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애기일기2

무당이 되기로 하고 나서 제 삶에서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내 의지로 경쟁사회에서 탈락했다.’라는 것입니다.

 

35년 내내 저의 인생은 전쟁에 가까웠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하고 나를 보호하지 못하거나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나를 틀린 사람으로 취급하고 자신들의 울타리에서 내쫓아 버립니다.

늘 누군가와 경쟁해야 합니다. 그 누군가는 경쟁사가 될 때도 있고 직장 내 동료가 될 때도 있고 혹은 고객이 될 때도 있습니다.

나라는 상품의 가치를 끊임없이 올려야 하고 내가 느끼는 가치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이 내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도록 어필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극한의 상황에 이르렀을 때 성장이 더욱 빨라지며 그것이 진짜 성장이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한국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위 문장처럼 생각하면서 자신과 서로를 경쟁으로 내몰고 때로는 인간(들)의 무능 또는 악의로 인해 벌어진 잘못된 상황에 대해서 ‘이 상황을 뚫고 나가야 당신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식으로 조직적으로 함께 고민해 가야 할 많은 문제를 개인에게 넘겨버린다는 것에 있습니다.

 

한때 저는 위에서 말씀드렸던 경쟁을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직장 동료보다 뛰어난 평가를 받고 더 높은 연봉을 받길 원했고, 나의 퍼포먼스로 인해 경쟁사보다 우리 회사가 가치가 높은 회사로 평가되길 원했고, ‘억지 주장을 부리는 고객’과 언쟁하며 회사의 리소스를 지켜 내기를 원했습니다. 원하는 걸 해내면 뛸 듯이 기뻤지만, 원하는 걸 해내지 못했거나 해내지 못하는 중이라고 생각할 때, 그리고 주변에서 그런 평가를 받을 때는 늘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 직장 등 경쟁해야 했던 시절에 겪었던 저런 상황들로 인해 저는 경쟁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히어로물 속 영웅처럼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특정 부분에 대해서 민첩성이 발달했지만 늘 예민하고 공격적인 사람이 됐습니다. 대부분의 업무에 대해서 습득력이 빠르다, 처음 하는 것들도 곧잘 한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지만, 그런 칭찬을 들었을 때 칭찬을 한 사람의 저의를 의심하거나 칭찬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칭찬에 제대로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남들을 잘 칭찬하고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스스로를 칭찬하고 위로하는 것에는 인색했습니다.

 

이런 제 삶의 궤적은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일을 쉴 때도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쉴 때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기에 빡빡한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어떨 땐 캐릭터를 키우는 게임을 앉은 자리에서 12시간을 하기도 하고 운동을 해서 꼭 건강을 회복할 거라며 운동장비를 엄청나게 사기도 하고 최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해서 사업에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마케팅, 자기 계발 관련 책을 10권 넘게 사기도 했습니다.

시작을 너무 거창하게 세팅해 버린 저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책만 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잠을 하루에 13시간씩 잔다고 자책하고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자책하고 빨리 건강해져서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져 있는다고 자책하는 시간이 반복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런 마음 때문에 하는 일이 없어도 쉴 때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10월 중순부터 100일 기도를 하라는 신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100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신령님께 제 기도를 온전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올리기 위해서 기도하는 기간에는 채식을 하고 성적인 접촉을 금지하는 등 준비해야 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는 기도하는 자리 앞에 가지고 있는 무구(무당이 사용하는 각종 도구)를 놓습니다. 이후 달이 있는 방향으로 세 번 절한 뒤 동서남북 각 방향에 한 번씩 반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날의 음력 날짜와 기도하는 곳의 주소를 얘기하고 기도합니다.

 

기도하다 보면 가끔 제가 생각해서 떠오른 이미지가 아니라 불현듯 툭 튀어나오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그 이미지는 잠깐의 모습만 보여준 채 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움직이거나 얘기를 해주기도 하십니다. 약사여래불께서 ‘니가 잔병치레하지 않게 도와줄 테니 운동은 꼭 열심히 해야 한다’면서 저를 안아 주신 적도 있고 문수보살 님께서 저를 안아 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경쟁사회에서 못 버린 습관이 기도를 할 때도 튀어나왔습니다.

‘오늘은 꼭 어떤 이미지를 들어야지, 오늘은 꼭 어떤 목소리를 들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비우고 신령님께 내 마음을 바쳐 신령님께서 주시는 신호를 읽어낸다는 기도의 본질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제 생각이 달라지기 전까지 저에게 기도는 뭔가 결과가 나와야 하는 일일퀘스트 같은 존재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신선생님께 연락해서 ‘이런 것들을 봤고 이런 것들을 들었는데 제가 혹시 잘못 보고 들었거나 잡귀가 들린 건 아닌지 알려주세요.’라고 여쭤봅니다. 별도의 답장이 없는 거면 잘하고 있는 거고 방향이 틀리게 가고 있거나 뭔가를 잘못 봤다면 그때는 답장을 주십니다. 하지만 ‘이건 잘 본 거고 이거는 네가 만들어 낸 이미지이니까 잘 생각해라’라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시지는 않습니다. 큰 줄기를 알려주시면 거기서 디테일한 답을 찾아내는 것은 제자의 몫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던 중 어느 날 마음속이 환해지면서 ‘기도를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을 주시고 어떻게든 기도를 할 수 있는 제 몸과 컨디션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신령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한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날 뭔가 특별하게 보이거나 들린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 보이고 들린 날보다 가장 행복했습니다. 기도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은은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기도할 때 뭘 보여달라거나 뭘 들려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천지신명’ 네 글자를 반복해서 외울 뿐입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무당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얘기할 때 가끔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무당이 되기로 하고 나서 뭐가 달라졌나요?’ 였습니다. 그때 저는 자동차 엔진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늘 5,000rpm으로 달려왔던 제 인생의 rpm을 2,000rpm 정도로 내린 느낌이다.

자동차가 높은 속도를 내면 rpm은 일정 시간 동안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속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rpm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rpm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주 높은 속도를 유지해야 할 때입니다. 시속 100km를 유지하려는 차는 rpm이 4,000까지 올라갔다가 나중에 2,000rpm 정도까지 떨어질 수도 있지만 시속 170이 넘는 속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차는 rpm이 4~5,000대에서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높은 rpm을 지속해서 유지하면 엔진에 무리가 가고 장시간 높은 rpm을 유지하면 엔진 자체가 고장 날 수도 있습니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는 늘 높은 rpm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제가 일하면서 2번의 번아웃을 겪고 그것이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이유는 제가 버티기엔 너무 높은 rpm을 너무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꽤 오랜 시간을 높은 rpm을 유지했던 차가 잠시 rpm을 낮춘다고 엔진이 갑자기 좋아지는 게 아닌 것처럼 저도 제 삶의 템포를 늘어뜨리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지금이라도 저에게 안정적인 제 삶의 템포를 찾았고 이 템포로 살아야 신령님과 더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낮은 rpm으로 살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빨라진 경쟁사회에서 저 스스로 이탈하여 이제는 신령님을 모시며 신령님의 참된 제자로 살고 힘든 일과 마음이 아픈 일이 있는 분들에게 명쾌한 점사를 봐주며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그런 따뜻한 무당이 되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해주시고 저를 경쟁사회에서 꺼내 주신 신령님께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Written by 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