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을 두려워하는 당신들에게

우리는 언론매체를 통해 제주로 들어온 예멘 난민들의 이야기를 매일 접하게 된다. 난민수용 반대 국민청원에서 난민반대 집회까지 이 문제는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미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 SNS 등지에서는 예멘 난민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난민들이 저지를지 모르는 범죄에 대한 공포는 허구가 아니고 현존하는 위협이라 말하기도 한다. 정말로 예멘 난민은 범죄를 저지를까? 필자의 대답은 ‘Maybe yes’이다. 그럼 이들의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은 현존하는 난민의 위협을 안일하게 생각하거나 낭만주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단호한 ‘No’이다. 이 글은 난민을 두려워하는 당신들을 위한 글이다.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학문적 분석의 탈을 쓴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예멘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지면상 자세한 내용을 모두 다룰 수 없으나 최대한 예멘 난민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가감없이 서술하고자 한다.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예멘은 홍해를 사이에 두고 소말리아의 반대편에 있다. 예멘은 16세기 초인 1517년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의해 정복된다. 이후 아덴항을 노리던 영국에 의해 1839년 정복되어 보호령이 되는데, 수에즈 운하 개통 이후 본국과 인도를 이어주는 중요한 요충지로 자리 잡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철수하고 예멘왕국(북예멘)으로 독립하게 되는데 이후 북예멘은 영국의 지배하에 있는 남예멘을 실지로 규정하고 수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쿠데타 등의 끊임없는 내전을 겪으며 아랍 민족주의가 뿌리 내리게 된다. 한편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서 무장투쟁들을 전개한 남예멘은 소련의 도움으로 1967년 남예멘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아라비아 반도 유일의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다. 이후 종교와 이념적 갈등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1972년과 1979년 두 차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전쟁이 가져온 참상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냉전의 막바지라는 상황을 바탕으로 예멘은 1990년 통일을 선언한다.

 

사태가 이것으로 일단락되는가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고, 1994년 남예멘이 연방을 탈퇴하며 다시금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이에 북예멘은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같은 해 7월 예멘을 재통일하게 된다. 이후 남부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주창하는 게릴라들이 준동하기 시작하고 이는 분리주의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9·11 테러 이후 알 카에다 등의 무장세력이 혼란을 틈타 예멘 남부에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미군의 지원을 받은 예멘 정부군의 대대적 공습을 피해 동부산악지대로 숨어 계속 테러를 일삼고 있다. 또한 2014년 알 후티에 의해서 조직된 시아파 무장단체인 후티에 의해 수도가 점령되고, 하디 대통령은 남부 지역으로 피신하며 후티에게 정권을 이양한다. 하지만 남부는 후티의 통치를 거부하고 사우디 등의 수니파 국가들의 지지를 받은 하디는 사임을 철회하고 아덴으로 정부를 옮기고 계속해서 내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와중에 전쟁을 피해 예멘을 떠나 각지로 흩어진 이들이 있었다. 우리가 지금 지면을 통해 연일 접하게 되는 제주 예멘 난민들도 그들 중 하나이다.

 

이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은 이렇게 슬픈―하지만 당신들에게는 조금도 와닿지 않을―역사적 사연을 늘어놓으며 감정에 호소한다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난민에 대한 ‘혐오’를 아주 당당하게 뱉고 있을 당신들에게 눈을 씻고 잘 따라와 주길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 누가 왜 난민을 반대하는가? 우리는 인터넷의 수많은 곳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예멘 난민에 대한 인종차별을 기반으로 한 혐오는 굉장히 많은 인터넷 카페와 SNS를 통해 퍼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익히 알겠지만 난민 문제에 적용되는 국제협약은 제네바 협정과 뉴욕협정이다. 특히 제네바 협정에서는 어떤 국가도 난민을 적법한 소명 청취의 기회 없이 그가 박해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그 국가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Non-refoulement(농르플망)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부분의 UN 가입 국가는 이 두 협약 중 하나에 비준 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내용은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존망, 순결한 이 땅에 무슬림이 뿌리내리는 것을 볼지언정 강산에 누워 이 성전의 방패가 되고자 결심한 이들에게는 너무나 하찮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끊임없이 난민혐오를 양산하는 많은 이들의 발언과 글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무지한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개개인의 혹은 의도를 가진 해석들이 지금의 난민들을 거대한 괴물로 빚어내고 있다. 예멘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대다수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에 하나가 다분히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코란에서 가르치는 이슬람의 13 교리’라는 이름의 파일이었다. 이 출처불명의 레퍼런스에 대해 많은 이들은 확신에 차서 그런 이유로 이슬람은 악마와 같다고 단언하고 있었다. 이들이 근거로 드는 13개의 교리를 보자면 ‘사춘기 이전의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결혼해도 된다―코란 65:4’거나 ‘강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4명의 이슬람교 남성이 필요하다―코란 24:4’ 등이 장절 번호와 함께 기입되어 있었다. 이를 본 많은 이들은 이슬람을 믿는 자들은 인두겁을 쓴 악마이며, 이슬람은 종교적으로 강간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집에 있는 코란을 펴보았다. 일부만을 소개하자면 우선 코란 65:4는 ‘아내 가운데 의심을 갖는 자라면 3개월로 한다. 임신한 경우라면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로 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글을 배포한 자의 검은 속내를 코란을 빙자하여 드러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춘기를 시작하지 않은 여자아이를 강간 어쩌고 하는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코란 24:4은 ‘정숙한 부인을 중상하면서 네 명이 증인을 내지 못할 때는 이 자에게 회초리로 여든 번을 쳐라. 이후 이런 자들의 증언은 결코 받아들여선 안 된다’라는 내용으로, 부녀자를 중상하고도 네 명의 증인을 대지 못하면 이런 사람은 양아치이니 매우 치라는 지엄한 가르침이 있을 뿐이다. 이밖에 나머지 내용들도 대부분 날조이거나 종교적 메타포를 문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아울러 코란에 ‘여자와 남자는 동등하다’, ‘여자는 땅과 재산을 소유하고 상속받을 권리가 있다’ 등의 말이 적혀 있는 것을 안다면 당신들이 까무러칠지도 모르겠다. 근본주의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신의 이름을 빌려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이 있을지언정 이슬람의 속성이 ‘악’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감히 말해주고 싶다. 난민을 혐오하는 이들은 출처 불명의 어떤 글귀가 아니더라도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공포스런 이미지를 바탕으로 무수한 인종차별을 쏟아내고 있다.

 

예멘 난민을 혐오하는 많은 이들은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바탕으로 ‘여자들을 강간할 것’이라던가, ‘번식력이 좋아 방심하면 한국을 이슬람 국가로 바꿀 것이다’ 등의 말을 하고 있다. 이런 부류의 말을 하는 이들이 근본주의 기독교의 세례를 받았는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이들에게는 인종에 대한 층위(Level)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여러 카페나 SNS 등에서는 ‘하등하고 열등한 인간’으로 예멘 난민을 규정하고 있다. 실제 난민들이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흡사 예정된 어떤 미래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이를 예견하는 근거로 드는 것이 백인을 제외한 외국인들과 탈북자들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은 우리사회에 2등 시민이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나와 동등하지 않은 어떤 하등한 존재가 똑같은 권리를 누리며, 나의 삶과 이익을 위협한다’라는 점을 꾸준히 설파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인종에 대해 층위를 나누고, 외국인들이 자국민을 억압하는 요소이며, 우리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위협적인 존재이자, 순수한 민족성을 해치는 요소이기에 배척해야 한다고 말한 구라파의 유명한 미술학도 출신 정치인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당신들은 백태눈을 뜨고 입에 거품을 물며 모욕적이라고 말할 것인가? 흰색 꼬깔 모자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린 채 횃불을 들고 이들을 목메는 것만이 인종차별이라고 알고 있다면, 당신들이 쏟아내는 무수한 차별의 언어들도 KKK단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편 예멘이 여성인권에 대해 후진적이라는 이유로 일련의 여성주의자들도 이 움직임에 동조하는 모습을 SNS 등을 통해 보게 된다. 성기중심주의를 지향하는 여성주의분파―얼마 전 네임드 중 하나가 ‘명백한’ 남자인 것으로 드러난 그곳, 조롱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염화미소로 화답하고자 한다―성향의 SNS 등지에서는 각종 댓글들이 판치고 있다. 그중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난민문제를 옹호하는 이들에 대한 일관적인 태도였다. 무슬림들이 강간을 자행하고 있으며, 실제로 구라파 등지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절대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강한 어조이다. 이에 대해 항의하는 이들에 대해 프로필 사진 등을 다운받아 조약한 그림판 솜씨로 ‘너도 예멘인들에게 강간이나 당해라’ 등을 적거나 쭉 댓글로 적어내고 있었다. 이 문제의 핵심 사안을 강간의 위협이라고 규정하는 이들이 타인을 저주하는 방식으로 선택하는 것이 집단강간이라는 아이러니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특히 강간에 대해 인간성을 짓밟는 폭력이기에 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이것을 놀이로 소비하는―아니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총 폭탄 정신으로 댓글을 다는지는 모르겠으나―것인지, 아니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이는 가해자의 온당한 권리라고 까지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수십 개가 넘는 저주를 퍼붓는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예멘 난민을 혐오하는 전체 총량에서 이들의 수는 한줌에 불과할뿐더러 마치 전체 여성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듯 행동하는 이들의 준동에, 몇몇 여성학자들이 학술적 글쓰기를 가장한 인종차별적인 글을 쓰며 이들에게 복무하고 있다. 그야말로 곡학아세의 전형적 형태이기도 하지만 큰 골자는 난민의 위협이 허구라는 것은 망상이며, 그들을 낭만적인 태도로 보는 것은 순진한 것으로 이 위협은 실존하는 것이고 현실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대한 대꾸하기 위해 잠깐 멀리 돌아가 보도록 하자. 우리는 여성혐오가 사회적이라는 것을 오랜 투쟁을 통해 알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급부로 말해지는 남성혐오는 개인적 층위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결코 전 사회적인 형태로 작동하지 않음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종차별과 난민에 대한 혐오도 사회적인 층위로 작동하는 문제이다.

 

혹시 ‘개 호루라기 정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개 호루라기는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주파수를 이용하여 개를 훈련시키는 데 사용된다. 이처럼 자신들의 목적과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집단을 표적으로 삼고, 암호화된 언어와 편견 섞인 표현을 통해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익히 경계해야 하는 인종차별, 여성혐오와 성차별 등에 자주 사용된다. 지금처럼 ‘예멘에서 온 강간범’이나 ‘출세를 위해 몸을 파는 꽃뱀’ 같은 표현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교묘하게 암호화된 언어는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할 때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편견 섞인 말들이 여성을 향할 때 어떤 불합리함으로 나타나는지를 이미 눈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중 일부는 자신들을 공격하고 분리하는 방식으로 똑같이 예멘 난민들을 공격하고 나누고 있다. 또한 아쉽게도 몇몇 여성학자들은 최전선에서 이 혐오의 깃발을 펄럭이며, 자의 혹은 타의로 개 호루라기 정치를 시도하는 차별주의자들과 함께 전선을 나란히 하고 나팔수를 자임하고 있다. 분노에 의한 행동인지 알고도 먹은 쥐약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엇을 위해 싸우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자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예멘 난민문제를 주시하면서 목격한 신기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일부는 이제는 하다하다 ‘난민 문제’로 문재인 정부를 비난한다며 각종 신문기사의 댓글 창에 난립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각종 인터넷 카페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난민에 대해서 온건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이런 정부였으면 뽑지 않았다는 둥, 지방선거 때 당했다는 등 이야기를 내뱉으며, 일부는 박근혜처럼 탄핵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고 있다. 이 무슨 지독한 각본의 풍자극이란 말인가?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도 문재인 정부의 반대자도, 성차별주의자와 여성주의자 몇이 모두 하나의 편에서 함께하고 있다. 이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하는 것일까?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대승적인 결합을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맞는 것은 아닐까하고 자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습니까?”라는 답변해 주고자 한다. 이 사태가 누구를 가장 이롭게 하는가라는 물음을 우리는 던져봐야 한다. 성소수자를, 여성을, 난민을 적대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종차별의 기치 아래 각자의 이해와 이익을 위해 모이는 이들의 강고한 행진을 보고 있자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전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을 그토록 이롭게 하고자 하는가? 공포를 조장하고 갈등을 유발하며 각지에서 혐오를 일삼는 당신들에게 혐오의 연대를 그만 멈추라 말하고자 한다.

 

Written by 라 레알리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