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평화를 말하다

군대는 필요한가 그리고 전쟁은 필요한가. 종전 이야기가 오가고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이 시점에 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그림책을 통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전시하의 그림책과 교육칙어(戦時下の絵本と教育勅語)(山中恒 著)』라는 책이 일본에서 발간되어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나라 전체가 하나의 군대가 되어 아주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행동 지침이 내려졌던 모습에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니까 피해자인 것처럼 힘들었다고 말하지 말라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처음에 나도 그랬다. 일본의 전쟁 영화를 보고 우는 사람들이 불편했다. 그러다가 한번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패전했을 때 일본은 어땠대?” “사람들이 기뻐서 춤을 췄대.” 예상 외의 답변에 놀랐다. 전쟁은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일이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많은 희생자를 낳는다. 전쟁이 필요한 이유, 뭔가 엄청난 대의를 위한 것처럼 포장하지만 그곳에는 아픔과 슬픔이 있을 뿐이다. 한국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당장 내가 사는 집에 미사일이 날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그리고 이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군대와 센 무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안전한 길인 것처럼 자꾸 불안하게 만들고 미움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역시 그렇게 불안을 부채질하며 안보관련법을 통과시켰다. 한 아이는 그 뉴스를 신문에서 보고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질문을 했다고 한다. “오늘 밤에 전쟁 안 일어나?” 그 질문에 사이고미나코(西郷南海子) 씨는 안보관련법을 반대하는 엄마모임을 만들고 책을 썼다. 그 책이 『だれのこどももころさせない(누구의 자녀도 희생되어서는 안된다)』(西郷南海子・浜田桂子/かもがわ出版)이다.

 

전쟁하게 두고만 보지 않을 거야.

아이들을 지킬 거야.

어른들도 지킬 거야.

엄마는 전쟁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아빠도 전쟁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전쟁의 이유 같은 거 만들지 말자.

전쟁의 도구를 만드는 것도 그만두자.

누구의 아이도 죽게 두지 않을 거야.

(『だれのこどももころさせない(누구의 자녀도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본문 中)

 

일본에 와서 뉴스를 보면서 답답함을 넘어서 분노를 느낄 때가 자주 있었다. 시청자로 하여금 다른 쪽을 나쁘게 보도록 악의적으로 편집을 해서 보여주는 것 때문이었다. 양쪽 뉴스를 접할 수 있어서 너무나 확연하게 보였는데 한쪽 뉴스만 보면 진실을 알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 점은 한국도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북한에 대해선 악마나 바보로 묘사하는 일들도 많았는데 『적』(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문학동네)이라는 책을 보면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침서에는 적에 관한 모든 것이 나와 있습니다.

“적은 잔인하고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따라서 적이 우리를 중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을 죽여야 한다. 그들은 우리를 죽인 뒤 우리 가족까지 절멸시킬 것이다.・・・ 적은 인간이 아니다.”

・・・・・・

그의 소지품이 보입니다. 말린 고기 몇 점과 막대 비타민 몇 개. 사진도 있습니다. 가족사진인 것 같습니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는 걸까? 그에게 가족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그런데 이것, 이것은 무엇일까요? 지침서입니다. ・・・여기 나와 있는 적의 얼굴은 바로 나예요! 그러나 나는 이렇지 않습니다. 나는 괴물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와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여기에 적힌 것은 온통 거짓투성이입니다.・・・그가 이 사실을 알기만 한다면!( 『적』 본문 中)

 

불안을 부채질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발언을 하고 뉴스를 흘리는 세력과 반대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도 그 활동의 결과 중 하나다.

평화그림책은 어린이들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함께 만드는 그림책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2005년 10월 일본의 그림책 작가인 다시마 세이조의 제안으로 시작, 2010년 6월 『꽃할머니』가 첫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 이후 다른 시리즈는 세 나라에 출간이 진행되었으나 위안부 이야기를 담은 꽃할머니가 일본에서 출간되지 않아 결국 불완전한 프로젝트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은 결과 2018년 4월 일본에서도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나라를 위해 싸워라!”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했고, 나는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

명령을 따라, 총을 쏘았습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을 향해.

・・・

증오가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싸우는 걸까요?

누구를 위해 죽이고

누구를 위해 죽음을 당하는가요?

무엇을 위한 죽음인가요?

・・・

우리들의 모습은 아무도 볼 수 없겠지만,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 이야기를, 여러분과 똑같이 살았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다시마 세이조 글, 그림, 황진희 옮김/ 사계절)본문 中)

 

꽃할머니는 언니와 둘이서 산나물을 캐러 갔다가 납치를 당한다. 그 이후의 끔찍한 일들이 그대로 그림책에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읽으면 과거 일본군에 대한 증오를 넘어서 일본이라는 나라, 그 나라의 사람들을 모두 악마로 생각하게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 교육이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전쟁은 누구든지 악마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우리 역시 그런 일들을 벌여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세계에서 여전히 일어나는 일들을 모른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림책을 읽는 이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데이비드 맥키 글, 그림, 민유리 옮김/ 베틀북)-(일본 제목: せかいでいちばんつよい国)이라는 책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책에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거대한 나라가 나온다.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 나라를 좋아하고 행복했기에 생각한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우리나라 처럼 행복해져야 해. 전쟁을 일으켜서 정복하면 모두 우리 처럼 행복해질 거야.” 그 나라는 정말 크고 힘센 나라여서 많은 나라를 실제로 정복한다. 하지만 어느 날, 전혀 싸우려 하지 않는 나라를 만난다. 그곳의 사람들은 큰 나라의 군인들과도 잘 어울렸고 놀이도 노래도 함께 한다. 결국 용맹함을 잃은 군대를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다시 새 군대를 파견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리고 본국에서도 작은 나라의 문화가 전파된다.

한국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지만 일본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정말 행복한 것, 정말 강한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평화를 위한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고바야시 유타카 글, 그림, 유지연 옮김/ 미래M&B): 아프가니스탄 내전으로 사라진 아름다웠던 마을의 사람들 이야기. 전쟁 중이지만 활기 넘치던 마을 이야기의 마지막은 “그 해 겨울, 마을은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다.

 

『호수 아이와 세 개의 씨앗』(한경은 글, 그림/ 노란상상): 전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아이들의 우정 이야기. 어른들은 숲 속에 괴물이 산다고 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아이는 호수 아이. 그 아이는 우리와 다르다며 부모님은 못 만나게 했지만 그 아이는 나의 친구다. 그 아이에게 받은 씨앗은 사실은 평화의 씨앗이 아니었을까.

 

『짝꿍』(박정섭 글, 그림/ 스콜라): 둘도 없는 짝꿍과 사소한 오해로 시작된 싸움은 점점 심각해지고 오해인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하세가와 요시후미 글, 그림, 장지현 옮김/ 고래이야기): 내가 라면을 먹고 있는 이 시간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세계 곳곳에 있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겪는 일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모두 같은 사람인데 상황이 다르다는 것, 그럼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8月6日のこと』(나가카와 히로타카 글,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이다. 전쟁 속의 개인의 삶은 아프고 슬프다.

 

Written by 한일그림책교류회 강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