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보는 우울증

제롬 프랭크(Jerome Frank)는 우울증의 보편적인 특성 중 하나로 사기 저하(demoralization) 상태를 정의하면서 사기 저하된 사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기대나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어떤 시급한 문제에 직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상황이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무력감을 느낀다. 심한 경우 그들은 미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면서 감정을 조절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것이 정신치료의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특징이다. 그들의 삶의 공간은…… 시간과 공간에서 제한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좁은 습관적인 행위에 고착되고, 새로움과 도전을 피하고, 장기계획을 세우기를 꺼려한다. 그들은 마치 심리학적으로 시공간적인 모퉁이에 위축돼 있는 것 같다. (『Frank』(1963),pp. 314-315; Frank(1974), 『우울증 거듭나기』 pp.52-53에서 재인용)

이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림책이 있다. 그림책은 밝고 즐거운 이야기만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림책에 우울증이라니! 제목도 직접적이다. 『Michael Rosen’s SAD BOOK』. 한국에서는 『내가 가장 슬플 때』(마이클 로젠 글, 틴 블레이크 그림, 김기택 옮김/ 비룡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첫 페이지에는 활짝 웃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건 「슬퍼하고 있는 나」라고 소개한다. 슬프지만 행복한 척을 하고 있다고, 슬퍼 보이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봐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다음 페이지부터는 색도 그림도 어둡고 음울해진다.

 

슬픔이 너무나 클 때가 있다.

여기도 저기도 슬프다. 온 몸이 슬프다.

그럴 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주인공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죽고 없다. 이 슬픔을 누군가에게 마구 털어놓고 싶을 때도 있지만 털어놓고 싶은 대상도 곁에 없다. 그래도 누군가를 찾아내서 털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또 어떤 때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심한 말을 내뱉고 말 때도 있다. 책상을 내려 칠 때도 있다. 어떨 때는 왜 슬픈지 이유도 알 수 없다.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누구에게나 슬픔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매일 자신 있는 일을 하고 자기 전에 그것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한다. 슬픔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하루에 하나쯤 즐거운 일을 해보려고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슬픔은 언제고 불쑥 찾아든다. 스스로를 지우고 싶은 마음도 커진다.

그래도 자신이 현실의 어떤 것에 마음이 빼앗겨 있는 것을 눈치 채기도 한다. 그리고 즐거웠던 일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래, 즐거웠던 생일! 초를 켜야지. 주인공은 홀로 양초를 켠다.

희망을 떠올릴 어떤 작은 단서조차 없이 이 책은 여기서 끝이 난다. 즐거웠던 생일을 떠올리며 켜놓은 촛불 앞의 주인공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마음의 흔적도 나타나지 않는다.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인은 달라도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지금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슬픔만 한가득 담은 것 같은 이 책이 어쩌면 위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겪는 슬픔이 먼지보다 가벼운 것처럼 느껴질까, 이 책의 첫 페이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살까, 어쩌면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 때 이 책은 마음의 거울처럼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어린이의 우울함을 담은 그림책도 있다. 숀 탠의 『빨간 나무』(숀 탠 글, 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이다. 상징이 가득한 그림에서 무거움이 훅 하고 느껴진다.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습니다.

…… 세상은, 마음도 머리도 없는 기계

…… 때로는 자신도 모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 하루가 끝나가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으로 환하게 핀 꽃이 등장하면서 끝이 난다.

우리가 참고 견뎌낼 수 있다면 불운은 좋은 뉴스로 이어진다. 좋은 뉴스는 우리가 추락한 다음에 다시 구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움의 손길, 지지, 격려 그리고 치료를 필요로 할지도 모르지만 다시 회복할 수 있다. 하강 다음에는 상승이 있다. 절망 다음에는 기쁨이, 실패 다음에는 성공이 있다. (David H. Rosen, 『우울증 거듭나기』 프롤로그 中)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말 같지만 우울증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는 이 사실이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을 괴롭히고 죽음까지 내 모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상태가 영원히 이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라는 걸 생각하면 변화의 가능성을 환기시켜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우울증을 보여주는 책은 아니지만 상실의 아픔과 아픔을 이겨내는 모습을 담은 그림책이 있다. 『어느 날 아침』(이진희 글, 그림/ 글로연)이 그 책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아름다운 뿔 하나가 사라졌다. 사슴은 울기만 하다가 뿔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사연을 듣고 뿔 모양 나뭇가지를 찾아 준 개미핥기는 예전에 아끼던 나뭇가지를 상실한 경험이 있다. 사슴은 그 나뭇가지 뿔로 위험에 처한 쥐토끼를 구해준다. 쥐토끼들도 겨울 식량을 잃어버린 때를 떠올리며 사슴을 위로해 준다. 하늘의 반달은 자신의 반을 잃었다고 울고 있다. 달과 사슴은 서로에게 힘을 내라고 말해준다. 결국 찾던 뿔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다. 기어이 남은 한쪽 뿔마저 잃고 집으로 돌아온 사슴.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살며시 삐져나온 새 뿔의 흔적.

이번에 소개한 세 권의 그림책 중 이 책은 가장 희망이 두드러진다. 상실의 아픔을 인정해 주고 이해하는 존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앞의 두 책과 다른 점이다.

인간은 어떠한 어두움 속에서도 빛(은유적으로)을 찾으려는 타고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울한 사람은 종종 정말로 우울증의 어두움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타고난 성질을 계속 계발해 간다면 결국 희망의 빛은 반드시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그들의-생물학적인, 심리학적인, 사회적인, 실존적인/영적인-모든 세계를 비추면서 앞에서 빛날 것이다.(Kast(1991); Bloch(1959), 『우울증 거듭나기』 pp. 72-73에서 재인용)

그림책이 우울증을 낫게 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의 세 책을 통해서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나을 수 있는 병의 증세라는 것만 알 수 있어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책이 여러 곳에서 유용하게 읽혀지길 바란다.

***그림책과 함께 인용한 책 『우울증 거듭나기』(데이비드 로젠 지음, 이도희 옮김/ 학지사)는 자살이 아닌 자아 죽이기를 통해서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우리는 실패하거나 잃거나 추락한다. 어떤 사람에게 우울증은 자기가 완전히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데까지 이른다. 이런 어두운 심연에서 그 사람은 영혼과 심혼의 상실을 경험한다. 희망의 불꽃은 꺼져 가고, 자살이 유일한 해결인 듯 보인다. 그렇지만 좋은 뉴스는 자아의 한 부분만 죽어도 된다는 것이다.(『우울증 거듭나기』 프롤로그 中)

 

Written by 한일그림책교류회 강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