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역적 사이

올해처럼 많은 이슈가 우후죽순으로 터지면서 전환도 빠르고, 이슈로 계속 다른 이슈를 덮어버린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아마 독자 제헌도 벌써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수많은 사건이 떠오르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연유로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추석 전후로 가장 시끄러웠던 사회문제는 단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이 아니었나 합니다.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는 모두의 입장과 견해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만, 대다수는 홍범도 장군 논쟁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 않았나 합니다.

 

이미 독립운동가로 교과서에서 숱하게 배우며 시험문제의 단골이기도 했고, 영화가 나올 때도 없던 논란이 이제 와서 터지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2023년이 맞나 싶은 ‘반공’의 그늘을 보자면 여전히 냉전을 살고 있나 싶기도 하답니다. 물론 육사 측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철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을 같이 철거하는 과정에서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사람도 있다고 말한 것이 일종의 논란의 시발점이라고 할까요? 이 과정에서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보수 일각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랍니다. 역사학계에서조차 뜨거운 논쟁거리인 이 주제에 대해 이미 답을 내놓은 육사 측과 일부 보수정치인들을 보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듯합니다.

 

결국 봉오동 전투의 공이 있더라도 자유시 참변에 가담해 독립군의 씨를 말렸으며, 공산당에 일조한 자이기에 자유 대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인물로 육군사관학교에 흉상을 설치하는 건 부적절 하다는 것입니다. 우선 대한민국 육군이 창군 는 과정에서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들이 큰 축을 담당했다는 냉소적 사실은 차치해 보도록 합시다. 오세훈 시장 등은 오히려 이 문제를 두둔하기 위해 ‘친일이 청산의 대상이면 반공도 청산 상이다’라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답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생기기도 전에, 그것도 지금은 망해 없어진 소련이란 나라에 가담한 것이 항일무장투쟁을 한 것 보다 과가 심하다는 것을 보면, 후대에 나라가 환란에 빠져도 삶을 포기하고 역사에 격랑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경종을 울리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런 분들이 왜 이렇게 전쟁을 일으키고 젊은이들을 갈아 넣고 싶어 하는지는 또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소련 공산당에 가담한 홍범도 장군이 자유대한을 부정할 수도 있는 인물이라면, 같은 시기에 소련의 붕괴를 막기 위해 법까지 만들어 가며, 있는 대로 공장을 돌려 무기를 퍼준 미국이 가장 끔찍한 공산주의의 보루 아니었겠습니까? 그런 나라를 혈맹이라고 하는 대한민국과 국군은 또……… 겁이 많은 필자는 여기까지만 빈정거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민족’이나 ‘국가’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호명하는 것은 좀 낡은 느낌도 있고 사람들에게 잘 먹히지도 않습니다. ‘국뽕’으로 떡칠한 영화들 흥행이 안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지요. 그런 의미에서 해당 논쟁이 ‘반공’의 이름으로 어느 정도는 흥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지요. 2023년에도 여전히 냉전을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는 증거니깐요. 물론 꽉 막힌 외골수 같은 인사들도 있겠습니다만, 이익 추구의 경우도 없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웃지못할 일들이 계속됩니다.

 

역사적 인물의 공산주의 논쟁에 대해 박정희와 백선엽이 소환되었습니다. 둘 다 친일 논란이 있기도 합니다만, 익히 알려진 박정희의 경우 남로당 가입 경력도 있으니깐 말이지요. 물론 보수주의자 분들은 전향했으니 괜찮다고 이야기합니다. 한데 누군가에게는 이순신 장군 이후 민족의 성웅(?)으로 칭송받는 반신께서 1962년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답니다. 아울러 노태우 대통령 때는 유해 봉환을 시도했고, 쿼터 갓으로 유명한 박근혜 대통령 때는 논란의 홍범도함 명명―잠수함 홍범도함의 이름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일각에서 하고 있거든요―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거론된 대통령들을 진보로 분류하지 않으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니 말이지요. 빨갱이라고 끌려가 매를 맞는 시절에도 괜찮았던 사람을, 이제는 빨갱이라면 시큰둥한 사람들이 많아 나라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시기에 오히려 역적이라 매도 된다니 말입니다. 물론 친일적인 정부라 일본을 해코지한 인물에게 우호적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건 증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박정희나 백선엽을 거론하면서도 이야기했지만, 자유대한을 수립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들은 과가 어쨌든 괜찮다는 것이 보수주의 일각의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유대한’과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왕정 시대의 인물들은 또 민족의 자긍심을 줘서 괜찮지만 비교적 100년 안의 인물인 홍범도 장군은 소련 공산당 관계자라 안된다는 겁니다. 정작 조선 군부 인물들은 왕정에 가담하고 복무했는데, 이것은 오히려 상관없다고 한다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요? 공산주의는 그래도 투표라도 하는데 말이지요. 오히려 자유대한을 부정하는 저런 망발은 얼마 전 합헌 판결 난 국가보안법을 오히려 위반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알고도 그런 소리 하는 것이 국가보안법 적용에 가장 큰 핵심인데 말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의 촉발이 뉴라이트 사관에 의해 일어났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지 아닌지는 우선 차치하더라도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역사 세우기를 진행하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뭔가 하나로 떨어져서 잘 정리가 되어야 할 텐데 A부터 Z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아무래도 ‘어쨌든 됐고 난 싫어’라고 할 참인가 봅니다. 대충만 알아도 허점이 이 정도인데 이 문제를 깊이 파고 있던 전문가들은 얼마나 어이없고 답답하겠습니까? 윤석열 정부는 여러 가지 정치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것저것 갖은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의 역사의식은 저들보단 훨씬 높은 수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논쟁 만들 시간에 보수정권이 그렇게 자부하는 ‘시장경제’나 좀 어찌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괜히 집값이나 올리는 정책 계속 내지 말고요? 자유대한 이야기하면서 시장경제를 해치는 정책만 내는 걸 보면 니들이 더 ‘자유대한’에 위협적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Written by 박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