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책 읽기 – 고전읽기 모임, 새로운 자본 읽기를 끝마치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세미나의 과정을 나눴던 오리엔테이션을 제외하고, 3월 중순부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고전읽기의 첫 파트, [새로운 자본읽기]가 9월이 되어서 끝이 났다. 고전읽기 모임은 최종적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는 것이 목표인데, 그것의 초벌 과정으로 독일 학자 미하엘 하인리히의 저작을 살펴본 것이다.

내가 고전읽기 모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 당시는 정말 저릿저릿한 기대감, 어떤 감동 같은 것이 나를 확 휘감았었다. 왜 그랬었냐 하면 내게는 묘한 지식욕이 있기 때문인데, 이것이 묘한 까닭은 내가 가진 지식욕이라는 것이 어떤, 학습을 사랑하고, 이것으로 인해서 매 번 새롭게 자극받기 때문에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훨씬 더 세속적이고 단순한 이유다. 스무살 즈음이었던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보통 사람들이 대학교나 고등학교 이후에는 공부를 안한대. 그래서 평생 그 머리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거야.” 라는 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도대체 이 말이 왜 그렇게 크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20대를 지나, 30대에 들어선 요즘 까지도 이 얘기가 가끔씩, 아니 자주 생각이 난다. 내가 바야흐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만으로 2년이 지나니까, 책 읽기는 거의 세 달에 한 번 꼴로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도 멍청하고, 미래에도, 앞으로 평생 멍청하게 살아갈 내 모습이 자꾸 그려졌는데, 이것이 나를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었다. 그러니까 학습(혹은 학습하는 시간)에 대한 갈망이 절정에 달했을 때 고전읽기 모임과 만난 것이었다. 그러니 저릿저릿 할 수 밖에.

 

하지만 정작 모임이 시작되려 할 즈음에는 걱정도 많이 들었다. 평소 공부하는 태도를 잘 길러 놓은 것도 아니고, 여느 세미나가 그렇듯이 잘 모르는 이야기가 줄기차게 난무하는 학습장에서 과연 맥을 잘 쫓아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일전에도 다른 세미나에서 아주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당시에는 내가 학습 준비를 제대로 해 가지 않았었기 때문이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로 세미나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미나 하면 떠오르는 생생한 기억이다.) 처음 두 번의 모임은 안타깝게도 걱정과 대충 일치했다. 책을 읽어가기는 했지만 모임원들 하나 하나가 던지는 질문들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를 서로 납득하기 위해 주고받던 대화도 생뚱맞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끊임없이 글쓴이의 맥락을 서로 확인하는데 그 쯤 되면 아주 죽을 맛이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가 지나고 나니 어려웠던 그 두 번의 시간은 바로 우리 모임에서 가져가고자 하는 비판적 자세의 수용, 맥락을 따라 글쓴이의 의도를 이해하기 등의 과제를 효과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맞는 예방주사와 같은 시간이었던 것이었다. 이 예방주사를 맞고 나니까 정말 놀랍게도 그 이후의 모임은 매 순간 즐겁고 뇌가 반짝반짝 해지는 짜릿한 순간들로 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3월부터 지금까지 약 6개월간 고전읽기 모임을 통해 많은 학습 할 수 있었다. 기왕지사 저널에 우리 모임의 후기를 작성하게 되었으니까 이 지면을 빌어서 평소 학습량이 부족한 내가 끝까지 모임에 출석 할 수 있었던 이유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소개하는 이 몇가지 포인트가 우리 모임의 좋은 점이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 번째, 해당 분야의 이야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느려도 꾸준하게 따라 올 수 있도록 학습 속도를 안배해주는 배려가 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의욕만 가지고 있다면 차근차근 질문에 질문을 이어서 마침내 이해하는 순간까지 기다려준다. 세미나라면 가장 당연하고 단순한 요구지만 먼저 선행 학습한 사람들이 이 점을 특별히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식 위에 지식을 쌓은 현대 저작의 특징 상 곁가지로 빠져 나가기 시작하면 만리장성을 다 쌓도록 돌아오지 않는 일이 허다한데, 현재 읽고 있는 부분에 대한 목표를 아주 분명히 해서, 곁가지를 설명하다 밤을 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들고 있는 책을 집중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 먼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바쁘게 달려가지 않고, 현재 읽고 있는 부분의 중요한 점 (예를 들자면 글쓴이의 맥락을 포착해야 이해가 되는 경우나 글쓴이의 주장이 매우 독자적이라 지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경우)에 이르면 새로 쌓아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잘 따라 올 수 있도록 정답이 아닌 가이드를 제시해준다. 그래서 각자의 논지로 결과를 추론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끝으로, 편안하고 친근한 분위기에서 모임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더 용기를 가지고 질문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끝으로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인문학공동체 이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원래 좋은 것이 있으면 서로 나누는 것이 우리 내 좋은 문화 아니던가. 나 개인적으로는 고전읽기 모임을 참가하는데 현재 소수의 인원이 학습에 효과적이지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즐겁고 나누는 모임을 위해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임에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혹시나 본 기고글이 책걸이를 한 시점에 쓰여진 것이라 “그래서 새로운 자본 읽기는 어떤 책이었는데?”하고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만약 읽고 있는 당신이 그렇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일단 모임에 들어오시라. 비록 궁금해 하고 있을 미하엘 하인리히의 새로운 자본읽기는 끝났지만 이제 본편이 시작되려고 한다. 들어오면 어떻게 책을 읽었는지, 그리고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Written by 김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