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없는 사람들

* 도서 역사의 섬들 리뷰입니다. (마셜 살린스, 최대희 역, 역사의 섬들, 뿌리와이파리, 2014.)

 

 

노동자로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는 세계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생소할 수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이유는, 이주민이든 국내에서 성장해온 사람들이든 간에 한국이라는 영역 안에서 문화적으로‘성숙한 인간’으로 인정받는 일이 어떠한 포지션의 노동자로 자리 잡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일과 취업과 결혼은 생산수단을 어떻게 성취하느냐에 따라 한국 현대 문화에서 성공의 이미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일하는 인간’이라고 위치 지어졌을 때 문화적인 특징지어짐을 생각해 본 적은 필자 자신도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대륙’의 물건을 사용하면서‘천조국’의 문화적 영향 안에 사는 일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과 함께 모두 “한 세계”에 거주한다고 말하는 일은 널리 공유되었다. 흔히 국가와 국가 간 접촉과 연관 관계, 연쇄와 상호관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많이들 있었지만,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먼저 분과학문의 체제상, 자신들의 학문 사이에서 유효한 관점만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불문율인 원인이 있다고 추측된다. 각 분과학문에서 이해하는 생산수단과 생산 양식에 관한 이해의 폭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불어 중심부와 주변부로 구조화되어 이해되는 세계의 개념과 자기 위치의 확인은 역사적인 맥락으로 확인된다. 역사를 기술하는 목적과 대상은 역동적인 상호연관된 현상들을 정태적이고 단절된 실체로 변화시켰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역사를 배운 사람들의 세계 이해, 즉 서양과 동양의 대비와 일정한 발전 도식은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이해로 대치되는 상황으로 변화되었다. 약간 거칠게 표현하면, 발전된 서양과 정체된 동양이라는 다소 폭력적인 도식 설정과 자신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판단으로 이루어진 자기 이해는 어쩌면‘발전’되었다고 믿는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을 하위로 설정한 자기 위안으로 흘러갔다고 울프는 지적한다.

나아가 생산양식과 생산수단의 소유 문제는 비교적 보편적인 모델임을 제시하고, 맑스의 활용으로 문화를 이해하려는 시각을 제시한다. 생산개념에 대한 재이해, 즉 헤겔의‘정신의 연속적 실현체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가이스트 개념에 대치된 생산개념에서 인간과 자연 간의 변화하는 관계에, 인간이 자연을 변형하는 과정에서 인간끼리 맺게 되는 사회적 관계와 상징 능력의 변형으로 재정의한다. 이런 정의 아래 맑스의 물질을 둘러싼 관계의 결합과 작동의 양식들에 집중하여‘교환체계로서 생산양식’의 흐름으로써 역사를 제시한다. 울프는 프랑크의 근대화 이론 및 윌러스틴의 유럽 중심 세계 경제를 이해하기 위한‘중심부가 주변부에서 변화를(또는 교환을) 통한’ 연결의 문제는 앞서 제시한 유럽중심주의적 사고관을 벗어나자고 지적한다. 즉 더욱 폭넓은 범위 설정을 통한 연쇄 관계의 검토를 요청함으로써 핵심적인 특징으로써 생산양식에 대한 규정을 이해하자고 말한다.

생산양식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공납제적 생산양식, 친족 질서적 생산양식에 대한 유형분석은 흥미롭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화폐 형태의 부로 노동능력을 사면서 나타나는 일정한 전제조건들에 대해서 그 특성을 찾는다.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이 아니라,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부의 소유자들에게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산수단을 운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는 흥정을 해야 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이때 생산이 분배를 결정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상품을 생산수단 소유자들에게 다시 사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이 자연을 변형하는 과정에 있어 생산자와 비생산자(자본가) 사이에 분배하는 방식 및 잉여를 확대하는 방식을 고찰한다. 낮은 임금과 잉여의 수준의 증가, 즉 주어진 작업시간 중에 노동자들이 산출하는 양을 늘리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점은 의외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 대한 사장들의 최저임금의 지급과 노동 시간 내 빡빡한 업무 내용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점에 놓인 다른 나라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값싼 노동력에 기초한 남미의 커피 원두 생산, 동남아시아 국가의 제조산업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개인적인 노동력을 바탕으로 국가의 생산양식의 개념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제도에 있어 국가 간 상호작용의 체제들이 정해진다는 고찰은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유럽의 마스크 사태는 이러한 상황의 연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공납제적 생산양식은 전통사회의 문화적인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산의 결과로 공납을 바치게 되고, 공납의 과정을 정치적 또는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공고히 하는 것은 ‘소유관계의 직접적인 관계와 예속관계’에 기반한 것이다. 이때 생산수단에 대한 문제는 필수불가결하다. 생산수단은 전통사회에서 토지로 대변된다. 토지야말로 농사를 짓는 노동력을 통해 농업노동자가 자신의 생존 수단을 생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물질적 노동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때 공납은 사회적 노동이 된다. 사회적 노동은 물질적 노동조건으로써의 생산수단이 권력과 지배력의 행사를 통해 조직되어 자연의 변형, 즉 상품성 있는 작물을 생산하는‘변형’을 통해 공납이라는 생산양식이 된다. 생산양식에 대한 문제에 있어 권력의 사용은 중요하다. 권력이 생산과정에서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들을 장악하거나, 강제력, 즉 군대의 동원 등을 통한 사회적 생산과정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울프는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양극적 상황을 가정한다. 권력 체계 정점에 서 있는 소수 지배집단의 수중에 확고히 집중되어 있거나, 권력이 지방지배권자들에게 있는 경우이다.

이러한 예시를 고려시대의 전시과를 통해 알 수 있다. 전시과는 농작물을 기를 수 있는 농토의 개념인 전지와, 땔감을 채취할 수 있는 임야를 이르는 말인 시지를 고려의 관료체계 안에서 계급 지워진 관료들에게 등급에 따라 분급하는 제도이다. 흔히 시정-개정-경정 전시과로 암송되곤 하는 고려의 전시과 제도는 역사적으로 분급의 대상이 계속 바뀌어 왔다. 과거 고려를 건국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는 공신들에게 지급되었던 역분전을 모델로, 권력에 친화적인 사람들이 ‘인품’이라는 기준으로 분급 받았던 것에서 품계로 변화해왔던 역사적인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왕토사상’으로 개념 지워진 전통 시대의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에서 비롯된 토지 관념은 중앙과 지방(윌러스틴 식으로 표현하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권력구조의 편성과 재편성의 과정에서 이해되고 있다. 현재 한국사학계에서는 어떤 것이 인품이고, 어떤 것이 지급되었는지, 분급의 직접적인 물품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분급하는 방식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시각의 근본적인 개념은 중앙집권화된 국가 관료제에 의해 소농들로 구성된 촌락공동체들을 지배한다는‘아시아적 생산양식’에서 비롯된 시점과, 상층부에서 벌어지는 피지배계급 간 권력 경쟁에 의해 그때그때 다른 결과들이라는‘봉건적 생산양식’이라는 두 시점에서 갈등하고 있다.

하지만 울프는 이런 시각에 대해서‘생산양식이라는 연속체 속에서 변동을 두고 있는 다른 생산양식으로 잘못 갈라놓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저서 서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경제학이 사회적으로 조직된 인간집단이 자신의 정치단위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떻게 생산했는지를 살피기보다는, 수요가 어떻게 시장을 창출하는지와 같은 추상적 모형의 재확인으로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소수의 권력 집단이 그들의 공납제적 생산양식을 통해 어떠한 권력체제를 만들었는지보다, 그것을 통해 어떠한 생산양식의 변화를 통해 누가 이득을 취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명제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물론 두 논제의 목표가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목적은 아주 다르다. 무엇이 발전인지, 어떻게 더 근대 이전의 이행에 있어 역사적인 진보를 이루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 생산과정에 놓인 권력관계는 뒤로 놓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단순히 발전을 위한 발전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데이터의 축적 역시 중요하지만, 그것을 해석해 내는 능력의 부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권력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왕실과 관료층들의 이해 역시‘관료제적 사회’인지,‘귀족제적 사회’인지에 따라 역사적인 인식과 해석의 폭이 많이 어긋나버린다. 따라서 그들의 생산양식 안에서 생산수단과 그 주체들이 잉여생산물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추출하였고, 권력이라는 장 안에서 그들 주체가 변화하였을 때 나타나는 체제들을 이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고려 왕실이 그들 자체적으로 혼인을 추진하였던 배경이나, 관료층의 경제적 이해 및 공납제적 생산양식에 따른 분배-재분배의 개념은 재해석 되지 못했다. 전통사회 국왕이 신료들에게 잔치를 베푸는지, 또는 조선의 사대부들이 생필품을 서로에게 무엇을 언제 선물했는지에 관해서만 서술하고 그 의미를 그들의 지배체계 안에서만 설명하고 있다. 연구 대상과 해석의 결과적인 면만을 우선하는 분위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는 연구적 다양성은 재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물이나 연회를 통해 기존에 정치적인 또는 사상적인 영역으로만 치부되던 영역들을 ‘교환 기제’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여 무엇이 재분배되는지, 무엇을 재분배하는지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서로 구별 짓고 이해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더욱 상세한 시도가 요청된다. ‘경제적’이라는 수사 뒤에 숨겨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한 교환’에 함몰되어 이후 일어날 문화적 교환양식, 즉 상징을 매개로 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가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 문화적인 해석은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공납제적 문명에서 나타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호작용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앞서 수업에서 살펴보았던 신화와 의례 및 상징에 대한 여러 논의에 대한 경제적인 해석은 별로 없었다. 울프는 이에 대해서 흥미로운 지적을 시도한다. 문화적인 상호작용으로써 어느 정도 성공적인 잉여 수취 지배집단이 중심을 형성하면서 이들이 추구하는 이념적인 모형을 구축하는 과정과, 이렇게 형성된 이념적인 모형의 다른 지배집단에 의한 복제를 언급한 것이다. 잉여수 취자의 지위와, 잉여수취자로서 가지는 사회적 차이를 초자연적인 기원과 정당성을 바탕으로 이념적인 모형의 완결성을 주장한다는 점은 기존 해석이 시도되지 않았던 의례와 신화에 대한 분석에 대한 전망을 보여준다. 힌두교에서 라자와 다르마의 비유는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잉여생산물에 대한 통제를 초자연적인 법칙과 연결 지어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세계관에 대한 이해, 즉 ‘우주의 구조’를 새겨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권력을 보유한 경제적 상위계층들이 모든 인간을 포괄하고 종속한다. 이와 동시에 지배-피지배 관계의 실제적 관계를 우월-열등한 가상적관계로 전이시킨다. 이런 정황들은 공적 권력이 개인의 도덕 문제로 쉽게 변형되고는 하며, 전통 시대에 흉년을 맞이하면 고대 지배자들에게 부여되었던 형벌과 현재 경제불황에 따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하락은 같은 해석의 선상에 있다. 생산양식에 기초한 공적 권력이 흔들리며 더 높은 생산력이라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을 때 전통시대 국왕의 권위나 현재 대통령의 지지도 같은 이념적 결합 관계 역시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왕-백성 또는 대통령-국민 사이를 중개하는 중간계층(이들도 물론 상위계층에 속한다)의 여론형성의 문제 역시 해석을 다양하게 한다.

울프가 제목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결국 역사 없는 사람들의 역사 역시 역사 있는 사람들의 역사와 맥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역사서술의 특성상 누가 기억하는가에 따라, 또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 내용은 많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 나의 삶을 지배한 것이 아니듯이, 그들에게 설정된 생산양식이 그들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배경 아래 그들의 삶을 결정짓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Written by 이민기