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애기일기 1

오라클. 예언 신탁 내지는 예언자, 신관을 뜻하는 영어 단어, 라틴어 오라클룸(oraculum)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타로 리더로 활동하며 본단의 공인 오라클로 활동했던 저는 이제 무당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짜 오라클이 된 것입니다.

 

7월 중순에 퇴사를 하고 어느 날 집 앞에 있는 무당집에 점을 보러 갔다가 다시 한번 ‘너 박수 팔자야, 무당을 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귀신을 본 적도 없고 지나가다가 ‘이거 이렇게 될 거야’라는 식의 말을 갑자기 내뱉는 경우도 없어서 점집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온 제 짝꿍의 표정은 다시 안 좋아졌습니다.

“너 괜히 저 무당 얘기에 또 흔들리지 마라, 네가 뭘 보기를 했냐, 아니면 무슨 공수를 뱉었냐.”

하지만 제가 흔들렸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으니 제가 실제로 무당이 되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타로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정신적으로 나를 살리고 나 같은 처지에 처해 있는 남을 살리기 위함이었고 최근에 사주를 배우며 이를 사업화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뭔가를 듣고 보는 것이 아니었기에 무당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 이전부터 무당을 참 하고 싶었습니다. 무당이 얼마나 힘든지, 무당이 되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막연히 무당이라는 직업에 대해 동경했습니다. 어쩌면 환상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뒤로 짝꿍에게 내가 진짜로 무당을 하고 싶다, 믿을 만한 무당에게 내가 무당을 해도 되는지 물어보자고 제안했고 짝꿍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홍칼리님(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지향 무당, 예술가이자 무당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에게 찾아가 제가 무당을 해도 되는 사람인지 물었는데 무당을 하라는 답변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짝꿍도, 저도 칼리님께서 ‘그냥 잘 누르고 사시면 돼요~’라는 말씀을 하실 줄 알고 간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무당을 하셔도 된다는 말씀을 듣고 나니 너무 기쁘고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그렁거렸습니다.

그러다 돌고 돌아 퀴어의 정체성을 찾고 내가 퀴어임을 스스로 정체화했던 당시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난 왜 구태여 소수자성을 찾아 사회에서 더욱 멀어지는 걸까,
젠더퀴어, (구)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우울증과 불안증,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정신병자로는 내 소수자성이 부족했던 걸까, 왜 나는 내 팔자를 스스로 꼬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슬프기도 했습니다.

 

타로를 볼 때 내담자분들에게 늘 해드리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타로의 결과는 운명의 에너지, 흐름일 뿐입니다. 점괘가 나쁘게 나왔다면 그때는 안 좋은 일을 대비하면 되는 것입니다. 좋게 나왔다고 해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 점괘의 결과를 움켜쥐실 수 없습니다.”

 

늘 이렇게 얘기했던 저인데 무당을 하겠다고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결국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걸까?’였습니다.
보통 무당을 해야 할 사람들이 무당을 하지 않으면 신령님께서 여러 가지 신호를 주신다고 하지요.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이 아프고, 자식이 없는 사람은 본인이 신병을 앓아서 환청을 듣거나 귀신을 보거나 이유 없이 어딘가 미친 듯이 아프기도 하구요.
제가 점을 볼 때 점을 봐주시던 무당 분들이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하는 일마다 잘 안 되죠?”였습니다. 신령님이 내려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당의 길을 가지 않으니, 나에게 오지 않으니 직장도 계속 옮기게 되고 일을 조금 하려고 하면 또 그만두게 되고 그러지 않냐면서요.
사실이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2015년부터 지금까지 제일 오래 다닌 회사의 경력이 2년이었습니다. 각자 회사에서의 사연이야 구구절절 말하면 무슨 이유가 없겠습니까마는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제가 버티지 못한 탓이기도 하겠죠. 실제로 제가 거쳐갔던 회사 중에 아직 잘 운영되고 있고 제가 재직하던 당시 일하고 계시던 분들이 아직 일을 하고 계신 곳도 있습니다.
엄마만큼이나 짝꿍이 이런 제 직장생활 패턴을 걱정했습니다. ‘너는 또 회사를 옮기냐, 왜 끈질기게 1년을 버티는 곳이 거의 없냐, 그래서 경력 인정은 받겠느냐’ 하면서요.

남들에게 신병이 와서 무당을 한 것처럼 제가 계속 직장을 옮기게 되고 한곳에 정착을 하지 못했던 것이 저에게 온 신병이라면,
그렇다면 결국 계속 떠돌이 생활을 할 수도 있었던 제가 무당이 되겠다는 운명을 움켜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칼 들고 협박하지 않았습니다. 신령님조차도 제 삶을 꼬아놓으셨을 뿐 저에게 제자가 되라는 계시는 내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저를 살리기 위해서. 결국 무당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은 제 자신이었습니다.

 

이제 갓 조상굿을 끝낸 지 열흘가량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예비 신어머님의 굿을 도와드리며 내림굿 비용을 모으고 있습니다. 거기서 잠시 동자신령이 제 몸에 다녀가시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3일 기도라는 것을 드리며 다양한 신령님들의 신호를 느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예비 신어머님, 신누님들도 참 착하신 분들이어서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십니다.

 

제가 움켜쥔 신의 제자라는 길을 묵묵히, 꿋꿋이 걸어가고 싶습니다.

신도가 원한다고 악신을 받아 남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양밥(전통적인 액막이 방법의 하나이지만 최근에는 주로 남들에게 해악을 끼치고자 할 때 쓰는 주술을 일컬음)을 치는 그런 무당이 아닌,
신도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신도의 역량 밖에 있는 것을 신령님의 힘을 빌어 그 신도를 도와주는 무당이 아닌,
신도의 가정 대대로 내려오는 업보를 소멸하고 신도의 가정이 평안하길 빌어드리는 그런 무당,
돈 욕심 내지 않고 늘 겸손하게 살아가는, 언제나 나를 비워 신령님이 기꺼이 내려오실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놓는 그런 무당이 되고 싶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내림굿도 받지 않은 무당도 되지 못한 예비 무당이지만 앞으로 저의 성장기를 보시면서 함께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MZ세대, 퀴어 페미니스트 무당으로서 앞으로의 제 길을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Written by 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