 끝으로 우리는 우리만의 방법들을 이야기해 보았다.

  • 창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여성의 서사를 담은 성평등을 지향하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실천방안으로 현재 내가 할수 있는 최대의 권리인 ‘투표’와 ‘불매’를 적극 활용해 사회에 저항하고 감시할 것이다.
  • 육아시에 페미니즘을 교육할 것과 여적여를 반대하고 여성의 연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될 것, 여성의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더라고 걸림돌은 되지 않도록 귀기울이는 사람이 될 것이고 자신만의 길을 찾고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것이라 다짐했다.
  • 질서를 세우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고 문제의식을 갖는 동맹자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리의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페미니즘이 성공하는 그날이 올 것 이라고 믿는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들려주며 내가 나이면서 나답게 할 수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비록 완벽할 수 없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페미니즘을 실천하는데 개인의 노력이 중요함을 이야기하며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결국에는 페미니즘이 성공할 수 있을 것임을 긍정한다. 쉽게 읽히지만 내용이 가볍지 않고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나쁜 페미니스트>는 우리가 페미니즘에 더욱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친구처럼 이야기를 걸어오는 책이었다.

Written by 허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