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과 함께 산다

I. 어느 날 찾아든 공황발작이 알려준 것

 

지난 6월, 나 박복숭아는 다닌 지 3개월째 되는 회사에 무단결근을 했다. 갑자기 찾아든 공황발작 때문이었다. 집이 1층인 관계로 아침에는 늘 현관문 앞이 북적거렸는데, 언제부턴가 그 소리가 공격하는 것처럼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은 불안감이 극에 달한 날이었다. 결국 숨죽여 울면서 이불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흐느끼면서 회사에 전화를 해서 ‘아프다’고 말했다. 그날, 출근했던 애인의 도움을 받아 평소 다니던 병원이 아닌 추천받은 정신과에 가서 극도의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나는 회사를 퇴사한 뒤 3달 동안 상담과 약물, 미술치료를 병행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7~9알의 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이때의 경험으로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먼저 첫 번째로 뭔가 수상쩍은 낌새가 보이면 무조건 정신과를 갔어야 했다는 것이다. 난 2n년에 걸쳐서 꾸준히 우울증세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병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막연하게 내가 심각한 우울증이겠거니, 하는 생각만 했었다. 돈이 없어서 못 간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서 사정을 구차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증세는 점점 심각해졌다. 툭하면 울었고 호흡곤란이 왔으며 온갖 피해망상에 시달렸으며 종내에는 사람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자 나는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기보단 지푸라기라도 잡는 편을 택했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지푸라기를 잡는 바람에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때 깨달은 것이 두 번째 항목, 바로 MMPI 검사지와 문장 검사지를 주지 않는 정신과는 가지 말 것, 이었다.

나처럼 정신과에 다니는 언니에게 이야기를 하자 언니는 그곳이 좀 이상하다고 말했다. 보통 검사지를 주는 편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어떤 날은 의사 선생님이 없다고 약만 받아와서 먹은 적도 있어요, 했더니 더더욱 수상쩍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천받은 곳이 지금 다니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MMPI 검사지와 문장 검사지를 줬고, 나는 현재 내 상황이 어떤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처음 정신과를 가는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많이 저지를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이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원래 이런 거겠지, 하며 점점 더 자신을 몰아가게 되는 것이다. 증세가 나타났을 때는 MMPI 검사지와 문장 검사지를 주는 곳에 가야 한다는 것, 또 괜찮은 병원을 찾기 힘들 때는 주변의 추천을 받는 것도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공황발작이 오기 전부터 다니던 병원이 있었다. 회사와 가까워서 여차하면 약을 얻어올 수 있었고, 무슨 상을 받았다거나 무슨 자격증을 땄다는 등의 문구가 간판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간절히 도움을 필요로 하던 내게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하지만 정작 진료에 들어가니 많은 것들이 생각과 달랐다. 검사는 행하지도 않았고 진료실은 위압적인 것으로 가득했다. 의사는 높은 곳에 앉아서 날 내려다보며 왜 왔냐고 물었다. 정면에는 온갖 전공서적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무겁고 진중한 색깔의 가구만이 가득했다. 증상을 이야기하자 의사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건 누구나 다 겪는 거 아니에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생각했다. 아, 이 의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하나마나한 상담이 끝난 뒤 무슨 약인지도 모르는 약을 3알 받아와 매일 먹었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공황발작에 이르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알게 된 것은 조금 층위가 다르지만, ‘아파서요’라는 문장을 말해야 하는 일이 잦아진다는 것이었다. 처음 회사를 결근할 때 “아파서요”라고 말했던 당시의 나로선 알 수 없었던 사실이었다. 온전히 거짓말은 아니다. 신체가 아픈 것처럼 정신이 아파서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후 “아프다”는 문장은 내 상태를 설명하는 아주 편리한 말이 되고 말았다. 나의 상태는 우울증 및 그에 따른 불안 증세라고 명확하게 나와 있는데, 애매하게 “아파요”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감기에 걸렸어요”나 “위염이에요”라는 문장 대신 왜 “우울증 및 극도의 불안증세 때문에요”라고 말할 수 없을까? 내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금껏 내 상태에서 도망쳐 왔고, 그 때문에 증세가 더욱 심각해졌으니까. 결국 나는 “아파서요”라는 애매한 문장 대신 “제가 우울증에 걸려서요”라고 말하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회사에 오픈하고 퇴사했다.

 

 

Ⅱ. 우울한 것과 우울증은 다르다

원래 이 에세이는 ‘정병러’라는 워딩과 ‘정병러’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얘기하려 기획된 것이었다. 하지만 원고를 작성하는 도중 난 마음을 바꾸었다. ‘정병’, 그리고 ‘정병러’라는 워딩은 내가 걸려 있는 우울증뿐 아니라 모든 정신적 장애를 모두 포함하는 단어다. 때문에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 섣불리 이야기하다가 실수를 하기보단 아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훨씬 안전하고 실속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과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짤막하게나마 이야기하려 한다.

헬렌 M. 퍼렐의 ‘우울증이란 무엇인가?’라는 TED 강연을 보자. 미국의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에 따르면,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거의 20년이 걸렸다. 초등학교 2학년, 일기장에 죽고 싶다고 하며 자살 방법을 세세하게 쓰는 바람에 엄마가 학교에 불려온 적이 있었다. 비가 왔고, 나는 교실 뒤편에서 학급 문고를 읽고 있었다. 엄마와 선생님은 조곤조곤 이야기했지만 난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생긴 운동장을 건너가며 엄마는 내게 왜 그런 걸 썼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이라고만 말하지 대답하진 않았다. 그때,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집엔 뒤틀린 가정 폭력이 지배하고 있다. 가끔 의문이 든다. 엄마는 내가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정말 몰랐을까? 하고 말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걸렸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만난 사촌 동생이 이런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누나 동생 돌잔치 비디오가 있는데, 그거 보니까 누나가 나왔더라. 누나가 엎드려서 어떤 문제집을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 이런 것도 못 풀어! 나 같은 건 죽어야 해!’라고 말하면서 자기 머리를 막 때렸어.”

그 말을 듣고 내 생각은 세 갈래로 뻗어나갔다. 먼저 당시의 나는 다섯 살이었다. 어쩌면 나의 우울증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건 내게 그 때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른 장면은 모두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어쩌면 나는 지나친 스트레스로 그때의 기억을 지운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이렇게나 오래 걸렸다”고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처럼 오래 걸린 사람도 가서 치료를 받고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도 제대로 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에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장기전을 치르고 있고, 약물과 상담 치료에 더불어 미술 치료까지 받고 있지만 당신만큼은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병원에 다닌 지 3개월 만에 약이 2알 줄어들었다. 취침 전에 먹는 약은 서서히 끊어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지금 하루에 7알의 약을 먹는다. 약이 줄었다고 해서 마냥 기뻐할 것은 아니다. 우울증에 걸린 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이를 도와주는 것이 세로토닌을 비롯한 약인데, 이 원고를 쓰는 지금 아침 약을 깜빡하고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지 않아져서 원고를 쓰다 말고 노트북을 닫을 수도 있고, 갑자기 울 수도 있고, 갑자기 호흡 곤란이 와서 드러누울 수도 있다. 즉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폭탄을 늘 안고 사는 셈이다.

 

우울증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는 것이며 우울증 환자 역시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혹은 이 에세이를 읽는 당신이 우울증 환자일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당신이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또 자신이 우울증 환자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증상을 자각했을 때 내가 앞서 말했던 세 가지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는 늦었지만 이 에세이를 읽는 당신은 부디 나처럼 늦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명이라도 더 당당하게 자신이 우울증 환자라고 밝힐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Written by 박복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